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공동체

작성자 정보

  • 김중곤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사랑의 공동체 사도행전 2:42-47

오래 전의 일입니다.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습니다만 아주 인상이 깊었기에 기억으로 남습니다. 산악회원으로 부부가 아주 높은 산을 등반하다가 눈이 녹으면서 폭설이 뒤덮여 산에서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정신을 잃었고, 부인도 떨어지다가 번개처럼 떨어지는 남편의 옷을 입으로 물었습니다. 몇 시간이나 입으로 남편을 물고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 여인은 8시간이 넘도록 이 남편의 옷을 놓지 않고 물고있었다고 합니다. 결국 구조대가 도착해서 부부가 무사히 구조되었다고 합니다. 무엇이 이것을 가능하게 했겠습니까? 사랑입니다.

또 미국에서 일어난 사건을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미국 아더 힝클리라는 18세 소년이 3000파운드/ 1360KG의 트랙터를 혼자서 들어올린 사건이 있었습니다. 아버지 농장에서 일하던 소년에게 놀러온 여자친구가 트랙터근처에서 놀다가 트랙터가 굴러서 깔리게 되었습니다. 비명을 듣고 아더라는 친구는 달려가서 트랙터를 들어올린 것입니다.
무엇이 트랙터를 들어올릴 수 있었겠습니까?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성품이자,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기독교를 한마디로 말한다면 "사랑"입니다. 그만큼 사랑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에게서 떼려야 뗄 수 없는 동체입니다.
그런데 기독교가 언제부터인가 사랑을 잃었습니다. 그것은 콘스탄틴 대제에 의해서 기독교신앙의 자유가 허용되고 소위 기독교가 국교화 되면서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얼마나 사랑스런 공동체였습니까? 그들은 그리스도안에서 꽁꽁 뭉쳐진 공동체였습니다. 가정에서 모일 때마다 사랑의 현장이 재현되었습니다. 그런데 국교화 되면서 자유는 있으나 사랑의 다이나믹은 없어진 것입니다.

실제 사랑은 옵션이 아닙니다. 해도 좋고 안해도 괜찮은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반드시 해야합니다. 또한 사랑은 명사가 아닙니다. 국어 사전에 사랑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아끼고 위하며 한없이 베푸는 일, 또는 그 마음] 그러나 사랑은 어떤 것을 설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동사인 것입니다.

우리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명령중에서 새 계명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서로사랑하라입니다. 요한복음 13: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친히 씻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랑을 말로만 가르친 것이 아니고 실천으로 보여주셨습니다. 그분이 가르쳐준 사랑은 힘들고 아파하고 더럽혀진 이웃의 발을 씻기는 것입니다. 사랑은 자신을 배반할 사람까지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룟유다의 배신을 아시고도 끝까지 그를 품고 안아주셨고, 발을 씻어주셨고, 만찬에서 그에게 사랑의 잔을 건너신 것입니다.

사랑을 위해서 우리의 감정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의지적 결단이 필요합니다. 내 손을 내 밀어야합니다.

우리가 크리스찬인 것을 세상이 어떻게 알겠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키겠습니까? 철야기도/성경을 통달/ 헌금/ 성경지식........ 이러한 것으로 세상은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인 것을 알 수 없습니다. 오직 우리가 사랑할 때 세상은 우리를 예수님의 제자로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습을 세상은 보고싶어합니다. 이기적이고 조건적인 세상의 삶에서 누군가 무조건적이고 이타적인 사랑이 존재하는지 관심을 갖습니다. 세상은 참 사랑을 보고싶어합니다. 원래 우리가 사랑으로 지음 받았고, 사랑의 극치이신 하나님의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은 그렇게 살지 못해도 그렇게 진실되이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람을 보고싶어하는 것입니다. 누가 세상에 이 사랑을 보여줄 수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과 계속해서 초대교회가 1세기의 세상을 바꾼 강력한 이유중의 하나는 불신자들이 그리스도인 공동체안에서 역동적인 사랑을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초대교회의 힘인 사랑을 만들 수 있었던 원인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바로 성령님의 임하심입니다.

성령님이 오시자 의사소통의 문이 열리고 복음이 전파됩니다. 나중에 알게 되지만 성령 받은 사람들은 하나가 됩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마음을 열고 우리를 사랑으로 하나 되게 하십니다. 우리의 생각이 달라도, 하나의 비젼, 하나님의 목표, 하나님의 꿈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렇기에 성령받은 사람은 남녀노소, 빈부귀천, 언어와 피부색, 모든 것을 초월하여 하나되게 하시는 능력이 있으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어떤 부류와 대화가 안된다고 하신다면 우리자신을 먼저 살펴 보아야합니다. 나에게 교만이 있는가 살펴 보아야합니다. 내가 낮아지지 않으면 실제 대화가 되지 않을 때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사랑하면 낮아져야하는 것입니다. 내가 상대방보다 낮음을 고백해야만 대화할 수 있습니다. 실제 연약한 사람은 대화하고싶어도 못할 때가 많습니다. 높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성령님의 권능으로 자신을 낮추면 대화가 가능하게됩니다. 성령님을 모시고 살아가면서도 남녀노소, 빈부귀천등으로 계급적 의미를 갖는다면 성령님의 하나되게 하심을 모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성령의 권능도 함께 받으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고 믿으면 성령을 받은 것입니다.(고전12:3) 그렇다면 성령의 권능은 증인되기 위해 너무나 필요한 것입니다. 성령의 권능이 무엇이겠습니까?

세상의 유혹을 이기고 성실히 교회에 나오는 것부터 시작해서 바른 삶, 성령의 은사로 나타나는 기적적인 체험등이 있습니다. 특별한 체험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체험이 없을지라도 우리가 하나님의 권능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면 세상은 우리를 통해서 아버지의 영광을 보게될 것입니다.

우리의 존재는 땅 끝까지 복음으로 점령한 그리스도의 군사입니다. 무엇으로 세상을 정복하겠습니까? 복음입니다. 복음의 어떤 것입니까?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이 우리가 땅 끝까지 복음증거의 힘이라면 지금우리가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지금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예배당에 나오는 사람들끼리도 사랑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사랑하지 못한 사람은 삶의 자리에서 사랑할 수 없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사랑이 출발되어야합니다.

새벽이슬같은 청년들이여 누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겠습니까? 내가 주님으로부터 사랑받는 존재인 것을 알고, 그 사랑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나누어주는 사람을 통해서 세상은 아버지의 영광을 보게될 것입니다.

사랑하면 8시간이 넘도록 자신보다 훨씬 몸무게가 많은 남편을 물고있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면 트랙터를 들어 옮길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면 세상은 변화될 것입니다.

지금 실천합시다. 우리 찬양하면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눕시다.
요한복음13:35절에 말씀합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125 / 3 Page
번호
제목
이름

성경공부


최근글


새댓글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