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님의 손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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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중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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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의 손길로 창세기 1장 1 -2

지난 금요일 신문에 나온 내용입니다. "국내에서는 하루에 30명이 자살로 숨지고 있으며 960명이 자살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왜 더 GNP 가 높아지고 예전보다 훨씬 살기가 좋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살을 시도하고, 죽겠다고 합니까?

우리가 믿었던 과학으로 행복하게만 보였던 우리 시대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우리가 믿는 믿음은 과학을 뛰어넘어서 역사하는 하나님의 손길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과학을 넘지 못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이 세상의 어떠한 학문과 지식과 과학을 뛰어넘는 소중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신앙에서 창세기 1장 1절은 너무나 중요한 우리의 고백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인정하여야 우리의 신앙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세상사람들은 세상이 진화되었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원래 아무것도 없었는데 아메바가 생겼고, 그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저등동물이 되었고, 나중에는 고등동물이 되었고, 그것이 나중에 인간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은 이 천지가 우연히 생겼다고 말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우연히 이 세상이 만들어 질 수 있습니까? "시계를 믹서기에 넣고 1억년 동안 돌린다고 시계가 조립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하나님께서 너무나 오묘하게 이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창조하다"라는 1장 1절의 히브리 단어 "바라"는 오직 하나님께서 적용되는 낱말입니다. 즉 사람들이 무엇을 발견하는 수준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사용하는 발명, 발견은 이미 있는 사실에서 먼저 깨우쳤을 뿐이지만, 이 "바라"라는 단어의 뜻은 "무에서부터의 창조를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마음은 항상 무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 이 천지를 무에서 만드신 것을 믿는다면, 우리의 존재, 내 자신의 출처가 분명합니다. 나를 만드신 분이 하나님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 60억의 사람들이 있지만, 하나님앞에서는 나는 혼자입니다. 유일한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나를 하나님께서 만드셨다고 믿는다면, 나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오늘 나를 살게 하시고, 오늘 나를 존재케 하신 하나님의 오묘하신 계획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이곳에 나오신 하나님의 꿈쟁이 한사람 한사람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천지창조가 1절로서 전체를 설명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2절부터는 그 창조의 과정을 설명하고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무엇이든지 과정이 있습니다. 이 과정이 있어야 우리가 하나님보시기에 아름다운 존재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2절의 모습은 창조의 아름다움이 전혀 보이지 않는 이상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위에 운행하시니라" 2절의 모습은 하나님께서 보실 때 아름답다고 말씀하시기 전의 모습입니다. 그 모습은 3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혼돈한 땅입니다.
혼돈 되었다는 의미로 영어단어를 fomeless를 사용합니다. 그 말의 의미는 형태가 없다는 뜻이며, 의미가 없다는 의미로도 사용이 됩니다. 마치 끝없이 얽이고 설혀있는 실타래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분명 처음도 있고, 끝 부분이 있는데 중간에 너무나 얽혀있어서, 풀기가 너무나 어려운 모습입니다. 바로 이러한 모습이 우리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아름답다고 말씀하시기 전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이 모습은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모습과 흡사하지 않습니까?

지금 세상에 살고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닙니까? 자신이 왜 태어났는지도 모르면서 삽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삽니다. 무엇 때문에 공부하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나라사람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전라도 사람인 거 아십니까? 이번 수능때도 휴대폰으로 사고친 것을 보십시오. 무엇 때문에 돈을 벌어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무엇 때문에 오늘이 존재하는지 모릅니다. 이런 사람들이 부자일 수도 있고, 어떤 권력을 가질 수도 있고, 세상사람들의 기준으로 다 가진 사람일 수도 있을지 모르나 그 사람은 혼돈된 사람입니다. 의미도 없고, 목적도 없는 모습입니다. 마치 거품처럼 지금 겉모습이 화려할지 모르나 형태가 없습니다. 후 불면 남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자기 자신이 주인입니다. 그렇기에 눈에 보이는 재미, 내가 즐기면 된다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자신이 자기의 주인이니 재미로 살아갑니다. 자기 자신이 기준입니다.

혼전순결의 기준이 무너진 사람들은 사랑하면 언제든지 성관계를 가져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가치의 기준이 무너지면서 많은 수의 청소년들이 원조교제도 좋은 아르바이트라고 생각하기도합니다. 정직의 기준이 무너지면서, 은행에서 수억의 돈을 빼돌리는 것을 자신의 머리가 총명하다는 착각을 하게되었습니다. 진학의 기준이 무너지면서, 컨닝을 하든, 부정을 하든 무슨 짓을 하든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게되었습니다. 미의 기준을 상실하니, 하나님께서 주신 걸작품인 자신의 몸을 마음대로 난도질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가정의 기준이 무너지면서 조금만 의견차가 나면 이혼하는 것이 유행처럼 생각하게되었습니다. 직업의 기준이 서질 않으니, 굶어죽어도 3D직종은 안하겠다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정신 없이 타락하고있습니다. 사람들이 기준 없이, 무엇을 위해 사는 지도 모르면서, 살고있습니다.

혹시 우리 청년들중에도 이런 모습이 있지는 않습니까? 내가 내 삶의 주인인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주인이 아닙니다. 우리의 주인은 하나님이 되셔야합니다. 형태없이 얽히고 설힌 세상에서 우리는 철저하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얽힌 실타래를 풀고, 예수님을 모시고 살면서 아직도 얽히고 설힌 사람들, 혼돈되어 있어, 목적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길을 가르쳐 주어야 할 것입니다.
새벽이슬같은 청년들이여 누가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나의 창조주이심을 믿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그대를 통해서 세상은 변화될 것입니다.

2. 공허한 땅입니다.
영어로 이 단어는 empty입니다. 즉 텅 비어있다는 의미입니다. 즉 원래 비어있는 것이 목적이 아닌데, 무언가 들어있어야 하는데, 들어있어야 할 것이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즉 히브리어의 뜻으로는 "가치 있다고 판단될 만한 것이 하나도 없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겉은 멀정한데 정말 채워져야 할 것이 채워지지 않은 상태를 말합니다. 채워져야 할 것이 채워지지 않았으니 소리만 요란합니다. 마치 세상의 것이 이와 같습니다. 세상사람들의 모습이 이러합니다. 무언가 계속하여 자신에게 채우려고 몸부림을 칩니다. 그러나 채워지지 않습니다. 술도, 담배도, 마약도, 인터넷게임도, 채팅도, 사이에서 자신만의 공간도 자신을 채울 수는 없습니다. 그것으로 자신을 채우리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착각입니다.

2001년 신문에 보니 일본사람들의 자살에 대하여 기록하고있었습니다. 그들은 평균 하루에 100명이 자살한다고 합니다. 왜 그렇게 부유하고, 부족할 것이 없게 보이는 사람들이 사살하겠습니까? 바로 공허하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채워져야 할 것이 채워지지 않으니, 무엇을 가져도 부귀영화를 가져도 허망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들은 모두가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이것은 세상의 것을 다 가져도 채워지지 않는 법입니다. 이 하나님만이 채울 공간을 채우지 못하니 사람들이 자살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볼 때 겉모습이 화려하다고 그 사람이 채워졌다고, 생각하면 오해입니다. 겉모습이 화려할수록 더 공허한 사람일 확률이 높습니다. 오히려 화장을 더 진하게 한 사람이 더 공허할 확률이 높은 법입니다.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화장을 진한 사람은 없는가요?

열왕기 하 5장의 나아만 장군을 보십시오. 아람의 군대장관 왕에게 총애받고, 백성들에게 부러움을 사는 사람입니다. 국가의 영웅입니다. 그런데 그 화려한 갑옷 안에는 문드러져 가는 문둥병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부러움, 사람들의 칭찬, 화려한 갑옷이 도대체 무슨 유익일 수 있겠습니까? 그는 공허했습니다.

요한복음 4장의 사마리아 여인에게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남편을 잘 만나면 자신의 공허함을 채워질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을 5명을 갈아치우고, 지금 살고 있는 사람이 또 있음에도 그의 공허함은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이치가 이와같습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을 만나자 그의 삶에 살맛이 났습니다. 그는 물동이를 던져버리고 마을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내가 메시야를 만났다고 외쳤습니다.

새벽이슬같은 청년들이여 누가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겠습니까? 내안에 공허한 곳을 하나님으로 채운 그대를 통하여 세상은 변화될 것입니다.

3.흑암이 깊음위에 있는 땅입니다.
여기서 흑암이 깊음 위에 있다는 것은 "밑으로 깊이를 잴 수 없는 엄청난 심연이 있는 거대한 파도가 물결치는 현상"을 보여주는 단어입니다. 흑암이 깊다는 것은 어둠이 너무 커서, 너무 깊어서 너무 캄캄해서 도저히 우리가 그 깊이를 잴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둠 속에 있으면 일단 생활은 가능합니다. 저번에 한번 소개했습니다. "환선 동굴안의 생물 - 박쥐, 새우= 다 장님이다" 왜 빛이 없으니까!!

우리 주위에 살고있는 사람들도 이와 같은 것입니다. 자신들이 너무 어둠속에 있어서 장님처럼 살아가면서도, 살고있으니 자신은 장님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어두움 속에 있으면 어둠을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어두움을 몰아 낼 수 있습니까? 그 유일한 방법은 빛입니다. 빛이오면 어둠은 자연히 물러가게 됩니다. 아직도 어둠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 빛 되신 주님을 나누어주어야 합니다. 혹 우리가운데 있는 어둠도 주님께 가져가야 합니다. 우리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요한복음 8장12절"

우리가 만일 매일, 매시간, 매순간 주님을 따르면, 우리 안에 있는 생명의 빛으로 인하여 어둠이 물러가고,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 빛 안에 있을 때 주님께서는 보시기에 심히 아름답다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이 땅을 위해 우리 주님은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본문 2절 하반절에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영은 성령님을 말씀하십니다. 즉 성령님은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땅을 위해 운행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운행한다는 뜻은 무엇입니까?

"어미새가 새끼를 까기 위해서 계속하여 알을 품고있는 모습"을 뜻합니다. 우리 성령님께서는 지금도 죄악 가운데 방황하는 불신자가 영적인 질서 속에 들어오시기를 위하여 지금도 어미새가 알을 품듯이 품고 계십니다. 더불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자신의 가치의 껍질, 전통의 껍질, 생각의 껍질, 학문의 껍질을 가진 나를 깨뜨리고 하나님을 진심으로 알아가기를 소원하시며 우리를 품고 계십니다.

성령님의 별명이 보혜사라고 합니다. 보호해주시고, 은혜를 베푸시고, 가르쳐주신다는 뜻입니다. 성령님은 지금도 우리를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셔서, 진리가운데 살아가도록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이제 우리는 성령님께 내 자신을 내어드려야 합니다. 성령님이 내 안에서 역사하시도록 나를 부인해야합니다. 내가 알고, 믿고있는 지식으로 하나님을 제한하지 마십시오. 내가 가진 지식과 가치로 하나님을 가두지 마십시오. 내가 가진 껍질을 벗겨내야 주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운행하시는 성령님께 내 자신을 드린 사람을 통하여 세상은 아버지의 영광을 보게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하루, 아니 일평생 주님께 내 자신을 드려야합니다.

우리는 성령님을 마음에 모시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성령님께 순종함으로 아직도 혼돈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위에 있는 영혼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어주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나를 위해서도 운행하시는 성령님은 나의 모든 문제, 나의 신앙의 성숙, 나의 기도제목을 위해서도 지금도 운행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여, 날마다 감사하며, 기뻐하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기 바랍니다.

새벽이슬같은 청년들이여 누가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겠습니까? 운행하시는 성령님께 자신을 맡긴 사람을 통해서 껍질이 벗겨지고, 세상은 아버지의 영광을 보게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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