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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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중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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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첫 왕인 사울은 아주 유능한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에서 최고의 미남이었고, 키도 다른 사람보다 컸고, 전쟁의 영웅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기준으로는 사울왕은 최고의 성공을 거둔 사람으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시골 무명으로 태어나 왕이 되었습니다. 키 크고, 잘생기고, 멋진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사울은 가장 불행한 인생이었습니다. 하루도 편한 날 없이 평생을 살다가 전쟁터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삶을 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무엇이 사울왕을 그렇게 비참한 인생이 되게 했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그의 믿음 때문입니다. 바로 잘못된 신앙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만일 우리의 신앙이 잘못 세워지면 사울 왕처럼 존귀하고, 위대하고, 잘생기고, 영웅으로 사회에서 인정받고, 부귀와 영화를 누렸다할지라도 비참한 인생으로 전락한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비참한 인생이 되어버린 사울의 삶이 신앙의 문제라고 한다면 이해가 되십니까? 사울이 우상을 섬겼던 사람도 아닙니다. 사울이 하나님을 믿지 않았던 것도 아닙니다. 그에게서 믿음이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잘못된 믿음이 문제였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믿었으나 잘못 믿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결국 그를 비참하게 만들어버렸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보다 잘못 믿는 사람이 더 위험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잘못된 신앙이 얼마나 위험한지 우리 주위의 이단들을 보시면 아시쟎습니까? 신천지의 폭력성을 보십시오. 그들은 이만희씨를 보혜사 성령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들과 다른 것에 대해서 어떤 폭력도 방법도 정당화시키고 있습니다. 그들은 믿음이 없는 불신자보다 훨씬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구원파를 보십시오. 그들은 예수님을 한번 믿었으면 거듭났기에 더 이상 회개로 헌금도, 필요 없다고 말합니다. 죄인인 우리를 얼마나 간과한 것입니까? 그들은 통일교의 우맹화를 보십시오. 신앙촌...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을 믿습니까? 하나님을 믿되 내 기준으로 믿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을 믿되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여 바른 믿음을 갖기 바랍니다. 우리 자신은 절대 기준이 될 수없습니다. 하루에도 수없이 내 생각과 가치가 변하기도하고, 내가 옳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수없이 수정되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신앙 또한 내가 기준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내 생각대로 믿겠다는 믿음만큼 위험하고 심각한 것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택함을 받았던 사울이었지만 잘못된 믿음 때문에 서서히 하나님께 버림을 받기 시작합니다. 사울의 모습을 통해서 잘못된 믿음의 모습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신앙의 모습은 어떠한 것인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불러 아말렉을 치게 하셨습니다. 아말렉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출애굽 했을 때 광야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뒤에서 공격했고 약탈했습니다. 하나님은 이것에 대해 징계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사울이 왕이 되자 그 징벌을 사울에게 시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하신 명령을 보십시오. 삼상15:3절을 읽겠습니다.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오와 젖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 하니”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하신 명령은 너무나 준엄합니다. 아말렉 사람들과 가축을 다 진멸하라고 하셨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아말렉 사람과의 싸움에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명령한대로 모든 사람들과 가축을 진멸하라는 명령에 사울이 순종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본문 20-21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나는 실로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여 여호와께서 보내신 길로 가서 아말렉 왕 아각을 끌어왔고 아말렉 사람들을 진멸하였으나, 21-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끌어왔나이다 하는지라”

사울왕은 아말렉과 싸움에서 승리한 다음에 아말렉왕 아각도 살려주고 가축 중에서 좋은 것도 살려서 데리고 돌아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의 이러한 것을 보시고는 사무엘에게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신다고 하시며 사울을 버리시겠다고 합니다. 삼상15:11절을 읽겠습니다.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신지라 사무엘이 근심하여 온밤을 여호와께 부르짖으니라”

사울의 믿음은 기왕 죽일 것들인데 그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가축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려고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사울의 생각에는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한 일이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울은 자기가 순종하지 않아도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면 하나님이 좋아하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 좋은 짐승으로 제사만 드려주면 하나님은 좋아할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죽이라는 명령을 어겨도 제사만 드리면 하나님이 좋아하시고 또 그 값으로 오히려 자기가 복을 더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무엘이 뭐라고 대답합니까? 15장22절입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사울의 믿음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더라도 좋은 것으로 제사만 드리면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세상에서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살면서, 예배만 드리면 된다고 생각하는 믿음입니다. 세상에서 하나님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서 교회에 헌금만 하면 된다는 생각하는 믿음입니다.

사울 같은 신앙을 가지면 절대 순종하지 못합니다. 순종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뭔가 자기가 해드리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믿음은 사실 믿음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외식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순종하지 않으니까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비참한 인생으로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직장에서 거짓말을 자주하고, 이웃과 늘 싸우고, 직장하사들을 종 부리듯 하면서도 교회에서 헌금하고 예배드리면 하나님이 기뻐할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사울과 같은 믿음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순종입니다.

사울과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자기가 잘 되기 위해 하나님을 섬깁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성공과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한 도구처럼 되어집니다.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기에 자신의 생각과 뜻대로 되어지지 않으면 견디지 못합니다. 하나님보다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합니다. 항상 자기자신이 중심입니다. 사울이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늘 평안하지 못하였습니다. 왕이면서도 자신의 나라를 위해서 목숨걸고 골리앗을 물리쳐준 다윗을 원수처럼 여겼고, 다윗을 죽이려고 평생의 시간을 허비했습니다. 자기가 중심이기에 조그만 실패와 좌절에도 일어설 용기를 얻지 못합니다. 하나님께 찬양하고, 예배의 자리에 있을 때에는 주님을 섬기는 듯하다가 맘대로 되지 않으면 어쩔 줄 몰라하며 자신의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알라딘의 요술램프가 아닙니다. 우리의 기도는 열려라 참깨를 외치면 그대로 되어지는 주문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조절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저는 사울의 믿음을 보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을 떠올립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하시기 5일전에 사람들은 예수님께 자신의 옷을 깔고, 종려가지를 흔들며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하며 찬양했습니다. 예수님을 메시야라고 외치면서 환영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무리들이 그 외침으로 예수님을 환영했든지 온 성이 요동했다고 기록합니다. 그런데 왜 5일 만에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는 사나운 폭꾼으로 변했겠습니까? 사실 빌라도는 예수님을 놓아주려고 애를 썼습니다. 심지어 살인자 바라바를 데리고 와서 예수님을 놓아주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습니다.

도대체 5일 만에 어떤 일이 있었기에 호산나를 외치던 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돌변했겠습니까? 바로 잘못된 믿음 때문입니다. 그들의 믿음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면 로마군대를 기적으로 물리치시고, 이스라엘에 정치적 해방을 주시는 메시야로 예수님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로마 군병을 무찌르고 나라를 구하기는커녕 로마 군병에게 잡혀 초라한 몰골로 서 있습니다. 군중으로서는 자존심이 상하는 일입니다. 또한 이런 사람을 메시야로 생각했다는 것이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 같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거부한 것입니다. 빌라도가 살려주려고 해도 이들이 오히려 더 외칩니다. ꡒ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ꡓ

자기 자신이 중심인 신앙이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되어야만 한다고 고집하는 것은 무서운 죄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죄입니다. 내가 중심이 된 신앙은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고난도 기쁨이 될 수 있어야하는데 그런 믿음을 가진 사람은 고난과 실패앞에서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민감해야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민감해야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뜻과 계획이 있으셔서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한사람 한사람을 택하여 부르시고 우리에게 이 땅에서 해야 할 일들을 맡기신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소명과 사명이라고 말합니다. 소명은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셨다는 확신입니다. 그것은 교회에서만이 아니라 삶의 모든 자리가 소명의 자리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이 가정에, 이 직장에, 이 학교에 세워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명을 발견한 사람만이 하나님께서 지금 세워주신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을 알게 됩니다. 그것을 사명이라고 합니다. 소명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주님께 순종할 수 없게 됩니다. 예배를 드리고, 헌금을 하고 예배당에서 봉사를 많이 해도 기쁨과 감격이 아닌 의무감과 불평과 불만이 나오게 됩니다.

오늘 기독병원에 근무하는 광주양림교회 가족들이 주님께 헌신을 고백합니다. 환자 한사람을 대할 때마다 예수님을 대할 때처럼 최선을 다하셔야합니다. 사람에 따라서 차별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목사가 가면 친절하다가 가난한 사람이나 소외된 사람에게 아무렇게나 대해서는 안됩니다.

내 중심이 아니라 주님중심으로 주님의 뜻을 구하고 그 뜻 앞에 순종해야합니다. 때로는 순종하기 싫어하는 것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나와는 취미가 맞지 않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훈련은 어렵기도하고, 힘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명령하시면 순종하여야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바로 이러한 순종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순종은 제사보다 낫습니다.
미가6:6-8절을 읽겠습니다. “6-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년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7-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수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8-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우리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겸손하게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나주님의 기쁨 되기 원하네...
1. 나 주님의 기쁨 되기 원하네 내 마음을 새롭게 하소서
. 새 부대가 되게 하여 주사 주님의 빛 비추게 하소서
. 새 부대가 되게 하여 주사 주님의 빛 비추게 하소서
.
. 2.겸손히 내 마음 드립니다 나의 모든 것 받으소서
. 나의 맘 깨끗케 씻어주사 주의 길로 행하게 하소서
..후렴..
. 내가 원하는 한 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 내가 원하는 한 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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