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야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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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중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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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번 13일간의 일정으로 콜롬비아 보고타 MCI국제 G-12컨벤션에 잘 다녀왔습니다. 부족한 종에게 그러한 기회를 허락하신 담임목사님과 장로님들 그리고 모든 성도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한국에서는 약 30명이 참석을 했는데, 저는 미국 비자가 없어서 프랑스 파리로 돌아서 가야했습니다. 인천 공항에서 파리로 11시간의 비행중에서 거의 쉴 수가 없었습니다. 젊은 남녀가 한명의 아이씩 안고 여행을 했는데 아이가 거의 10시간을 쉴새 없이 울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아이를 위해서 기도해주기 위해 갔는데, 프랑스로 입양되어간다고 합니다. 우는 아이의 얼굴을 보면서 저도 쉽새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야. 야 울지 마라. 네 부모는 너를 버렸을지 모르나. 네 하나님은 결코 너를 버리지 않는단다. 너는 이땅에 사명을 가지고 태어났단다. 내가 기도해줄께" 울면서 아이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세상에 한국 국민의 20%/ 때론 25%가 크리스챤인데, 크고 즐비한 교회가 천지인데 여전히 우리나라는 이렇게 우는 아이를 수출하는구나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아무리 교회가 많아도, 성도가 많아도 사회를 변화시키지 못하는 교회의 아픔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세계입양 1위라는 고민을 가지고 하루밤을 보내고 콜롬비아에 도착했습니다. 콜롬비아에서 첫날에도 그 입양된 아이의 울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컨벤션이 시작되는 월요일 오전에 드디어 그 물음에 대한 답을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금번 컨벤션의 주제가 “하나님의 제단을 수축하라”였습니다. 가정의 문제, 교회의 문제, 민족의 문제, 개개인의 영혼의 문제 원인이 단지 현상으로가 아니라 무너진 하나님의 제단에 있음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즉 모든 문제의 근원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출발한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부모로부터 버림받아 울면서 입양되어가는 어린아이의 모습은 울고 있는 내안의 영혼이며, 우리교회의 부흥을 바라고 가정과 사회와 민족을 향한 우리 아버지의 마음이며, 이 시대의 눈물이었습니다.

울고 있는 아이에게 가짜 젖꼭지를 물린다고 아이의 마음속에 불안을 어떻게 물리치겠습니까? 가짜 젖꼭지와 같은 세상의 높은 경제력과 과학적지식이 있다고 어떻게 우리영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기에 우리의 모든 문제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출발해야만 진정한 답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상황을 보십시오. 하나님을 믿는다는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서 우상을 숭배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우상을 섬기는 악한 무리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비를 내린다는 바알과 아세라를 섬겼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3년간이나 비가 내리지 않아 기근으로 어려움속에 있었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원래 목축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곳 가나안땅 사람들은 목축보다 농사를 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농사를 지으려면 비를 내리는 바알과 아세라를 섬겨야 된다고 가나안 사람들이 말합니다. 연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비도 하나님께서 내려주심을 믿지 못하고, 농사를 지을 때는 농사의 신을 섬겨야 된다는 유혹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을 완전히 떠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사에는 하나님께서 주님이시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농사는 바알과 아세라가 도와주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농사를 지으면서 바알의 도움을 받기 위해 하나님은 버리게 되고 그로 인해 오히려 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관하십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하나님이 주관하십니다. 예배당에서 예배드리는 것만 주관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가정, 우리의 자녀, 우리의 직장, 우리의 나라도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믿고 그 뜻에 따라 살면 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복을 받습니다. 세상의 사업은 거짓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은 마치 농사를 지으려면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처음 가나안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사람들이 정복된 땅 사람들의 말을 듣고 우상을 섬겼는데 오늘 본문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세벨이 그렇게 말하니까 넘어갔습니다. 우습지 않습니까? 오랫동안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던 백성이 자기에게 온 왕비의 말을 듣고 우상을 섬기는 겁니다. 우리가 세상에 나가서 세상 사람들이 말한다고 그들의 말을 듣는다면 이것과 얼마나 비슷합니까? 우리는 세상을 변화시키고 구원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고 세상을 따르겠습니까? 세상이 누구의 것입니까? 우리 아버지의 것입니다. 우리는 담대하게 하나님을 따라야 합니다. 그리고 자녀들을 이렇게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도 살고 우리 가정이 살고, 양림교회가 살고, 이 민족이 살고, 세상이 사는 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하나님 한 분만 따르겠다는 결단입니다. 하나님90%에 세상10%를 섬기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적당한 신앙은 신앙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로 우리의 신앙은 뜨거워야합니다. 미지근한 신앙은 믿음이 아니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요한 계시록 3장에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한 주님의 말씀을 보아도 우리의 신앙이 어떠해야함을 알 수 있습니다. 계3:15-16 “15-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16-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오늘 본문을 주목해보십시오. 어떤 신이 참신인지의 대결은 짐승을 잡아 불로 응답하시는 신이 참 신으로 인정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먼저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인이 바알과 아세라의 이름을 부르며 불을 달라했습니다.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이 저녁 소제 드릴 때까지 소리를 지르고, 칼과 창으로 자신들의 몸을 상하게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도움을 받는다는 그 자체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러면 엘리야는 어떻게 했습니까? 오늘 본문 30절을 읽겠습니다. “엘리야가 모든 백성을 향하여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라 백성이 다 그에게 가까이 가매 그가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하되”

엘리야가 첫 번째 한 것은 모든 백성을 불러모아 무너진 제단을 수축하였습니다. 수축한다는 것은 없었던 것을 쌓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미 있었던 제단을 새롭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제단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있었습니다만, 허물어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었던 제단이 허물어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정확하게 어려움을 격고있는 문제의 원인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찾았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제단은 이미 우상에게 빼앗겨버린 형식과 흔적만 남아있는 허물어져 버린 제단에서는 하나님의 불의 역사를 기대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제단을 수축하는 일을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제단이 무너져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부흥을 경험하길 원한다면 무엇보다도 우리의 삶에 무너진 제단이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 가정에 부흥을 소망한다면 우리 가정에 무너져 내린 하나님의 제단을 수축하셔야합니다. 우리교회에 부흥을 사모한다면 우리 교회에 허물어진 제단을 수축해야합니다. 이 민족의 부흥 또한 민족의 심장에 무너진 하나님의 제단을 수축하는 일에서부터 출발하여야합니다. 하나님과 만나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었던 제단이 허물어진 곳에서 무슨 하나님의 부흥이 있겠습니까? 그곳에서 어떤 하나님의 도움을 기대할 수 있단 말입니까?

하나님의 불을/ 하나님의 부흥을 경험하려는 사람에게 있어서 반드시 우선적으로 해야 할 과업은 바로 무너진 제단을 수축하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제단을 수축하는 것이 중요함을 알았기에 모든 백성을 가까이 오라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제단을 수축했던 것입니다.

무너진 제단이 수축되어지자 엘리야는 하나님께 기도드립니다. 36-37절입니다. “36-저녁소제 드릴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37-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제단이 수축되어지고 이러한 기도 후에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불을 내리셔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과 도랑의 물을 태우셨습니다. 하늘에서 불이 임하였던 것은 하나님의 제단을 수축한 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였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려는 결단으로 제단을 수축하면 하나님은 언제든지 하늘에서 불을 내리셔서, 부흥의 불길을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엘리야 시대에 하늘의 불을 허락하신 엘리야의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과거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은 지금 나와 함께 하신 현재의 하나님이십니다. 모세가 호렙산에서 하나님을 만났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모세가 하나님의 이름을 알려달라고 하자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I AM으로 존재하시는 것입니다. I WAS가 아닙니다. I WILL도 아닙니다. 언제나 I AM입니다. 현재의 하나님이시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허물어진 제단을 수축하여 믿음으로 하나님을 대면하면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불의 역사를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제단을 수축한다는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하나님 한분만을 예배하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뜻만을 따르겠다는 결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우리를 보내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이루라는 것입니다. 가정을 세우신 것도 교회를 세우신 것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제단이 무너졌다는 것을 오해하지 마십시오. 예배가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당이 무너졌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제단이 무너졌다는 것은 하나님만 섬겨야할 곳에 또 다른 무언가를 섬기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한분만을 섬기겠다는 존재이유를 상실하면 하나님의 제단을 훼파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것을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누가복음 19장 10절이니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그것을 위해서 교회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만일 교회가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 구원하여 주님의 제자로 삼는 사역을 우선으로 삼지 않는다면 어떠한 형태이든 주님의 제단을 훼파되어있는 것입니다.

저는 콜롬비아에 부흥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고민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한국땅에 복음을 허락하시기까지 180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 1800년동안 유럽과 아메리카를 거쳐 복음이 전해왔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과학적 지식이 왕성해지고, 인본주의가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고는 부흥의 불길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콜롬비아와 남 아메리카에 부흥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습니다. 이번 MCI교회 컨벤션에 40개국 15000명의 사람들이 참석했습니다.

저는 이번 컨벤션을 통해서 왜 하나님께서 콜롬비아 MCI교회를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며 부흥의 불길을 주시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MCI교회는 계속하여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 구원하여 제자로 삼고 계속하여 하나님의 제단을 수축하는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MCI교회뿐 아니라 교회의 교회됨을 회복하고, 하나님 한분만을 섬기고, 하나님의뜻만을 이루어 드리겠다고 결단하는 개인과 가정과 교회에 부흥의 불길을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불의 역사를 경험하자 갈멜산에서 머뭇머뭇 거리던 백성들이 이렇게 외칩니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입양되는 아이처럼 울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없는지 살펴보십시오. 좋은 옷, 많은 돈과 지식 때문에 우리의 영혼이, 우리의 자녀들이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외적 요소 때문에 우리 가정이 회복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수 때문에 교회의 교회됨이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경제와 과학적 지식이 민족을 회복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무너진 제단을 수축하여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이 있어야합니다.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 드려야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제단이 회복되어야합니다.

우리 양림교회가 G-12비젼을 외치는 것은 바로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 구원하는 사역을 감당하자는 것입니다. 우리 광주양림교회에서 하나님의 제단이 수축되면 하나님의 불의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그날에 머뭇거리는 수없는 교회가 주님의 방법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그 역사의 주인공이 되어주십시오. 모든 백성이 머뭇거릴 때 엘리야 한사람의 결단과 제단 수축으로 불의 역사를 경험했던 것처럼, 오늘도 살아계신 하나님앞에 믿음으로 반응하며 내가 주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겠습니다라고 외치는 한 사람의 엘리야가 되어주십시오. 엘리야의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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