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하심이 주님께 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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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중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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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하심이 주님께 있도다. 계7:9-12

21세에 들어서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밀레니엄을 축하하고 밤잠을 설치며 환호하였습니까? 얼마나 많은 부부가 밀레니엄 베이비를 원하여 수술하면서 2001년 1월 1일에 출산했는지 모릅니다. 사람들은 21세기가 되면 인간의 유토피아가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21세기에는 행복과 평화가 우리에게 주어지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렇게도 소망하던 꿈의 21세기는 벽두에 있었던 9.11 테러 그리고 이후 계속된 보복과 전쟁으로 인해서 새 천년의 환상과 기대는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지금 세계는 더 근본적이고 더 큰 규모의 지구적 갈등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죄인이라는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를 도외시한 어떤 축제나 기대도 사실 고통으로 치닫게됩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에게 오신 구원자 예수그리스도를 중심에 두지 않은 모든 사상과 계획은 피와 전쟁과 고통을 줍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욕심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을 낳습니다." 약1:15

처음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셨을 때,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것을 사람에게 주관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딱 한가지만은 금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선악과입니다. 다 주인 노릇할 수 있으나 하나님께만 순종하라는 명령이자 약속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이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무시하고 사탄에게 순종하고 맙니다.
사탄은 하와에게 유혹합니다. "이 선악과를 먹으면 네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된다"
인간이 전능한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이 유혹은 유사 이래로 계속되어 왔습니다. 이것만 있으면 하나님과 같이 된다. 이것만 해결하면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유혹이 계속된 것입니다.
지금은 힘/과학/돈/쾌락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으려합니다.

그렇기에 기를 쓰고 그 자리에 앉으려고 합니다. 그 자리에 앉으려면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경쟁자를 없애야하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 앉기 위해 욕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아담의 아들 가인과 아벨을 보십시오.

이러한 문제는 세상의 어떤 지식과 과학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인생은 죄 가운데 태어나 죄 가운데 살다가 죄 가운데 죽어 가는 것입니다.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인생의 목적도 알지 못하고, 혼란속에서 살다 영원한 사망을 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우리의 문제를 누구보다도 잘 아셨습니다. 이렇게 내버려두면 세상이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이 구원자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창조이후로 계획 되어왔습니다.

하나님-아담-홍수심판-노아-아브라함....예수 + 성령


원래 우리의 삶은 유한한 이 땅이 아닙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 땅에서 잠시 살아가는 동안 아웅다웅하며 살아가는데 사실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가 이땅이 전부라고 믿는다면 우리는 사탄에게 속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것은 주님이 오심으로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어서 영원히 주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그러면 우리 주님은 언제 오실까요? 마태복음24:14"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모든 민족에 복음이 증거 되면 주님은 재림하실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의 약속이요 지상명령이며 마지막 부탁하신 유언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우리는 복음을 믿으면서도 이 땅에서의 복만 계수하면서 살아온 것입니다. 영원한 하나님나라에 비교하면 이 땅에서의 우리의 삶은 하나의 점만도 못한 것입니다. 그 점만도 못한 것에 우리의 목숨을 걸고 돈을 위해, 명예를 위해, 자존심을 위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가는 것이 우리의 연약함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돈이 필요하고, 지위가 필요한 것은 하나님나라를 확장시키려는 도구입니다. 그 것을 통해 우리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는 데 필요합니다.

마치 우리가 소풍가서 게임을 합니다. 예) 돌 쌓기 - 선생님이 가자하면 놓고 가는 것이다. 돌 쌓는 것이 당시에 재미도 있고, 친구들에게 칭찬이 될 수도 있으나. 그것 붙잡다가 집에 가지 않고 머물러있는 사람은 없는 법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나라를 소망하고 이 땅에서 우리의 삶의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에 있음을 확신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나라가 속히 임하시는지 알아야합니다. 우리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민족에 복음이 증거 되면 주님은 재림하실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사람이라면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증거 되는 일에 최우선의 관심이 있어야합니다. 지금 세계에는 24.000종족이 있다고 합니다. 그 가운데 아직도 복음이 증거되지 못한 종족이 3/1인 8.000종족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8.000종족의 대부분이 있는 곳은 아프리카 밀림이 아닙니다. 아마존강의 추장이 아닙니다. 남극/북극의 사람들이 아닙니다. 대부분 중앙아시아에 밀집해있습니다. 특히 모슬렘국가에 복음이 증거되지 못하고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어떻게 하면 이 모슬렘국가에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고 복음이 증거 되어야 하는가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합니다.

그렇기에 모슬렘국가에 복음이 확장되어지는 것을 보면 우리는 주님나라가 가까운 것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슬렘국가인 카자흐스탄에 놀라운 부흥의 불길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것도 한국 선교사에 의해서 부흥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습니다. 카자흐스탄은 중국을 이어 실크로드에 복음을 전할 중요한 지점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여름에 거금을 들여서 카자흐스탄에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슬렘국가에서 일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여전히 닫혀있는 나라를 향한 주님의 역사를 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예루살렘에 평화행진을 행하는지 의문을 가지신 분들이 있을 줄 압니다. 이스라엘이 어떤 나라입니까? 처음 하나님께서 선택한 나라입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땅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땅에 오신 메시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버림받았습니까?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고 하나님께서 버리시지는 않았습니다. 도리어 하나님께서는 여러 말씀을 통해서 이스라엘이 회복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을 회복할 때를 볼 것인데 그 때가 마지막이라 하셨습니다.

누가복음21:20-24
20-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21 -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갈 것이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 것이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지어다.
22-이 날들은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징벌의 날이니라
23-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니 이는 땅에 큰 환난과 이 백성에게 진노가 있겠음이로다
24-그들이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

로마서11:25"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이방인(우리도 이방인입니다.)의 수가 차면 하나님은 예루살렘도 회복하시는 것입니다. 즉 예루살렘의 회복은 이방인이었던 종족들이 주님께 돌아오는 것과 똑같이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과 이방인사이의 머릿돌이신 것입니다.

지금 세계의 피흘림의 중심에 예루살렘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시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름의 의미가 무색할 정도로 전쟁과 갈등의 역사로 점철되어 왔으며 오늘날도 하루가 멀다하고 일어나는 테러와 보복공격으로 피흘림의 역사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9.11테러 이후 예루살렘은 갈등과 혼란, 불안한 현 세계환경의 축소판이자 대리전의 장이 되어버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계실 때 몇 번 우셨습니다. 죽은 지 나흘 된 나사로의 무덤앞에서 우셨습니다. 그러나 가장 아프게 우신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려고 예루살렘에 가시면서 우셨습니다.
누가복음19:41-42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2천년 전 예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의 평화를 인해서 안타까워 우셨습니다.(눅19:41-44).

이 일을 위해서 지금 하나님께서는 한국을 사용하고 계십니다. 이 평화를 위해서 서구는 더 이상 사용될 수 없습니다. 같은 동양사람만이 지금 아시아의 평화를 이룰 수 있는 유일한 하나님의 도구인 것입니다.

그런 목적으로 금년 여름에 예루살렘 예수행진 2004가 진행됩니다.

1) 일시: 2004년 8월7일-10일
2) 참가 대상 및 인원: 한국교회, 미주 등 한인교회 성도 약 3000명
3) 주요 프로그램
- Main 집회 (3일간) - 팔레스타인 집회 (베들레헴 예수님 탄생지 광장) - 1일간 -
예루살렘 집회 (구약 예루살렘 성전 터) - 2일간
- 평화행진 - 예루살렘-팔레스타인간 5Km 구간 평화행진
(팔레스타인과 예루살렘 양측 승인) - 예루살렘 성 순환 약 5km 구간
- 문화행사 - 예루살렘 평화콘서트 -팔레스타인 지역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위한
전도축제 및 문화 교류 프로그램
- 기타 : 성지 순례 및 현장 사역 등


이제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이름이 영광을 받으시도록 한국교회가 힘을 합하고 있습니다. 잃어버린 영혼들을 향한 주님의 마음으로 카자흐스탄에서 3.000여명의 청년들이 주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구원하심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속한 것도 아닙니다. 계시록7:9-12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 우리는 주님의 손과 발이 되어 세상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우리의 몫인 것입니다. 우리가 달려가면 주님께서 우리를 써 주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가 해외에 나가서 복음을 전해야합니까?

그것은 아닙니다. 행1:8"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어느 곳에든 주님의 증인으로 서 있어야 하고, 그렇게 서 있는 사람을 우리는 선교사라 부릅니다. 여기 있는 모든 청년들은 하나님의 선교사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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