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교회의 신앙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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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중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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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의 신앙생활 사도행전 2:42-47

후안 까를로스 오르티즈 목사님이 계십니다. 이미 한국교회에 많은 책을 써서 알려지신 분이십니다. 그분의 고민은 왜 성도들이 변화되지 않을까? 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말씀을 받고 변화되어 세상을 뒤집어엎었는데 왜 오늘의 교인들은 그렇게 좋은 말씀을 들음에도 불구하고 변화되지 않은지 기도했다고 합니다.
어쩌면 목회하는 사람들의 숙제입니다. 매일 말씀을 전함에도 왜 우리는 변하지 않을까요? 아 물론 변합니다. 그러나 매일 매일 변하지 않을까요?

두 주전에 이웃에 대해서 알아보았고, 이웃을 알아야 사랑할 수 있다고 전했습니다. 지난주에는 사랑의 공동체에 대해서 설교했습니다. 사랑의 대상인 이웃에 대해서도 알았습니다. 그런 사랑으로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인 것을 알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랑으로 세상을 변화시키자고 외쳤습니다.

사랑하는 새벽 이슬같은 청년들이여 그 말씀을 듣고 사랑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셨습니까? 사랑하기 위해서 기도하셨습니까? 사랑하기 위해서 몸부림쳤습니까?
나의 사랑으로 지난 주중에 변화되어 가는 영혼을 지켜보신 적이 있습니까?

만일 아니라면 오늘 저의 설교가 여러분에게는 어떤 의미로 다가오겠습니까?

성경에 대한 더 알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식은 우리를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명사로/ 앎으로 끝나면 안됩니다. 동사로 내 삶에서 드러나야 합니다. 그것이 성령님을 의지하고 변화되어 세상을 하나님의 영광으로 돌려드리는 꿈쟁이의 자세입니다.


성령이 임하신 후에 베드로의 설교를 통해 3,000명이 회개하였다. 그들이 120명에서 하루아침에 3,000명 이상의 교회가 되었으면 이 사람들이 이제 어떻게 신앙생활을 했는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그들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만일 감당했다면 어떻게 감당하였기에 세계를 변화시켜 버렸단 말인가? 지금 우리 청년들이 150명쯤 예배를 드리는데 만일 하나님께서 3.000명을 보내주신다면 감당할 수 있겠는가? 초대교회가 120명으로 감당했는데 우리는 30명이나 더 많은 150명인데 우리가 감당 못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우리가 감당한다면 어떻게 그들을 주님사랑에서 머물게 하겠습니까?

초대교회의 모습을 순서대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사도의 가르침을 받고, 2) 서로 교제하고, 3) 떡을 떼고, 4) 기도했습니다. 성도들이 전혀 힘쓴 것은 기도만이 아니라 네 가지입니다.

**사도의 가르침이란 무엇입니까? 처음 믿게 된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통한 바른 삶의 모습과 그 메시야되심입니다.

** 성도의 교제란 무엇입니까? 성도의 교제는 서로 싸우지 않고 오히려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런 교제의 결과 성도는 잘 모였고, 같이 떡을 떼었고, 특히 유무상통했고 아울러 다른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칭송했습니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교회의 부흥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떡을 떼었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떡을 떼었다는 것은 성찬식을 행했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그들이 종교의식을 존중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단, 형식적이거나 율법적인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것이고 예수님의 은혜를 되새기고 또한 입는 것입니다.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의 주제는 무엇이었을까요?
새로 구원받은 사람이므로 감사의 기도, 선교의 사명에 대한 기도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아마 서로 사랑하고 교제하므로 중보기도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주위 사람들이 두려워하게 했고 또한 칭찬하게 했습니다.
교회는 세상에게 두 가지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①두려움 ②칭찬

지금 세상은 교회를 어떻게 봅니까? 교회에서 하나님의 느끼고, 그 말씀대로 살지 못함을 두려워합니까? 아니면, 교회를 깔보고, 비웃고, 하나님이 없다고 외칩니까? 만일 후자라면 왜 그들은 우리가 살아 계시다고 믿고 섬기는 교회를 그렇게 여기겠습니까? 말씀대로 살지 못함이 아니겠습니까?

두 번째 세상사람들은 교회를 칭찬합니까? 아니면 비난합니까? 교회가 사랑을 많이 말하면서도 왜 세상사람으로부터 비난을 받습니까? 우리끼리 사랑하기 때문은 아닙니까? 우리끼리 좋은 것으로 취하고, 나누었지 세상을 섬기지 않아서 그런 것은 아닙니까? 우리가 세상에 두 가지를 보여줍시다. 세상이 교회를 두려워하게 합시다. 세상이 교회를 칭찬하게 합시다. 그렇기 위해서 우리가 먼저 뜨겁게 사랑하자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살아가려는 노력과 결단이 필요로 합니다. 그런 결단과 사랑으로 우리가 실천해 나갈 때 세상은 하나씩 변화되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여 주어야합니다. 보여주는 삶이 이런 결과를 초래한 것 같습니다. 두려워한 것은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경외심과 특별한 공동체인 교회에 대한 경외심일 것입니다. 칭찬은 물론 그들의 사랑과 헌신의 삶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성도들이 이렇게 헌신의 삶을 산다면 그들은 가르침에 따라 의롭고 경건하게 살았을 것입니다. 이런 모습도 경외심을 불러일으켰을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기사와 표적과 더불어 유무상통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자발적으로 한 것입니다. 유무상통 외에 모이고 기도하고 떡을 뗀 것도 다 자발적으로 일어났습니다.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로 성도들이 구원에 대한 감격이 충만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구원의 감격이 삶을 변화시킵니다. 우리는 날마다 구원의 감격을 되새겨야합니다. 날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어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교회를 부흥시켜 주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교회가 이렇게 바른 모습을 보이자 부흥의 복을 주신 것 같습니다. 한편 교회가 이런 모습을 보이면 사람들이 존경하고 교회에 나오게 됩니다. 그래서 바른 모습을 갖춘 교회가 자연스럽게 부흥되기도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며 선교하기 때문에 부흥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마음을 같이했습니다. 사람들이 삶의 자리가 다 달랐습니다. 부자도 가난한 자도, 지식인도 무식자도, 미녀도 추녀도, 탁월한 자도 평범한 자도, 나이의 많고 적음, 헬라파와 히브리파등등 그들이 서로 다름이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리스도 예수님으로 마음을 같이했습니다. 이것이 세상을 변화시켰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새벽이슬같은 청년들이여 누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겠습니까? 마음을 같이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그대를 통해서 세상은 아버지의 영광을 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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