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을 위한 글

잘못을 벌하지 않는 것이 용서인가?

작성자 정보

  • 이은주 요약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우리가 심판대에 서서 할 수 있는 말은 "저는 죄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저의 죄를 대신해서 죽으셨으니 용서하시고 구원해주십시오"라는 말뿐이다. 우리는 오직 예수님의 은혜로 죄를 용서받고 구원받는다.

그렇다면 우리 자신도 이웃을 용서해야 한다. 우리가 이웃을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우리를 용서하지 않으신다.(마6:15/18:35) 남을 용서하는 일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이렇게 중요하다. 그래서 신자들은 사랑으로 용서하는 삶을 살 기 위해 노력한다. 이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참된 용서를 바로 알지 못하거나 혹은 자신의 안일을 위해 용서를 남용하는 경우 등 바른 용서의 삶을 살지 못할 때도 많다. 그런 경우에는 용서라는 행동이 사랑의 용서가 되지 못하고 오히려 더 큰 죄악을 조장하게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참된 용서란 어떤 것인가? 용서의 가장 대표적인 모습은 잘못을 벌하지 않고 넘어가는 거시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벌을 쥐지 않는 것을 용서로 보고 벌을 주면 용서하지 않은 것으로 본다. 심지어 벌을 주는 것은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용서는 벌하지 않고 할 수도 있지만 벌하면서 할 수도 있다.

사실, 잘못을 벌하지 않는 것은 용서가 될 수도 있지만 용서하지 않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의 잘못을 보고 괘씸해서 꼭 벌을 줘야겠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에는 벌을 주는 것이 용서하지 않은 것이고 벌을 주지 않는 것이 용서한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의 잘못을 보고도 그런 사람은 상관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여 내버려두는 경우도 있는데, 이때는 벌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 오히려 그를 용서하지 않은 것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벌을 주었는지 안 주었는지는 용서의 기준이 될 수 없다. 용서의 기준은 사랑에 있다. 사랑이 참된 용서를 낳으며 용서는 사랑 가운데서 하는 것이다.

사람이 잘못을 범하면 일반적으로 다음의 다섯 가지 피해가 발생한다.
①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그것을 고치지 않는 한 계속하여 잘못된 삶을 살게 된다.
②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자신에게 실망하고 스스로 괴로워하게 된다.
③그 잘못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그 사람과의 관계가 악화된다.
④피해를 입은 사람 외의 다른 사람들에게도 상처를 주고 그들과의 관계도 나빠진다.
⑤그 잘못이 사회에 퍼져나가 더 많은 사람들이 같은 잘못을 저지르게 되고 결과적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게 된다.

참된 용서는 이런 손해를 피하거나 보상해주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용서는 어떤 잘못이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잘못으로 인해 생긴 모든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제, 잘못으로 인해 생긴 다섯 가지 상처를 치유하는 용서의 모습을 생각해 보자

첫째,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자기 잘못을 고치도록 도와주는 일이다.
이것은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어떤 자세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만일 그가 자신의 잘못에 대해 깊이 뉘우치고 있다면 그에게 굳이 벌을 줄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그 잘못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모를 때에는 그냥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그가 잘못을 깨닫고 뉘우쳐 다시는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지도해야 한다. 말로 그렇게 지도할 수 있다면 굳이 벌을 가할 필요까지는 없다.

둘째, 잘못한 사람이 겪는 좌절감을 치유하는 일이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자기 잘못을 깨닫고 스스로 마음 아파하고 좌절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에 그는 잘못을 보상함으로써 마음의 평화를 회복할 수 있다. 물론 벌을 받지 DSKG고 용서를 받아도 그 용서만으로 마음의 평안을 얻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에는 잘못한 사람에게 적절한 벌을 내리는 것이 진정한 치유의 용서가 된다.
얼마간의 금식기도나 구제, 혹은 사회봉사를 하도록 하여 잘못으로 무거워진 마음을 가볍게 만들어주는 것이 그런 예다.

섯째, 잘못으로 인해 해를 입은 사람의 상처를 치유하고 그와의 관계를 회복시켜주는 일이다.
대체로 용서는 해를 입은 사람이 해를 끼친 사람에게 해주는 것을 말한다. 해 당한 사람이 해 입힌 사람을 마음으로 용서했다면 굳이 벌을 줄 필요는 없다. 그러나 한 공동체 안에서 해를 입은 사람이 해를 끼친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 공동체의 지도자가 용서한답시고 벌을 주지 않으면 참된 용서가 되지 못한다. 그렇게 하면 상처와 앙금이 여전히 남은 불행한 관계가 지속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도자는 해 당한 사람을 충분히 설득하여 마음의 상처를 치유한 후에 잘못한 사람의 징계를 면제해주어야 한다. 그것이 어렵다면 잘못한 사람에게 적절한 벌을 줌으로써 당한 사람과 해 입힌 사람 모두의 상처를 치유하도록 하는 용서를 베풀어야 한다.

넷째, 잘못을 저지른 사람과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일이다.
만일 그 공동체의 모든 사람이 그가 잘못을 뉘우치고 있다고 믿어 그를 벌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면 굳이 그를 벌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그에게 벌리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으면 적절한 벌을 내려야 주위 사람들의 상처가 치유된다. 그것은 단순히 그 사람이 벌을 받기 때문에 상처가 치유된다는 것이 아니다. 공동체에서 악이 제거되고 정의가 실현되기 때문에 치유되는 것이다. 그런 징계를 공동체 사람들은 안정을 찾고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게 된다.

다섯째, 같은 잘못이 사회에 퍼지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 동일한 잘못을 저지르면 안 된다는 것을 모두가 깨닫도록 해주어야 한다. 물론 훈계를 통해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굳이 벌을 줄 필요까지는 없다. 그러나 교훈만으로 충분하게 사람들을 설득할 수 없을 경우에는 잘못한 사람을 벌하는 것이 필요하다. 잘못한 사람이 엄한 벌을 받으면 사람들은 같은 잘못을 저지르게 될까봐 조심하게 된다. 그러면 벌을 통해 사회가 치유되는 효과가 있다.

주님께로부터 용서의 사랑을 받은 우리는 이웃을 용서해야 한다. 아무리 큰 잘못이 있어도 배척하지 말고 사랑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이 용서가 벌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벌이 필요한데도 벌을 주지 않으면 그것은 오히려 용서가 아니다. 물론 벌을 내리지 않고도 치유의 용서를 할 수 있다면 벌을 내리지 않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더욱이 벌은 하나님께 맡긴다는 점에서도 결코 우리가 함부로 내릴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벌을 내리지 않아도 잘못을 한 사람이 충분히 그 잘못을 뉘우쳐야 하고 동시에 용서의 확신과 평안을 갖게 되어야 한다. 또한 해를 당한 사람이나 주위 사람들이 잘못을 범한 사람을 마음으로 용서하고 그를 받아들일 자세를 가져야한다. 또 벌을 주지 않고도 사회에 그런 악이 번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벌을 내리기 전에 먼저 설득과 교훈으로 이렇게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하여 이런 여건이 구비되면 잘못한 사람을 벌하지 않고 용서해야 한다. 이것은 벌 없이 치유하는 용서다.

그러나 만일 이런 것들이 준비되지 않은 경우라면 벌을 통해 치유의 용서를 해야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이 있다. 벌을 주기 전에 먼저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사람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렇게 먼저 마음으로 용서한 다음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사람과 주위 사람들을 치유하기 위해 벌을 주어야 한다. 이런 치유의 용서를 통해 한국교회와 사회는 바르게 발전할 수 있다.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179 / 4 Page
번호
제목
이름

성경공부


최근글


새댓글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