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력을 키우라

작성자 정보

  • 김중곤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얼마 전 샘물지 칼럼을 통해서 제 여동생의 글을 실은 적이 있습니다. 제 동생이 초등학교 4학년 때 가정에 큰 아픔을 경험했습니다. 동생은 초등학교를 졸업했는데 중학교에 들어갈 형편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집을 뛰쳐나갔습니다. 남보다 늦게 중학교에 다녔지만, 또 고등학교에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어렵사리 고등학교에 들어갔는데 학교를 마칠 수 없었습니다. 물론 신앙생활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상처와 아픔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남들은 별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에도 동생은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평상시에는 정말 행복하게 보이고, 아무런 문제도 없게 보이는데 그 안에 잠재하여있는 상처를 누가 자극하면 그 안에서 분노가 돌출된 것입니다. 그렇게 세상을 원망하며 살았는데 얼마 전에 비로서 예수님의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알게 되자 자신에 대한 원망, 이전에 대한 일들을 용서하게 되었습니다. 아직은 멀었습니다만 그의 내공을 점점 커져가고 있음을 보면서 기뻐하고 있습니다.

사실 지금 이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외모를 보아서는 누가 상처를 받았고, 지금도 힘들어하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마치 비가 내려면 고이는 부분을 발견하듯이 어떤 조그만 일에 비처럼 자극이 내리면 상처는 보여지고 힘든 싸움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 대한 원망이 아니라 그 일을 조절하려고 함에도 불구하고 잘 되지 않아서 자신에게 실망함입니다. 내 자신이 나를 실망스럽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그러면 이러한 상처를 어떻게 취급해야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겠습니까? 바로 우리 속사람을 강하게 해야 합니다. 내 육체를 다스릴 수 있도록 내공을 키워야하는 뜻입니다. 잠언 16장 32절 말씀입니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오늘 본문에 나오는 주인공 입다를 아십니까? 입다는 기생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본 부인이 아이를 낳고 장성하자, 집에서 쫓겨난 신세가 되었습니다.

마치 우리나라 옛 홍길동을 본 기분입니다. 어머니는 기생입니다. 아들을 낳고는 자신의 아버지께 맡겨버렸습니다. 우리가 잘 알지 않습니까? 어머니 없이 자라는 서러움말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아버지의 친자들이 성장하자 형제들에게 쫓겨난 신세가 되었습니다.그는 어머니에게/ 아버지에게/ 형제들에게 버림받은 상처투성이가 된 것입니다. 입다는 형제들에게서 생명의 위협을 느꼈든지 그는 형제들을 피하여 돕 땅에 거했다고 기록합니다. 참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그가 쫓겨난 것을 상상해 보십시오. 세상의 눈으로 보면 복수하고 싶고, 원수처럼 여길 법도 합니다.

사람에게 버림받은 것 만큼이나 서글픈 것은 없습니다. 특히 부모나 형제간에 이런 일이 있을 때의 아픔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이나 큰 것입니다. 저는 지난 6년간 한 고아원 아이들을 보살핀 적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들과 가까이서 거의 매일 만나고, 성경공부하고, 놀고 했다가, 이제는 가까이 있지 못하여 자주 만날 수는 없지만, 일년에 두 번씩 방학을 이용하여 수련회를 진행하며 그들과 가깝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수련회 때 인간관계훈련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이런 질문이 있었습니다.
[너에게서 가장 슬픈 추억이 무엇이냐?]는 이에 “부모님이 자신을 고아원에 떨구어 놓고 갈 때” 였다고 많은 아이들이 기록했었습니다. ‘하루만 이곳에 있어라, 그러면 내일 데리러 온다고’ 말해 놓고는 몇 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은 부모들에게 배신당한 그 아픔이 가장 슬픈 추억이라는 것입니다. 입다가 마치 그러하였습니다.

참 가엾게 보이는 입다입니다. 세상적인 안목으로 보면 그 사람은 곁길로 가기 쉽상입니다. 세상을 비관하고 자포자기하고, 복수의 칼날을 갈 수도 있었습니다. 자신을 버린 부모를 원망하고 형제에게 복수의 칼날을 세울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자신을 비참하게 태어나게 한 세상을 원망하고 세상을 자포자기하며 살아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입다는 복수심으로 인생을 허비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에는 자세히 기록되어있지는 않습니다만 그의 삶은 어려운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었던가 봅니다.

이런 생활이 알려지자, 많은 잡류들이 그에게 몰려들었습니다. 잡류들이 어떤 사람들이겠습니까? 억울한 자, 상처 받은 자, 전과자, 집에서 쫓겨난 자들입니다.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사람들입니다. 입다는 이러한 잡류들이 자신에게 몰려오자 그들의 우두머리가 됩니다. 그는 잡류들의 우두머리가 되었으나 그들을 조직폭력배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성경을 잘 읽어보면 아시겠지만 그는 그들을 신앙으로 훈련시킵니다. 복수감, 억울함으로 가득한 분노 대신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계획을 알리고, 함께 세워져 갑니다.

이제껏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억울함을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가슴앓이는 해결되지 않고, 문제가 해결되지도 못했습니다. 이제 입다를 만난 잡류들은 자신의 원통함을 하나님께 가져왔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면서 해결하게 됩니다.

이러한 일은 다윗 시대에서 있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죽이고 백성들에게 계속하여 인기가 높아가자 자신의 장인이었던 사울왕은 사위 다윗을 시기하여 죽이려고 합니다. 왕에게 생명의 위협을 느낀 다윗은 계속하여 도망하는 신세를 겪습니다. 그가 한번은 도망한 곳이 바로 국경지대의 아둘람 굴이었습니다. (삼상22:1-2)“그러므로 다윗이 그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듣고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명 가량이었더라”

깡패,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사람들, 마음이 원통한 사람들, 환난 당한 사람들이 다윗을 찾아와서 다윗과 함께 합니다. 다윗과 함께 지내면서 그들은 신앙에 눈뜨게됩니다. 그들의 상처와 답답함과 원통함을 해결하는 것은 주먹이나 칼이 아니라 믿음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나중에 다윗이 왕위에 오르자 다윗에게로 몰려왔던 잡류와 같았던 사람들이 다윗 왕국의 국무대신들이 됩니다. 그런데 오늘 입다에게도 이런한 역사가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새벽이슬같은 청년들이여! 아무리 가정이 불우하고, 아픔이 있고, 상처가 있고, 답답한 일이 있고, 억울한 일을 당하고, 고난 속에 있을지라도 우리 주님이 계시면 문제가 아닌 줄로 믿습니다. 진짜문제는 하나님없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쓸 수 없는 사람은 없는 법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붙들리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새벽이슬같은 청년들이여!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계획없이 이 땅에 보낸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비록 어려운 일이 생겨도, 상처가 있고, 답답한 일을 당하고, 억울한 일이 있을지라도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일들을 통해 더욱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하며, 큰 일꾼으로 사용하시길 원하십니다. 사실 믿음이란? 이러한 사실을 믿고 주님을 붙드는 것입니다.

그져 예배당 나오는 것이 믿음이 아니라,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믿고 확신하며 살아가는 것이 진실된 믿음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있는 고난, 답답함, 가정의 아픔, 상처, 억울한 일이 결코 우리를 낙심시킬 수 없는 법입니다. 도리어 그러한 것들은 다른 사람들이 경험할 수 없는 값비싼 보석과도 같은 것입니다.

시편119장 67절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
욥23:10절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나오리라}
물론 남들처럼 편하게 공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등록금 때마다 가슴앓이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학원 다니며 하고 싶은 것 다 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해도 도리어 피해자가 되는 아픔을 겪기도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청년들이여. 하나님이 내 아버지십니다. 우리 아버지는 부자십니다. 우리 아버지는 못하는 일이 없으십니다. 당당하십시오. 어깨를 펴십시오.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입다는 이런 하나님의 뜻을 알았습니다. 그렇기에 복수감으로 일생을 헛되이 살지 않았습니다. 죄에 방임하여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습니다. 한숨과, 절망과, 낙망과, 울음으로 인생을 소비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자신을 통해 하나님께서 쓰실 것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였던 것입니다. 바로 내공을 키운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고, 세상 사람들에게는 실패자처럼 보이고, 세상 사람들에게는 소망이 없는 사람처럼 보일지라도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세워지면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놀라운 일을 감당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내공을 키울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내공은 쉽게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가만있어도 키가 자라듯이 내공이 키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공은 나를 만드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출발하여야합니다. 그분의 임재앞에 잠잠히 내 자신을 비우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그분의 말씀앞에 내 연약함을 치유받고 상처로 비어있는 심령의 자리에 주님의 보혈로 채워 넣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말씀묵상이 필요합니다. 우리공동체는 매일성경이라는 교재로 함께 말씀묵상을 합니다. 사랑하는 청년들이여 내공을 키우시길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말씀묵상을 도전하십시오. 내공을 키워가는 것은 마라톤과 같이 장시간이 필요로 합니다. 힘들다고 포기하지 말고 다시 일어서서 도전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기도하셔야합니다. 다윗의 시편을 보십시오. 다윗은 수없는 위기속에서 늘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면 내 힘이 아닌 주님의 힘으로 상처로부터 돌출하는 모든 어려움을 극복해 가는 것입니다. 기도하고 싶은데 어떻게 기도해야할지 모른다고 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렇기에 함께 기도하는 자리에 오셔야합니다. 토요 기도모임에 그런 분을 초대합니다. 함께 기도하면서 내공을 키워가야 합니다.

에베소서 3장16절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상처는 겉의 문제가 아닙니다. 상처는 속 사람의 문제입니다. 그렇기에 속사람을 강건하게 해야 합니다. 속사람을 강건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성령님의 능력인 것입니다. 성령님께 내 삶을 맡겨야합니다. 그분의 치료의 손길을 경험해야 합니다. 가끔은 세상의 소리를 끊고 주님의 소리만 들을 수 있어야합니다. 잠잠히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신음소리까지 들으시며 응답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철저하게 신뢰해야합니다. 반드시 내 삶을 역적시키실 주님을 신뢰해야합니다. 그분께 나아가면 내 인생이 달라질 것을 확신해야합니다. 철저하게 믿음생활을 해야 합니다. 내 인생의 성공여부는 내가 하나님을 어떻게 믿고 신뢰하는가에 달려있습니다. 똑같이 예수믿고 신앙생활을 해도 내공의 차이 때문에 삶의 자리를 변화시키기도 하고, 환경에 지배당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상처와 아픔을 이겨낸 입다는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사사가 되었습니다. 자신이 사사가 되겠다고 나서지도 않았습니다. 자신이 준비되어있자 사람들이 나서서 사사가 되어줄 것을 요청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준비되어있으면 하나님도 우리는 써 주실 것입니다. 물론 사람도 우리를 인정할 것입니다.

입다의 삶을 통해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귀천을 따지지 않고 쓰신다는 것입니다. 입다는 기생의 아들이라고 해서 멸시당하고 집안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여건을 보고 쓰시지 않습니다. 선지자를 보십시오. 아모스 같은 사람은 목자요 뽕나무를 기르던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외모와 관계없이 들어서 쓰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다른 여건 때문에 교만해지지도 말고 실망하지도 말고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고 담대하게 사역해야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필요한 은사와 직분과 열매를 주실 것으로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꿈쟁이가 되시기 바랍니다.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125 / 2 Page
번호
제목
이름

성경공부


최근글


새댓글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