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자기 피로 세운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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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중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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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양림교회에 온지 벌써 6년이 다 되어갑니다. 처음 2년동안 초등부를 맡았고, 그 이후 2년은 장년 교구와 고등부를 겸하여 맡았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은혜로 청년공동체를 맡았습니다. 아마 1년 1개월이 지나고있다고 생각됩니다.

어느 목사든 청년부서를 맡고 싶어한다고 생각이 듭니다. 청년의 열정과 그 힘을 함께 누리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청년부에 대한 동경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청년공동체를 섬기게 되자 두려움이 많았습니다. 왜냐하면 지도자에 의해서 청년들의 삶의 길이 좌우될 수 있고, 청년의 때에 결정한 대부분의 삶의 방향은 평생과 연결되어지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지금 제 입에서 나오는 한마디 한마디는 여러분의 평생에 하나씩 기둥이 세워지는 것과 같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러니 얼마나 두렵고 떨리는 일이었겠습니까? 물론 지금도 떨립니다.

대부분의 청년들은 지금 제 손에 들고있는 조그만 책갈피를 가지고 계실 것입니다. 지난해 금년 사역을 준비하면서 사명선언문과 그 실천방향을 정해보았습니다. 물론 지금 정해진 것이 영원히 청년공동체의 사명선언문이라고는 말할 수는 없지만, 제가 청년공동체를 맡으면서 청년의 시기에 꼭 이것만은 마음에 새기고 청년이라는 딱지를 떼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 아시겠지만, 제가 사명 선언문을 읽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꿈쟁이로서 훈련받아 성령충만함으로 교회를 세우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님의 증인이 되는 것이다. ”
청년사역을 일년하면서 특별하게 한 것은 없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감사 드리는 것은 여러분이 저를 사랑해주심입니다. 참 연약한 점이 많은데 여러분이 감싸주셨고, 존중해주셨기에 한해의 청년사역에 주님의 기름 부으심이 있었다는 것을 고백 드립니다.

이제 두 번째 해를 맞이하면서, 청년공동체에 다시금 확인하고 우리의 마음에 새기고 싶어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사명선언문에 있는 내용입니다. 여러번 설교를 통해서 말씀드렸습니다만 오늘은 그 부분은 좀더 깊이 있게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사명선언문에는 크게는 두가지의 사명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처음은 교회를 세우는 것이고, 나중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님의 증인이 되자는 것입니다.

이 두가지의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 무엇보다 기초가 중요합니다. 그 기초는 하나님의 꿈쟁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예전부터 쟁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했습니다. 국어사전의 뜻을 살펴보았습니다. 사람의 성질/습관 또는 모양, 행동등과 일부 직종을 나타내는 말에 붙어 그러한 사람을 칭하는 말입니다. 멋쟁이/ 심술쟁이/ 겁쟁이/요술쟁이/옹기쟁이,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고, 그분의 모양, 그분의 행동을 나타내는 사람이라는 뜻이 바로 하나님의 꿈쟁이라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의 꿈을 이루어 드리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꿈쟁이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손과 발이 되어 세상을 치료하는 사명을 갖는다는 말과 같습니다. 우리가 주일마다 거의 18번처럼 노래 부르는 “물이 바다 덮음같이” 에서도 나오지 않습니까?
♬주의 손과 발되어 세상을 치유하며 주 섬기게 하소서♪

여러분은 이 노래를 부르면서 물이 바다를 덮는다는 의미의 이미지가 생겨집니까?아마 잘 모를지 모릅니다. 저는 한나호에서 선교사역을 하면서 이런 경험이 있습니다. 원주민들과 함께 낚시를 갔습니다. 그러니까? 태평양에도 밀물과 썰물이 있는데, 썰물때에 물이 빠져나가면 커다란 바다가 육지처럼 섬과 섬들을 드러내 보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낚시를 하는 곳은 그 물이 빠져나간 섬들중에서 한 곳입니다. 그곳에는 연못처럼 물이 고여있습니다. 그런데 그리 깊지 않은 곳에 얼마나 고기가 많은지 1초만에 고기가 올라옵니다.

아마 상상이 안가시겠지만,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고기가 잘 낚여도 원주민이 빨리 나가자고 할 때가 옵니다. 바로 밀물의 시간입니다. 밀물이 밀려오기 시작하면 삽시간에 그 넓은 육지와 같았던 곳이 깊은 바다로 변해버립니다. 그렇기에 고기 낚은 재미에 늦게 그곳을 벗어나다가는 물에 빠져 죽기 십상입니다.

물은 그 넓은 바다를 순식간에 덮어버렸습니다. 우리가 배에 올라서면 물이 바다를 덮는 것을 보게됩니다. 저는 이 노래를 부르면서 그런 날이 오기를 소망하면서 그 감격을 꿈꿉니다. 하나님의 꿈쟁이들이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꿈쟁이로서의 삶을 살아갈 때 사람들이 인식하기도 전에 밀물처럼 아버지의 영광으로 변화되어있을 그 삶의 자리를 바라다봅니다.

이전에는 혼자 잘살고 잘먹고, 성공하고, 출세하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꿈쟁이가 된다는 것은 세상 전부가 하나님을 섬기는 공동체로서 설 때까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힘이 들어도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결단을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꿈쟁이로 세워주셨다는 마음의 결단이 있어야합니다. 즉 내가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서 이땅에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을 확신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확신이 생겨질 때 드디어 우리에게 사명이라는 단어가 기억됩니다. 이미 말씀드렸듯이 교회를 세우는 것과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님의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오늘은 교회에 대한 부분만 나누려고합니다.

첫 번째는 교회를 세워주십시오. 새벽이슬같은 청년들이여 누가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있겠습니까? 바로 여러분입니다. 그런데 세상을 변화시키려면 필수적으로 교회가 세워져야합니다. 교회가 세워짐없이 세상이 변화된 역사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유사 이래로 한 민족의 흥망성쇄는 그 종교의 흥망성쇄와 함께 했습니다. 고려가 망했을 때 이미 불교가 타락할때로 타락해서 그들은 더 이상 자신의 삶을 성찰하거나, 불경의 가르침은 악세사리가 되어있었고, 종교와 정치에 깊이 관여하고 있었습니다. 어찌 고려라는 한 민족뿐이겠습니까?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전의 카톨릭의 1,000년을 흑암의 시기, 암흑의 시기, 타락의 시기라고 말합니다. 중세 1000년의 암흑시기는 곧 교회의 암흑을 의미했습니다. 중세 1000년의 타락의 시기는 곧 교회의 타락을 의미했습니다. 제가 불교나 카톨릭을 말하는 것은 교회의 건물이나 교리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여전히 사람의 문제라는 것을 여러분은 다 아실 것입니다. 중세 카톨릭이 타락하고, 흑암속에 있자 세상의 어둠속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개신교회가 들어서서 신앙의 자유가 생겼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구교회는 몰락해가고 있습니다. 커다란 건물은 더 이상 유지자체가 되지 않기에 유흥가로 변하기도 했고, 모슬렘 사원으로 바뀌기도 했습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성경이 없어서입니까? 아니면 목사가 없어서입니까? 아니면 신학교나, 성경공부교재가 없어서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없어서입니다.

즉 교회의 교회됨은 사람에게 있습니다. 교회의 일원인 형제, 자매님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사랑하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더더구나 교회를 세우겠다는 마음이 있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 중에 종말에 대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 중에 종말의 교회에 고민을 던져 주는 말씀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종말은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된 후에야 올 것이라는 마태복음 24:14의 말씀입니다. 즉 교회의 교회됨은 땅 끝까지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계속해야 유지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교회가 땅 끝까지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소홀히 하면 교회는 교회됨을 유지할 수 없다는 말과 같은 맥락입니다. 결국 복음은 계속해서 증거되어질 것입니다.

또 한가지는 종말에는 세상에 믿음이 남아 있을 것인지 의문스럽다는 누가복음 18:8말씀입니다. 주님이 오셨을 때 너희에게 믿음이라는 것을 발견하기 어렵다는 말입니다. 참 안타까운 현상입니다. 분명 복음은 계속해서 증거 되어짐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다시 오셨을 때 세상에서 믿음있는 사람들이 적을 것이라는 염려를 합니다.

우리 청년공동체에 금년 159명의 새가족이 등록했습니다. 엄청난 수가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에게서 믿음을 찾을 수 없다고 말할까 두렵습니다. 그러면 복음이 계속해서 증거되면서 믿음으로도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 길을 택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하실 분이 계실 것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복음도 증거하면서 믿음을 유지해가는 방법이 딱 하나있습니다. 그것은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이 건물을 말하는 것이 아닌줄 아시죠?

영국을 보십시오. 미국을 보십시오. 그들에게서 얼마나 많은 부패와 타락이 있습니까? 낙태, 개인주의, 자본주의, 동성애, 자살, 이기주의.........

도대체 기독교정신으로 세워진 나라에게 무슨 말도 안되는 일이 일어납니까? 왜 그렇습니까? 바로 교회가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교회됨은 제자에게 있습니다. 성도가 현재 몇 명 출석하는가? 교회재정은 얼마나 되는가? 담임목사님이 누구인가? 중요한 사항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교회의 교회됨을 말해줄 수는 없습니다. 교회의 교회됨은 지금 예수님을 위해 자신의 삶을 드려 살아가며 다음세대를 준비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왜 유럽의 교회들이 문을 닫고 건물이 팔려갑니까? 예전에 성도들이 없었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에게도 수천/ 수만의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제자가 되려하지 않았습니다. 제자가 되려하지 않은 사람이 다음세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의 말씀이 악세사리가 되고, 교회는 결혼식이나, 장례식을 치러주는 기관으로 바꿔버린 교회가 무슨 능력이 있고, 세상을 변화시키겠습니까?

결국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것은 지금 이 자리에 앉아있는 여러분에 의해서 좌우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곳에 앉아있는 내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야합니다. 평범한 교인일 수는 없습니다. 예배는 빠지지 않는다고 자부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께서 시키신 일을 세상속에서 해야하는 것입니다. 내가 제자가 되고 또 다른 제자를 위하여 만들기 위하여 내 자신을 드릴 때 비로서 교회가 교회되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 꿈동산에서 우리 어린이/ 중고등부서에도 고민이 많습니다. 자신의 삶을 불태워 어린영혼들을 살필 교사가 너무나 부족합니다. 공과는 누구나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대로 살려고 몸부림치면서 삶으로 예수님을 보여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 우리의 아픔입니다. 왜 1000명이 넘는 교인이라면서 그렇게도 사람이 없는 것입니까? 제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제자가 없으면 결코 제자를 만들 수 없습니다.

저는 사명선언문을 만들면서 교회에 대해서 문구를 어떻게 넣어야하는가 무척 고민했습니다. 교회를 세우는 것이 쉽지 않기에 훈련받아야함을 명시했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으로 충만해야만 교회를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바로 세워진다는 것은 이 시대가 바로 세워진다는 중차대한 사건입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바울이 3차 선교여행을 마치고, 로마까지 복음을 증거하러 가려는 목적으로 예루살렘으로 가면서 에베소 장로들을 청하여 말씀을 증거한 내용입니다. 이 말씀을 듣는 장로들이란 우리말로 하자면 교회 지도자들입니다. 바울은 교회지도자들에게 유언과 같이 말씀하고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자기피로 값주고 사셨다고 말씀하십니다. 피로 값주고 사실만큼 소중한 교회를 세워가는 것은 돈이나, 건물이나, 사람의 수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꿈쟁이로 훈련받아 성령충만함으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예배에 참석하는 한사람, 한사람이 교회입니다. 각자가 말씀으로 바로서고, 더불어 교회의 미래를 세워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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