조조의 처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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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덕호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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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부터 이런 얘기가 전해져 내려 옵니다. “삼국지를 세 번 읽지 않은 사람하고는 이야기를 하지 마라.” 삼국지를 읽으면 사람이 그만큼 유식해지고 또 처세에 밝아진다는 말일 것입니다. 사실 삼국지를 보면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성공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내용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 이런 사건이 있습니다.

조조가 한 번은 적군에 잡혔는데 그 감옥의 관리 중에 진궁이란 사람이 조조를 평소에 존경하던터라 몰래 풀어주어 같이 달아납니다. 달아나던 중 조조는 자기가 평소에 잘 알던 사람인 여백사에게로 피합니다. 여백사는 반가이 맞으면서 좀 쉬라고 하고 자기는 술을 받아 오겠다고 하며 나갑니다. 조조와 진궁은 방안에 들어가 있는데 밖에서 쓱쓱 칼가는 소리가 들립니다. 쫓기는 사람들이라 신경이 곤두서서 귀를 귀울이니 두런두런 남자들의 이야기 소리가 들립니다. “묶어 놓고 죽일까, 그냥 죽일까?” 조조와 진궁은 여백사가 자기네를 배반하고 잡아 죽여 현상금을 타려는 것으로 판단하고는 칼을 빼들고 뛰쳐나가 칼 갈던 두 남자를 죽여 버립니다. 그리고 그 집에 있던 모든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혹시 누가 또 있는지를 둘러보다가 깜짝 놀랍니다. 왜냐하면 뒤꼍에 돼지가 한 마리 묶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칼을 갈던 사람들은 돼지를 잡아 조조와 진궁을 대접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후회했으나 이미 늦었습니다.

그들은 급히 나와서 말을 타고 도망을 하는데 저만치서 술통을 싣고 여백사가 흥얼흥얼 말을 타고 옵니다. 여백사는 놀라서 조조보고 “아, 왜 벌써 갑니까?” 하니 조조는 “쫓기는 몸이라 지체할 수 없습니다.”라고 인사하면서 섭섭해 하는 여백사를 뒤로하고 떠납니다. 저만치 간 조조가 진궁에게 잠시기다리라고 하고는 다시 뒤돌아가더니 여백사를 단칼에 베어 죽입니다. 진궁은 너무 놀라서 “어쩐 일이냐?”고 하자, 조조는 호탕하게 웃으면서 “여백사가 아무리 나와 절친하기로서니 집에 가서 사람들이 죽은 걸 보면 나를 미워하게 되고 결국 나를 고발할 거요. 내가 남을 배반할 수는 있으나, 남이 나를 배반하게 할 수는 없소!” 결국은 진궁은 조조를 잘못 봤다고 하며 밤에 몰래 떠나 여포에게로 가게 됩니다.

여하튼 여기서 조조가 가르쳐 주는 인생관, 처세술은 이런 겁니다. “내가 남을 배반할 수는 있으나, 남이 나를 배반할 수는 없다.” 아마도 이런 처세술로 조조는 한 시대의 영웅이 됐을지 모릅니다. 확실히 그런 처세술은 세상에서 성공할 만한 처세술입니다. 그리고 요즈음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정말 그럴까요? 물론 조조 같은 처세술로 조조같이 한 시대의 권력가가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진정한 인격과 인간다움으로 존경받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영웅보다 간웅이라고 불립니다.

저는 여기서 그와 정반대의 처세술로 세계를 정복한 분을 한 분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는 예수님입니다. 그는 제자 가룟 유다의 배반계획을 알고도 그 제자를 처단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가 배반당해 잡혀 갑니다. 그의 처세술은 “남은 나를 배반할 수 있으나 나는 남을 배반할 수 없다.”였습니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죽으면서 “나는 세계를 정복한 것 같았으나 패했다. 하지만 예수는 패배자 같았으나 세계를 정복했다.”고 말한 것 같이 실로 예수님은 세계를 정복한 분이며 인류의 가장 존경받는 분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세상에는 이렇게 크게 상반되는 처세술이 있습니다. “나는 남을 배반할 수 있으나, 남은 나를 배반할 수 없다.”는 조조의 처세술과 “남은 나를 배반할 수 있으나 나는 남을 배반할 수 없다.”는 예수님의 처세술. 여러분, 어느 쪽이 진정으로 인간다운 모습이겠습니까? 어느 쪽이 진정으로 사랑과 존경을 받는 자세이겠습니까? 여러분은 어떤 인생관과 처세술로 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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