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굴의 기도(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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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인덕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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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철, ■아굴의 기도■, (서울: 생명의 말씀사, 2002) 

저자에 의하면 아굴의 기도(잠 30:7-9)는 우리의 교만을 무참히 깨뜨리고,  반쪽 진실로 만족하는 우리의 거짓 영을 흔들어 깨운다.  그리고 허영의 거리에서 부의 바벨탑을 쌓는  우리에게 재물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오늘날 우리에게 아굴의 기도가 필요한 것은  가난하지 않는 것도, 부자가 안 되는 것도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는 아굴의 삶의 목표가  우리 삶의 최고봉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성경 속에 수많은 기도의 모범이 있음에도  특별히 저자가 아굴의 기도를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아굴은 경건주의자이면서 실용적인 지식인으로서  믿음과 물질, 현실과 영성 이 두 가지를 조화시킨 지혜자이다.  우리는 아굴의 기도를 살펴봄으로써  어느 한 쪽만으로 치우친 신앙생활이 가져다준 폐해를 보고 살아가는 현실 속에,  양자를 조화시키는 지혜로운 신앙인을 만나게 될 것이다.  

아굴의 기도의 제목은 두 가지였다.  사실 많은 기도의 제목은 기도의 집중력을 떨어뜨린다.  다윗이나 고라 자손, 솔로몬과 시므온의 기도는  단순하고 소박하며 목적이 분명했다.  우리 기도에는 일방적인 말의 성찬만 있을 뿐  하나님의 뜻에 대한 묵상이 결여되어 있다.  한편 아굴은 이 두 가지 기도 제목을 가지고  평생 동안 쉼 없이 기도의 트랙을 달리겠노라고 작정했다.  “죽기 전에 달라”는 말 속에는  반드시 이것만은 이루고 죽겠다는 각오가 들어있다.  죽기 전에 응답받기 위해서는 평생동안 기도해야 한다.  기도는 습관이 되고 천성이 되어야 한다.  기도는 언제든(anytime), 어디서든(anywhere), 지금 당장(right now) 해야 하는 것이라고  아굴은 우리에게 간접적으로 말하고 있다.  

아굴의 기도의 첫 번째 제목은  허탄과 거짓말을 멀리 하게 해 주시라는 것이다.  허탄은 도덕적으로 건전하지 못한 것, 윤리적으로 가치가 없는 것이다.  아굴은 그릇된 생각이나 행동을 하지 않고  현실에 충실하며 하나님을 잘 섬기게 해달라고 간구한다.  허탄은 필연적으로 거짓말을 유발한다.  우리가 거짓의 홍수에 살다보니  정직은 유치한 것, 융통성이 없는 것, 고리타분한 것으로 멸시 당한다.  정직이 천대받는 세상.  적당한 거짓말은 인생의 윤활유이자, 대인관계의 솜사탕인 세상에서  아굴의 기도는 한편으로는 어리석은 자의 훈도처럼 들릴지라도  정직은 최선의 방법임을 깨우쳐 준다.  
아굴은 하나님에 대하여 정직하기를 원한다.  정직하신 하나님에 대해서 인간이 저지르는 최고의 거짓은  바로 그 분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이다.  그래서 허탄한 우상을 섬기는 자들은  하나님께 거짓을 일삼는 자들이다.  또한 아굴은 이웃에 대하여 정직하기를 원한다.  이웃은 이용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다.  그는 일에 대하여 정직하기를 원하는데,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내일로 미룬다거나  작업량을 숨기는 것은 게으름 때문이다.  게으름은 정오의 마귀이다.  또한 돈에 대하여 정직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돈을 사랑하지 말고 사용해야 한다.  돈으로 살리는 삶을 살아야지 돈으로 살아가려는 삶이 되어서는 안 된다. 

아굴의 두 번째의 기도는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말아달라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아굴의 기도는 뜬구름 잡는 신비주의자의 기도와 다르다.  아굴은 인간이 영적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하는 존재임과 동시에,  육체를 위해 물질적인 빵이 필요함을 간과하지 않았다.  형제 자매가 생존을 위해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을 때  사탕과 과자를 달라고 소리치는 기도가 아닌 한,  하나님은 인간다운 삶을 위해  물질을 구하는 우리의 기도를 거절하지 않으실 것이다.  동시에 아굴은 필요 이상의 양식,  즉 물질을 단호히 경계한다.  부자들은 돈을 얼마나 가졌든 간에  더 가지려고 안달하기 때문에 늘 가난하다.  돈은 선하게 혹은 나쁘게 사용할 때 힘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사용하기 이전에 이미 하나의 능력이다.  그런 의미에서 맘몬은 진정 하나님의 경쟁상대다.  
그래서 저자는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않는다고 전도자의 말을 빌린다.  입은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다.  더 좋은 것을 자꾸 원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소유를 즐거워하는 것만이 재물에 만족하는 길이다.  마음을 통제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적당한 재물로 만족하기 위해서는 절제해야 한다.  생활의 불편을 참을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편한 삶을 위해 부름받지 않았다.  현재의 재물에 만족하며 염려하지 않는 삶은  예수님에 대한 무조건적인 헌신을 전제로 한다.  

아굴의 왜 허탄을 버리게 해달라고 했는가?  왜 거짓말을 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는가?  왜 가난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는가?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서였다.  왜 지나친 부자가 되기를 원치 않았는가?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의 인생과 기도의 목적은 오로지 하나님의 영광이었다.   

오늘도 많은 기도의 메일이 하나님의 편지함 속에 주루룩 저장된다.  그중에는 별로 열어보고 싶지 않으셔서  “삭제”해 버리고 싶은 제목이 있을 것이다.  반면에 가장 먼저 열어보고 답장하고 싶은 기도의 메일은  바로 아굴의 기도처럼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기도가 아닐까 싶다.  성경의 많은 기도의 모범 중  아굴의 기도를 들추어내서 우리의 기도 습관과 내용들을  다시 한번 점검케 해 준 저자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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