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개오의 인카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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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중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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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언가를 누리기 위해 살아갑니다. 그렇기에 최고의 부를 얻고도, 헛살았다고 말합니다. 최고의 자리를 경험했음에도 부족하게 느껴집니다. 최고의 공부를 하였어도, 헛되다는 고백을 합니다. 마치 솔로몬왕의 고백처럼,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하구요.

우리가 속지 말아야할 것 중의 한 가지가 바로 이러한 세상 가치속에 빠져 들어가는 것입니다. 사탄은 그 자체가 거짓말장입니다. 우리를 속이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이 사탄이 하는 일입니다. 사탄은 우리를 유혹합니다. 이 땅이 전부다, 이 땅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성공해라, 이 땅에서 인정받아야한다. 이 땅에서 하고 싶어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사탄의 말을 듣고 영생과 구원없이 살게되면 그 영혼은 영원한 멸망이라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합니다.

오늘 본문에 그런 가치로 살아왔던 한 사람이 나옵니다. 바로 삭개오입니다. 그는 여리고의 세리장이었습니다. 당시 여리고는 전체 팔레스타인에서 3대 상권중의 하나가 형성될 만큼이나 부유한 도시였습니다. 그곳에서 세리장이면 가장 많은 재물을 모을 수 있는 특정한 권세를 가진 사람입니다. 잘은 모르나 당시 여리고에서 최고의 부자였을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당시의 세리라는 직업은 로마의 강점기아래에 속국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세금을 걷어서 로마에 바치는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부당하게 세금을 많이 징수시켜서 자신들의 배를 채웠기 때문에 당시의 창녀나 죄인들과 동일하게 취급을 당했습니다.

돈은 많아도 친구하나 없는 사람,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비난과 조롱을 받는 사람이 바로 삭개오였습니다. 그렇게 갈바 몰라 방황하는 그에게 예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오늘 본문을 자세히 읽어보면 예수님은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의 행보에는 반드시 선하신 뜻이 있는 법입니다. 예수님이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려는 것은 삭개오를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삭개오를 만나려고 여리고를 들어가 지나가신 예수님은 우리 한사람 한사람을 만나기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나를 만나기를 원하십니다. 나를 만나셔서 참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를 만나기 위해 오신 예수님을 믿는다는 고백 속에는 내가 예수님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나를 찾아오셔서 나를 만나주셨다는 고백이 먼저 선행되어야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불교나 흰두교나, 유교와는 다릅니다. 내가 구원자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날 위해 주님이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믿음은 은혜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조롱과 비난과 따돌림의 자리에 있던 삭개오를 찾아오신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찾아오십니다. 오늘도 찾아오셨습니다. 우리가 예배당에 나오기 이전에 먼저 이곳에 와계신 하나님이심을 믿으셔야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나에게 관심이 있습니다. 나를 향해서 그 눈을 드시고, 나의 소리를 들으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세상에서 왕따였던 삭개오, 돈은 있었지만 친구 하나없이 삭개오를 보십시오. 그러한 삶이 기쁨이 있었겠습니까? 늘 두려움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우리도 돈 많은 사람이 더 두렵다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삭개오도 예수님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죄인도 만나주시는 분이심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환자도 고쳐주시는 능력있으신 분이심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이 어떠한 사람인지 궁금하여 보고자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싶은데 삭개오는 키가 작은 한계가 있었습니다. 또 그곳에는 너무 많은 사람이 있어서 그에게는 한계처럼 보였습니다. 당시사람들에게 가장 혐오스런 사람이 세리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있는 곳에서 자신의 모습이 드러나는 것은 두려움이고 한계였음이 분명합니다. 삭개오에게 한계가 있었던 것처럼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 하는 우리에게도 한계는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성품이 한계일 수 있습니다.(늘 화를 내는 나를 사람들이 어떻게 볼까?) 어떤 사람에게는 습관적인 죄가 한계일 수도 있습니다.(나의 연약함을 알고있는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볼까?) 어떤 사람에게는 환경이 한계가 될 수도 있습니다. 너무 일이 많아서 나를 만나고 싶어 하시는 주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없게만 보이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지위가 한계일 수 있습니다. 너무 유명한데 내가 교회를 다닌다면 사람들이 나를 뭐라고 볼까를 생각하다가 결국 믿음 없이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청년들이여, 우리의 한계를 두려워 마십시오. 어디나 한계는 있습니다. 한계가 없을 때 예수님을 믿겠다는 사람중에서 단 한사람도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오늘이 나의 한계와의 마지막 싸움이라는 마음으로 한계를 딛고 주님께 나아가는 사람이 승리자입니다. 그 사람이 주님을 만날 것입니다.

자신의 한계를 인식한 삭개오가 어떻게 합니까? 키가 작고, 많은 사람들이 밀려오는 상황에서 그가 한계를 극복하는 모습을 보십시오. 그는 먼저 앞으로 달려갑니다. 그리고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갑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때로는 부끄럽게 여기는 그 자리를 뚫고 나가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갈 수 있는 결단이 있어야합니다. 예수님을 만나길 원하십니까? 나를 찾아오신 그분을 경험하고 싶으십니까? 그분 앞으로 달려가십시오. 나만을 위해서 준비된 돌무화과나무를 찾으십시오. 친구들의 이목, 동생의 이목, 나의 포지션이라는 이목을 극복하십시오.

삭개오가 돌감람나무에 올라간다는 사실자체가 얼마나 대단한 결단입니까? 여리고의 최고부자이며, 키도 작았고, 그러나 어른인 삭개오가 예수님의 얼굴한 번 보려고 커다란 나무위로 올라간 것입니다.

마침내 예수님께서 그곳에 이르사 쳐다보시며 말씀하십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우리가 용기와 열정과 간절한 소망을 갖고 예수님을 만나려고 한계를 향해 우리의 발을 내 딛으면 주님은 우리를 만나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곳에 오셔서 삭개오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이름을 알고계십니다. 예수님은 나의 모든 것을 아십니다. 나의 외로움, 나의 열정, 나의 아픔, 나의 고독, 나의 실패, 나의 눈물, 나의 갈등, 나의 헌신....... 주님은 아십니다. 아무도 나의 이 고통과 아픔과 슬픔과 내 환경을 모른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이 아십니다. 그 주님이 나의 모든 것을 아신다고 생각하면 건너지 못할 강이 없습니다.

새벽이슬같은 청년들이여, 누가 이 세상을 변화시키겠습니까? 내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이 나의 주인님이심을 아는 사람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런 어려움의 자리에 있을 때 우리를 불러주시는 분입니다. 지금도 우리의 이름을 부르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사랑하는 나의 딸아..
우리는 나의 이름을 부르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합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앞에 삭개오는 급히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이름을 부를 때 나의 삶이 어떠해야하겠는가 결단하십시오. 나를 부르신 예수님을 영접해야합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기쁨으로 영접하자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뭇사람이 수군거렸다고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면 뭇사람들이 수군거릴 수 있습니다. 너 같은 죄인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너 같은 깍쟁이가 교회를 다닌다고, 너같이 공부 못하는 사람이, 너 같은 얘가............................

우리가 세상을 변화시킬 꿈쟁이로 주님께 쓰임 받으려면 사탄의 수군거림/ 뭇사람들의 수군거림의 방해를 이겨낼 용기가 있어야합니다. 자존심도 내려놓아야합니다. 주님께서 나를 만나셔서 회복시키고 싶어하시는 부분을 정직하게 내려놓으셔야합니다. 이전의 어떤 모습으로 살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만남이 중요하고, 그 만남 이후에 나의삶이 어떠해야함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삭개오는 변했습니다. 평생 재물을 위해서 살았고, 그 재물이 자신을 행복하게 할 것이라고 했던 그가 예수님이 참된 행복임을 발견하자, 자신의 재물을 가난한 사람에게 절반을 주겠다고 하며, 혹시 자신이 남의 것을 빼앗았다면 4배가 갚겠다고 합니다. 주님을 만난 인생은 놀라운 변화를 경험합니다.

사랑하는 새벽이슬같은 청년들이여!
오늘 그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길 소원하는 사람은 앞으로 나오십시오. 혼자 앓고있는 고민, 좌절, 낙망, 실패, 근심, 고통을 주님께로 가져오십시오. 주님을 만나십시오. 주님이 부르십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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