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생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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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중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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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 대통령으로부터 흑인들의 인권이 인정을 받았다지만, 여전히 미국은 유색인종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장 인종차별이 많은 시간이 어느 때인지 아십니까? 주일 오전 11시라고 합니다. 흑인은 백인들만의 교회에서 예배하지 못합니다. 뭐, 많이 좋아졌겠지만 여전히 차별이 많음은 감출 수 없는 진실입니다. 어느 미국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이 백인 목사님은 늘 흑백의 평등을 외치며 흑인도 사랑해야 한다고 설교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딸이 결혼할 남자라고 한 남자를 데려 왔는데 그 남자가 바로 흑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목사님은 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절대로 흑인과 결혼할 수 없다.” 흑백 평등을 외치기는 외쳐도 심지어 흑인의 권리를 위해 몸 바쳐 싸우기는 쉬워도 정말 자신이 흑인을 평등하게 대하기는 어려웠던 것입니다.

크리스챤의 삶에서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습니다. 모든 것이 중요합니다. 민주화를 위해서도, 인권의 존중을 위해서도, 애국에 있어서도, 그렇게 외치고, 또 그 이상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싸우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우리 하나 하나가 그렇게 행동하고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매주 외치는 하나님의 꿈쟁이라는 외침과 내가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구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제로 그런 정신으로 사는 것이 시급하고 더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살 때, 세상은 우리의 외침처럼 조금씩 변화될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말에 대해서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하루에 얼마나 많은 말을 하십니까? 얼마나 많은 말을 듣습니까? 말을 연령에 따라서 하거나 듣는 것도 차이가 있습니다. 보통 중/고 여학생들은 하루에 평균 2만 단어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참 여성들 대단합니다. 아무튼지 우리청년들도 말을 참 많이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대화 가운데 주류는 어떠한 것입니까? 요즘 청소년들의 대화를 보면 반드시 들어가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욕입니다.

서울의 한 목사님의 딸은 초등학교까지는 욕을 한마디도 안하고 자랐는데, 중학교에 들어가자 도대체 대화를 할 수가 없어서 욕을 배워서 학교에서만 욕을 한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욕설을 자세히 살펴보면 대부분 부정적인 용어들입니다. 그런데 아십니까? 자신의 말대로 되어진다고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그대로 되기에 말을 함부로 쓰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 아닙니다. 몇 년전에 나온 책 중에서 [자녀의 성공은 부모의 말에 달려있다.]가 있습니다. 부모님이 자녀에게 어떤 말을 사용하는 것도 너무나 중요합니다. 여러분의 부모님은 여러분에게 무슨 말을 가장 많이 사용하십니까? 망할 놈, 썩을 놈, ... 오직 우리 부모님이 쓰는 말 중에서 긍정적인 말이 코풀 때 “흥해라”로 우리가 흥하고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본문은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줍니다. 말은 불같고, 배의 키 같다고 합니다. 첫째는 우리가 사용하는 말을 불로 표현하였습니다. 불은 처음에 그 크기가 작을 지라도 그 사용하는 방법에 따라서, 불을 어두움을 물러가게 하고 주변을 밝히는 유용한 도구가 됩니다. 밥을 짓습니다. 추위를 물러가게 합니다. 더러운 것들을 태워 없애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유용한 불이 잘못 사용되면, 그 피해는 이루말로 형용할 수 없이 커집니다. 지난 4월 5일 식목일에 170여개의 산불이 났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우연히 버린 담배꽁초 하나가 산을 불사르고, 집을 태우며, 심지어 한 도시를 전부 태워버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우리 입에서 나오는 한마디의 말이 그렇게 큰 파장이 될 수도 있음을 말해줍니다. 오늘 본문중에 6절에서 부정적인 말의 파괴성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즉 부정적인 말은 다른 사람에게 하였다 할지라도, 자기 자신의 온몸을 더럽히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자신의 삶의 수레바퀴를 스스로 태워버리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수레바퀴가 둥굴둥굴하여서 잘 굴러가야 됩니다. 그런데 수레바퀴가 고장이 나면 그 수레는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바퀴하나가 고장이 나도 수레가 굴러갈 수 없는데 본문에는 수레바퀴가 불살라졌다고 표현합니다. 그 수레가 우리의 인생인데, 수레바퀴가 불살라졌다면 , 우리의 제어하지 못하는 입술이 결국 우리 인생의 발목을 잡고, 우리를 실패자로 만들어버린 다는 것입니다. 나이는 먹어가고, 몸을 커져가도 진정 내 삶을 굴러가게 할 수레바퀴가 불살라졌다면, 그 보다 비참한 인생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럼으로 우리의 입을 통해 주님을 찬양하고 다른 사람을 세워주며, 복음을 전하는 아름다운 입술이 되어야 합니다.

저에게 상담을 하신 분은 잘 아시겠지만, 어려움이 있다고 호소하는 분들에게 동일하게 권면하는 말이 있습니다. 가능한 말을 아끼라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평강이 없는 상태에서 나오는 대부분의 말은 분노와 정죄와 거짓말로 자신을 정당화하려고합니다. 이것이 죄인인 인간의 모습니다.

특히 우리는 어떤 형태로든 거짓말을 조심해야합니다. 우리는 편의를 위해 쉽게 거짓말을 부탁할 때가 있습니다. 전화가 왔는데 "나 없다고 그래."라고 하는 것이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혹은 학생들의 대리출석 요구도 이에 해당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정직하게 살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거짓말을 부탁하지 말고 사회 전체를 정직한 사회로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 나라는 비교적 거짓말이 많은 사회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거짓을 없애려는 노력이야말로 이 사회에서 소금과 빛의 가장 중요한 사명인지 모릅니다.

산상수훈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말에 대해서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로 대답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진실을 지키기 위해 과장된 말을 피하라는 교훈도 포함된다. 여기는 침묵의 거짓을 피하라는 권고가 암시되어있습니다. 지나치게 조심하거나 혹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무조건 침묵만 한다면 그 자체가 거짓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둘째로 말은 배의 키와 같다고 표현하였습니다. 저는 배를 수년 동안 탔습니다. 배는 크기도 다양하고, 속도도 다양합니다. 그러나 동일한 것이 있습니다. 아무리 속도가 빠르고, 커다란 배일지라도 키는 아주 작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작게 보이는 키가 배의 방향을 결정합니다.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무의식이던 의식적이던 우리 입술에서 나온 부정적인 말은 내 삶을 파괴와 실패로 몰고 갑니다. 성경은 우리의 말이 배의 키와 같다고 합니다. 우리의 말이 키와 같다면 우리는 우리의 말 한마디가 우리 공동체에 얼마나 커다란 파장을 일으키는지 알아야 합니다. 부정적인 말 한마디는 공동체 전체를 부정적으로 끌고 가게 됨을 알아야 합니다.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말 한마디는 공동체를 빛나게 합니다.

우리는 민수기 13-14장 이야기를 잘 알고 있습니다. 13장에 모세는 12지파의 대표를 뽑아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을 정탐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12명이 똑같이 가나안땅을 정탐했음에도 불구하고, 두 부류로 정확히 나누어졌습니다. 여호수아 갈렙 2사람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가 두루 정탐한 그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그 땅과 그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런데 똑같은 상황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10명은 아주 부정적인 대답을 합니다. “우리가 두루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사람들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결국 백성들은 10사람의 부정적인 말을 듣고, 밤새도록 통곡하였습니다. “우리가 애굽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아이고 죽겠네..... 그들은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하며, 돌을 들어 여호수아와 갈렙을 죽이려했습니다. 이것이 부정적인 말의 결과입니다. 더 무서운 것은 14장 28절의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결국 죽겠네를 외쳤던 사람들은 다 광양에서 죽음을 당했습니다. 우리는 가능한 긍정적인 말을 해야합니다. 주님의 약속을 믿고 신뢰해야합니다.

어차피 우리는 죄인입니다. 죄인이 얼마나 의롭습니까? 다 비슷비슷합니다. 우리는 서로를 세워주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설사 상대방이 연약해서 잘못을 행하였을지라도 우리는 사랑으로 바로 잡아주어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안에 계시기에 우리에게는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의 가능성을 보셨기 때문에 제자들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주님도 포기하지 않으셨는데, 우리가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우리 또한 인내하면서 서로를 세워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배에 키가 몇 개 있는 줄 아십니까? 아무리 커다란 배라 할지라도 키는 한 개입니다. 키가 한 개가 아니라, 여러 개이면 배는 목적지까지 나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여호수아공동체에서 키는 무엇이어야 합니까?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키가 되셔서, 우리 공동체를 이끌어 가셔야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말, 우리의 혀가 키라면 우리는 우리의 혀, 우리의 말로 무엇을 이야기하여야 하는지 자명합니다. 우리의 혀는 예수님을 위해 사용하여야 합니다. 우리의 혀로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말을 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4절에 배는 사공의 뜻대로 운행한다고 기록합니다.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은 사공이신 주님이 원하시는 뜻대로 사용되어져야합니다. 그렇기에 늘 우리는 조심해야합니다.

7절에 보면 짐승은 길들일 수 있다고 합니다. 만일 짐승에게 재갈을 물리지 않으면 통제가 안되게 마련입니다. EX)재갈 물리지 않은 소의 마지막

말을 조심해야합니다. 항상 덕스러운 말을 하도록 노력하십시오. 잘못한 것이 있을지라도 조심해야합니다. 우리주님은 마태복음 7장에서 우리에게 비판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비판하지 말라는 말씀은 심판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즉 우리가 비판한 기준이 완전하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쉽게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우리 자신도 비판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우리에게는 더 큰 잘못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함부로 남을 비판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말은 다른 사람을 살리는 생명이어야합니다. 우리속에 말씀이 육신이되어 함께 하시는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대언되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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