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제단을 수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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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중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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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제단을 수축하라 왕상18:30-40

어떤 사람은 지금 우리의 시대를 영적 빈곤의 시대라고 표현했습니다. 교회도 많고, 성경공부교재도 많고, 설교와 많은 세미나가 많음에 불구하고 사람들은 만족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며 세상속에서 방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홍수 때 먹을 물 없다는 것처럼 우리시대에 영적 빈곤은 심각한 수준이라고 말들 합니다. 우리도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그렇게 믿음이 좋게 보이던 사람들이 그렇게도 쉽게 하나님을 떠난다는 사실입니다.

왜 그렇게도 믿음이 좋게 보이던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서 세상으로 향하겠습니까?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입니다. 하나는 돈을 벌기 위해서이고 다른 하나는 육적인 쾌락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돈과 육체적 쾌락의 유혹은 교회를 떠나버린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이곳에 앉아있는 우리에게도 얼마든지 찾아올 수 있는 유혹들입니다. 우리의 삶을 돌이켜 보십시오. 얼마나 쉽게 하나님보다 세상을 선택합니까? 우리도 타협하지만 우리 자녀들에게 하나님보다 세상의 방법을 택하라고 말합니까? 우리는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섬겨서는 하나님의 부흥을 경험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잘 아는 내용입니다. 이스라엘 아합왕이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맞이하면서 이스라엘에는 처절한 영적 빈곤이 찾아오게 됩니다. 이세벨은 남편 아합왕을 꼬셔서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도록 합니다. 그토록 오랫동안 하나님을 섬기던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쉽게 하나님을 떠났을까를 생각하면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엘리야는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왕상18:21절입니다."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 지니라 하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 물론 악한 아세벨이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을 죽이고 제단을 훼파하며, 백성들을 위협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백성들이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섬기던 것은 훨씬 전부터였습니다.

처음 여호수아의 인도를 따라 가나안땅에 들어갔을 때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동안 목축업을 하다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농사를 짓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거기서 농사를 짓던 사람들 얘기가 농사를 지으려면 농사의 신인 바알과 아세라를 섬겨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농사가 잘 되라고 바알을 섬기기 시작합니다. 광야가 많은 곳에서 정착한 이스라엘에게는 무엇보다도 비가 절실히 요구되었습니다. 그런데 바알과 아세라는 비를 주고 농사를 주는 신으로 여겨졌습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자 농사가 잘 되었습니까? 아닙니다. 농사지은 것마저 대적에게 다 뺏기고, 계속해서 고난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신 하나님이라고 고백했으면서도, 농사도 하나나님께서 주님이시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농사는 바알과 아세라가 도와주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농사를 지으면서 바알의 도움을 받기 위해 하나님은 버리게 되고 그로 인해 오히려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관하십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하나님이 주관하십니다. 하나님만 믿고 그 뜻에 따라 살면 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복을 받습니다. 세상의 사업은 거짓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은 마치 농사를 지으려면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처음 가나안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사람들은 정복된 땅 사람들의 말을 듣고 넘어간 것처럼 오늘 본문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세벨이 그렇게 말하니까 넘어갔습니다. 우습지 않습니까? 오랫동안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던 백성이 자기에게 온 왕비의 말을 듣고 우상을 섬기는 겁니다. 우리가 세상에 나가서 세상 사람들이 다 그렇게 말한다고 그들의 말을 들으면 이것과 얼마나 비슷합니까? 우리는 세상을 변화시키고 구원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고 세상을 따르겠습니까? 세상이 누구의 것입니까? 우리 아버지의 것입니다. 우리는 담대하게 하나님을 따라야 합니다. 그리고 자녀들을 이렇게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도 살고 우리 가문이 살고, 양림교회가 살고, 이 민족이 살고, 세상이 사는 길입니다.

내일부터 청년수련회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안에 서 있지 아니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면서도 세상의 말에 따라서 살아가는 어리석음을 범할 수 있음을 우리가 기억해야합니다. 우리 청년들을 초청합니다. 세상의 끝없는 유혹을 이겨내려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삶을 훈련해야합니다. 세상은 말합니다. 하나님만 섬기는 것으로 부족하다. 돈도 섬겨야하고, 명예도 섬겨야하고, 권세도 섬겨야하고, 세상과 타협해야한다. 우리는 담대히 이러한 유혹을 이겨내고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해야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우상숭배를 한 또 다른 이유는 당시 우상숭배가 육체적인 쾌락을 제공해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종교적인 이유로 음란한 행위를 많이 합니다. 이들은 신들의 성행위로 인해 땅이 많은 생산을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그런 음란한 행동을 하면 신들이 자극을 받아 성행위를 하고 따라서 농사가 잘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우상숭배를 하면 자연히 육욕적인 쾌락을 누리게 됩니다. 이런 것에 빠져 우상숭배를 한 겁니다.

오늘날 우리나 우리 자녀들이 하나님을 떠나는 중요한 이유는 세상 쾌락을 좇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여러 가지 쾌락을 즐기기 위해 예배에 참석하지 않습니다. 교회생활을 멀리합니다. 우리는 이런 쾌락의 끝이 다시는 쾌락을 누릴 수 없는 파멸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이해할 수 있지만 자녀들은 잘 모릅니다. 이게 우리의 고민입니다.

아무튼지 백성들이 하나님을 멀리하고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자 하나님께서는 가뭄을 주셨고, 그것 때문에 많은 고통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가 당당하게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선지자들을 갈멜산으로 오라고 하여 참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결정하자는 대결을 갖자고 제안을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하나님 한 분만 따르겠다는 결단입니다. 하나님90%에 세상10%를 섬기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적당한 신앙은 신앙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로 우리의 신앙은 뜨거워야합니다. 미지근한 신앙은 믿음이 아니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요한 계시록 3장에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한 주님의 말씀을 보아도 우리의 신앙이 어떠해야함을 알 수 있습니다.
계3:15-16 "15-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16-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우리 주님은 이 땅에 불을 던지러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눅12:49"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주님은 우리가 주님의 불로 활활 타올라서 주님의 기쁨으로 세상을 변화시키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도 주님께서 불을 던져주셔서 우리 영혼이 완전히 주님의 뜻으로 새롭게 되기를 원하시지요?

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주목해 보아야합니다. 왜냐하면 오늘 본문에 하나님께서는 불을 던져주셨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불을 경험하기 원한다면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보다 먼저 준비되어야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오늘 본문을 주목해보십시오. 어떤 신이 참신인지의 대결은 짐승을 잡아 불로 응답하시는 신이 참 신으로 인정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먼저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인이 바알과 아세라의 이름을 부르며 불을 달라했습니다.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이 저녁 소제 드릴 때까지 소리를 지르고, 칼과 창으로 자신들의 몸을 상하게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도움을 받는다는 그 자체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러면 엘리야는 어떻게 했습니까? 오늘 본문 30절을 읽겠습니다. "엘리야가 모든 백성을 향하여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라 백성이 다 그에게 가까이 가매 그가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하되"

엘리야는 모든 백성을 불러모아 첫 번째 한 것이 무너진 제단을 수축하였습니다. 수축한다는 것은 새롭게 쌓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미 있었던 제단을 새롭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었던 제단이 허물어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이 우상숭배로 하나님을 만나는 임재의 장소가 허물어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께 드려져야할 제단이 무너져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부흥을 경험하길 원한다면 무엇보다도 우리의 삶에 무너진 제단이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만나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었던 제단이 허물어진 곳에서 무슨 하나님의 부흥이 있겠습니까? 그곳에서 어떤 하나님의 도움을 기대할 수 있단 말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예배당을 사랑합니다. 그렇기에 증/개축을 시작하려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오늘은 기공식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마치 엘리야가 무너진 제단을 수축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모아서 하나님의 전을 사모하고 그 사랑하는 열심에서 주님을 만나는 것이 우리의 기쁨이어야합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기를 얼마나 원했습니다. 대상17:1절입니다. "다윗이 그 궁전에 거할 때에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나는 백향목 궁에 거주하거늘 여호와의 언약궤는 휘장 아래에 있도다" - 다윗은 자신은 편한 곳에서 생활하면서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언약궤가 휘장 아래 있는 것을 가슴아파했습니다. 성전을 건축하고 싶어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성전을 건축을 허락하지 않으시고, 그 아들에게야 허락하십니다. 우리의 때에 성전이 증/개축할 수 있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하고싶다고 가능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에게 허락되지 않은 성전 건축이었으나 다윗은 성심을 다해서 성전건축을 준비합니다. 나의 때에 허락하지 않았을지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주님께 드렸습니다.

대상22:14-16" 14-내가 환난중에 여호와의 성전을 위하여 금 십만 달란트와 은 백만 달란트와 놋과 철을 그 무게를 달 수 없을 만큼 심히 많이 준비하였고 또 재목과 돌을 준비하였으나 너는 더할 것이며. 15-또 장인이 네게 많이 있나니 곧 석수와 목수와 온갖 일에 익숙한 모든 사람이니라 16-금과 은과 놋과 철이 무수하니 너는 일어나 일하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실지로다 하니라"

성경의 역사는 항상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세우는 일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에 관심을 집중했습니다. 아담의 범죄이후에 계속되는 범죄로 하나님께서 물로 세상을 멸하시려 하실 때에 노아를 통해서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노아가 1년 이상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동물을 싣고 방주에서 처음 나왔을 때 하였던 것이 바로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예배한 것이었습니다. (창세기8장 20절)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르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하란을 떠나서 가나안땅에 들어갔을 때 가장 먼저 한 것도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창세기12장 7절) 그뿐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옮겨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예배를 드린 역사는 이삭과 야곱으로 계속해서 연결되어집니다.

하나님의 불을/ 하나님의 부흥을 경험하려는 사람에게 있어서 반드시 우선적으로 해야할 과업은 바로 무너진 제단을 수축하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제단을 수축하는 것이 중요함을 알기에 모든 백성을 가까이 오라고 하고 보여주었습니다. 우리가 성전을 증/개축하는 일은 마치 무너진 제단을 수축하는 일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을 새롭게 하는 일에는 어느 특정사람들만의 몫이 아닙니다. 엘리야가 모든 백성을 가까이와서 제단을 수축하는 것을 보여준 것처럼 우리의 증/ 개축의 일을 우리 모든 성도가 가까이 와서 함께 기도하며, 함께 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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