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증인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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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중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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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증인이라 누가복음 24장 36 - 49

3박4일간의 내적치유 수양회를 다녀왔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많은 어려움들을 갖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시간에 수양회를 마치고 간증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나이드신 한 분이 달려나가서 자신의 삶을 나누었습니다.

그는 전과자로서 이전에 깡패였답니다. 자신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어서 자신의 배를 째서 창자를 머리에 걸고 자신의 삶을 한탄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교도소안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출소하고,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믿음으로 교도소를 돌며 부활의 소망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유일한 피붙이였던 형이 살해를 당합니다. 목사임에도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더랍니다.

특히 죽은 시체에 칼을 꽂은 그 행위는 깡패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는 악한행동을 자신의 형에게 행하는 그 사람을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더랍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죽이기로 결심하고, 칼을 두개차고 그 사람을 찾아 수개월을 찾아다녔답니다. 그런데 수개월만에 숨어있던 그 사람을 만나자 죽일 수가 없더랍니다. 그리고 돌아왔는데 죽일 수는 없었으나, 그 사람이 용서가 되지 않더랍니다. 몸무게는 10KG이 줄었는데 자신의 마음을 다스릴 수가 없었답니다. 교도소에서 희망을 이야기하고, 예수님을 믿으면 나처럼 변화된다고 말해야하는 자신이 계속해서 몸은 야위워가고, 마음이 평강이 없었는데 한분의 소개로 이 수양회에 왔습니다. 그는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양회에서 다시금 부활의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는 그 기쁨을 이기지 못해서 간증을 했고, 저희부부와 식사도 나누고, 연락도 하기로 했습니다.

사랑하는 새벽이슬같은 청년들이여 누가 살인자를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줄 수 있습니까? 진실로 부활하셔서 지금도 나와함께 하시는 주님만이 내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부활주일입니다. 사랑하는 청년들이여 부활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주님께서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 다시 살아나신 날입니다. 유사이래로 사람들은 언제나 영원히 살 수 있는 길은 없는가?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없는가? 라는 질문을 해왔습니다.

일대의 영웅 진시황이 당시 중원을 평정한 후 불로초를 구하기 위하여 동방에 오백명을 보냈다는 전설은 우리가 잘 아는 바입니다. 중원을 평정했어도, 자신의 목숨을 이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청년들이여 그대들은 부활을 믿습니까? 고린도후서 4장 14절 -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라
고린도전서 15장 20절 -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이 부활절은 사망과 죽음 즉 무덤에 대한 생명의 완전한 승리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첫마디는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주시고 싶어하시는 것이 평강입니다. 사랑하는 청년들이여 여러분 마음에 평강이 있습니까? 주님은 두려워 말라고 하십니다. 두려워 마십시오. 부활의 주님이 계십니다. 지금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죽음입니다. 죽음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면 사람들은 담대할 수 있습니다. 지금 내 삶에 주님이 함께 하심을 확신하십시오. 죽음의 문제를 극복하시고, 우리에게 영생의 선물을 허락하셨다면 그 무엇이 우리에게 두려움일 수 있습니까?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시기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확신한다면 우리에게 어떤 두려움이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

부활에 대해서 제자들을 의심의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렇기에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사랑하는 새벽이슬같은 청년들이여
그대는 진실로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에 대해서 믿습니까? 마음의 의심이 없습니까?

만일 의심이 있다면 무엇이 의심스럽습니까? 도저히 이성의 능력으로, 감정으로, 느낌으로 부활이 믿어지지 않습니까? 잘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감정과 이성과 느낌은 언제든지 변화되는 것입니다. 느낌이 팍 오면 부활이 믿어지는 것이고, 감정이 오면 주님은 부활하신 것입니까?

우리가 주님을 믿는다는 믿음은 무엇을 믿는다는 것입니까? 그것은 주님의 말씀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실제 우리의 이성으로 헤아릴 수 있다면 그 순간부터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우리의 감정이 믿어지지 않은 분들이 있다면 이야기합시다. 우리의 감정이 항상 옳은 것입니까? 우리의 감정은 하루에게 수 십번도 더 바뀔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감정이 진리인 것처럼 우리에게 말하는 것이 사탄의 속임수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죽으신 후 2000년이 지나도록 일점일획도 변함없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기초는 그 말씀위에 두는 것입니다.

내 감정이 그렇기에 예수님의 부활이 믿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계속 속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새벽이슬같은 청년들이여 내 감정에 신앙의 기초를 두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신앙은 부활하셔서 그 증거를 2000년간 주신 하나님의 말씀과 그 증인들의 열매를 통해서 보시기 바랍니다.

느낌을 말씀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당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님께서 손과 발을 보여주신 것처럼 나에게도 보여주어서 느낌이 팍팍 오면 믿음이 생길 것 같은 생각을 갖고 계신 분이 있습니까? 요즘 세대는 느낌으로 살아가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러나 느낌이 좋다고 따라갔다고 인생을 망친 사람이 우리주위에 얼마나 많습니까?
야! 저 남자 느낌이 좋은데.. 좋기는 뭐가 좋습니까? 속은 도둑놈인데..
야! 저 여자 섹시한데.. 속은 꺼먼 사람이 많습니다.

부활의 주님께서 제자들을 찾아오신 것처럼 주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우리의 마음을 열어주시고, 주님의 부활이 나에게 의미가 있으시기를 원하십니다. 제발 지식으로 부활의 예수님을 안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나와 부활하신 주님과의 관계가 있어야합니다. 그래야 신앙입니다. 우리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안다고 말한다면 개인적인 관계가 있어야합니다. 오늘 45절에 보면 주님께서는 제자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셨다고 기록합니다.

주님은 지금도, 오늘도 우리가 예수님을 깨닫게 되기를 간절히 원하신답니다. 내 마음이 열려주시길 간절히 소망한답니다. 그러나 주님은 철저하게 인격이십니다. 예수님의 능력으로 내 마음을 확 열어 버리고, 주님의 생명을 불어넣으시지 않으십니다. 주님의 사랑과 부활의 능력과 권능이 내 안으로 들어가려면 내가 예수님의 그 사랑의 손길에 마음을 열어야합니다. "주님! 도와주십시오. 나는 내 이성으로 부활의 주님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닫혀진 내 마음을 엽니다. 내 마음에 들어오셔서, 살아 계신 주님을 믿게 해 주십시오."

지식은 우리를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만나야합니다. 부활의 주님의 나의 부활이셔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은 곧 나도 부활하기 때문에 기쁘고 감격스럽고, 눈물나고, 세상이 감당치 못할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어느 교회 목사님 댁에 아들이 있었습니다. 중2때부터 왕따를 당해서, 폭행당하고 ,돈 뜯기고, 바보처럼 취급되었습니다. 고2때 드디어 아무에게도 대화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왜 예수님을 몰랐겠습니까? 어릴 때부터 수 없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예수님은 지식뿐이었습니다. 자신과 상관없이 그냥 하늘위에 계시는 주님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정신과 치료를 받게되었습니다. 나아지기는커녕 점점 악화되어서 한 곳에서 상담을 받게되었습니다. 정신과 치료를 받았던 곳이 농장과 함께 있었는데, 그는 그곳에서 돼지 밥통을 치웠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난 돼지만도 못한 놈이다' 예수님은 무슨 배부른 소리란 말인가? 난 이제 살 이유가 없다.

그러다가 그가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만나게되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짐승의 밥통에서 태어나셨다는 것을 알고는 나와 같이 되셨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런데도 그가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언제나 함께 하신다는 그 예수님은 내가 집단 구타를 당할 때도 나와함께 있었단 말인가? 그 학생은 예수님께 기도했습니다. 예수님 내가 집단 구타를 당할 때도 예수님은 나와함께 계셨습니까?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구타당할 때 나도 너와 함께 구타당했고, 너의 구타당한 아픔을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기전에 그 수모와 멸시와 모욕을 당했단다. 이 학생이 변화되었습니다. 자기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이 계심을 확신하자 살 이유를 알게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새벽이슬같은 청년들이여. 감정과 느낌과 이성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과 다를 때가 많음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의 믿음의 근거는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합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셨습니까? 그 예수님이 진정한 구세주이심을 확신하십니까? 만일 아직도 예수님이 믿어지지 않으신 분들은 이렇게 정직하게 말씀하십시오. 예수님 제 감정이나 생각으로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 이러한 생각이 주님의 뜻입니까? 주님을 만나길 원합니다. 나를 도와주십시오.

주님을 만나셨습니까? 이제 주님의 증인이 되십시오. 증인은 보고 들은 것, 내가 경험한 것을 사실대로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아직도 수 많은 사람들이 삶의 목적없이 인생을 허비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번뿐인 인생이니 -노새 노새 젊어서 노새-노래하며 인생을 탕진하고있습니다. 우리의 존재는 그렇게 탕진하면서 아무렇게나 보내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는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이 땅으로 끝장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영원한 존재입니다.

두려워하여, 문을 걸어 닫고 떨며 인생을 보내고있었던 제자들의 삶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남으로 인생이 역전되었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사람이 두려워 떨며 대문안에 머무는 신앙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죽음앞에서도 당당하며, 어떤 박해와 고난앞에서도 두렵지 않은 세상이 감당치 못할 사람이 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신뢰하고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만 쫓아가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위로부터 능력이 입혀질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확신했다고 경솔해서는 안됩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셨습니까? 이제는 주님의 명령대로 살아가십시오. 내 뜻, 내 생각을 포기하는 것이 주님을 믿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기다리라면 기다리고, 가라면 가고, 머물라면 머무는 것이 참다운 제자의 삶인 것입니다.

남보다 좀 늦은 것에 대해서 두려워 마십시오. 주님께서는 반드시 우리인생을 책임지십니다. 주님께서는 반드시 우리의 삶에 가장 좋은 것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조급한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없게 될 때가 얼마나 많은 지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함께 십자가에 달렸다가 구원받은 강도가 구원을 받았던 것처럼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고, 인생이 변했습니다. 자신의 배를 째고 삶을 저주했던 사람이 복음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새벽이슬같은 청년들이여 부활을 허락하신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명령하십니다.

너희는 증인이라.

주님께서 위임하셨고, 명령하시고, 임명하신 것입니다. 그 일을 위해 달려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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