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조조와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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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에 나오는 조조는 세상적으로 크게 성공한 사람입니다. 여러분 조조가 어떤 인생관을 가지고 살았는지 아십니까? 조조에게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조조가 젊었을 때 진궁이라는 사람과 함께 쫓기는 몸이 되었습니다. 조조는 평소에 친분이 있는 여백사의 집으로 피해갔습니다. 여백사는 조조를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조조를 대접하기 위해 술을 사러 갔습니다. 그 집안사람들은 돼지를 잡으려고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조조는 돼지를 잡으려고 칼 가는 소리를 듣고 자기를 죽이려는 것인 줄 알고 여백사의 집안사람들을 모두 죽입니다. 그 후에 조조는 자기가 실수한 것을 알고 급히 도망갑니다.


도망가는 길에 조조는 술을 사오던 여백사를 만납니다. 여백사가 왜 이렇게 급히 가느냐고 하자 조조는 위험해서 그런다고 둘러대며 헤어집니다. 그런데 조금 길을 가던 조조는 다시 되돌아가 여백사를 죽입니다. 함께 가던 진궁이 깜짝 놀라서 말합니다. “가족들을 죽인 것만도 너무나 미안한데 왜 여백사까지 죽입니까?” 조조가 말합니다. “여백사가 집에 가서 가족이 죽은 것을 보면 나를 원망하여 관가에 고발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서 유명한 말을 합니다. “내가 남을 배반할 수는 있어도 남이 나를 배반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이게 조조의 신념입니다. 남에게 고난을 줄 수는 있어도 나는 고난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조조는 이렇게 살아서 세상의 부귀영화를 누렸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떠셨을까요? 예수님은 가룟 유다가 배반할 것을 미리 아셨습니다. 조조라면 이럴 때 틀림없이 제자들을 시켜서 미리 가룟 유다를 제거했을 것입니다. 조조는 남이 나를 배반하게 내버려두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당신이 배반을 당하고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신념은 남이 나를 배반하게 할 수는 있어도 내가 남을 배반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누구를 닮아야 합니까? 조조입니까, 예수님입니까? 우리가 예수님의 모습을 뻔히 알면서도 예수님처럼 살지 않고 조조처럼 산다면 예수님의 제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라면 절대 내가 먼저 남을 배반해서는 안 됩니다. 내 이익을 위해 남에게 고난을 줘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남의 이익을 위해 내가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이게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사랑입니다.


만일 내 이익을 위해 남에게 고난을 주면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됩니다. 다니엘을 참소해서 사자굴에 넣은 자들이 나중에 어떻게 됩니까? 사자굴에 던져져서 뼈도 못추리고 다 죽지요. 하나님의 뜻을 위해 고난을 받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지만 자기 욕심을 위해 남에게 고난을 주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무서운 벌이 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웃을 위해 고난을 받아도 이 세상에서는 상급을 받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천국에서는 영생과 상급을 받습니다. 예수님도 세상에서 고난을 받으셨지만 천국의 놀라운 영광을 받지 않으셨습니까? 우리 모두가 조조처럼 내 이익을 위해 남을 해치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이웃을 위해 고난을 받는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고 천국의 영생과 상급을 받을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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