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쟁이의 사명4

작성자 정보

  • 김중곤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꿈쟁이의 사명 시편139:13-16

하나님께서 나를 기가 막히게 아름답게 창조하셨다. 우리의 마디마디를 집중해서 보십시오. 얼마나 정교하고, 얼마나 기가 막힌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에베소서 2장 10절에 보면 우리는 하나님의 만드신 바라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이라는 표현입니다.

제가 오래 전에 유치부를 가르쳤던 때에 이런 노래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 하나님을 통하여 아름답게 지으신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
여러분은 하나님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신가요? 사실 내 자신을 돌아보면 모순투성입니다. 부족하고, 열등감 많고, 상처 많고, 그럼에도 불하고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실 때에 보시기에 심히 아름답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손바닥을 한번 보십시오. 얼마나 정교하게 만들어졌습니까? 옆 사람의 얼굴을 보십시오. 얼마나 기가막히게 생겼습니까?

사실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존귀한 것입니다. 왜 금값이 비싼지 아시죠? 세상에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 금이 별것 아닙니다. 찌그러들기로는 철보다 못합니다. 잘 닳아지는 것은 돌만큼도 못합니다. 색도 별것 아닙니다. 똥색 비슷하지요. 그럼에도 이 세상에서 적다는 것이 사람들에게 비싼 값에 판매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리도 아름답게 창조하셨는데, 우리가 하나님의 기쁨이었는데, 우리의 본질이 많이 훼손되어버렸습니다. 다 죄로 인해서 찾아온 고통과 슬픔입니다. 그렇기에 나, 나는 누구인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 14절에 나는 신묘막측한 존재라고 말해줍니다. 놀랍고, 신비하다는 것입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하나님께서 어머니의 태에서 마치 바느질 할 때 한올, 한올 뜨개질하듯 나를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천지만물은 다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새벽이슬같은 청년들이여, 그대는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가?
내가 하나님의 작품임을 믿는가? 전체를 보지 못하고, 나의 연약함만 보면서 평생 연약함의 노예로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남과 비교하면서 자신에게 매를 드는 사람은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십시오. 남의 판단과 남과의 비교에서 발견되는 나를 진정한 나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유일무이함을 믿으십시오. 열등감과 좌절의 감정은 사탄이 준 것입니다.

나를 보십시오. 나를 만드신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항상 나에게 좋은 것만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내게 고통과 좌절처럼 보이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아픔조차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저는 초등학교6학년 때 부모님의 이혼으로 말(언어)을 잃었습니다. 싸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얼굴도 잘생기고, 공부도 잘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사람 앞에서 자신감을 잃어간 것입니다. 누구 앞에서도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고, 친척들이 고아원에다 다 맡겨버리고, 새 장가 가라는 말을 아버지께로 들을때면 분노로 억누를 수 없는 감정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놈의 세상 뒤집어 엎어버려야지 하는 생각이 많았습니다. 생각은 삶을 삐뚤어지게 했습니다. 나의 낮고 초라한 자아상은 나를 자학하게 하였고, 나를 해치는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만나면서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임을 알았습니다.
스바냐 3장 17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나같이 허물덩어리, 연약한 사람을 인해서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는 하나님을 이해할수없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사랑에 꺼꾸러졋습니다.

과거의 슬픔과 좌절이 주는 하나님의 교훈을 찾았습니다. 이제 하나님을 만나고서는 제 삶이 달라졌습니다. 다른 사람과의 비교와 열등감속에서의 내 자아상이 아니라,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속에서 진정한 내 자신의 자아를 발견했습니다.

주님의 사랑안에 나는 사랑스럽습니다.(책갈피를 꺼내십시오.-매 주마다 고백합시다.)

사랑하는 청년들이여 그대는 무엇을 기준으로 그대를 평가합니까?

남들이 바라다보는 기준은 바른 기준이 될 수없습니다. 사람의 기준은 언제나 바뀝니다. 내가 생각하는 기준도 표준이 될 수없습니다. 왜냐하면 내 자신이 믿음직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도 나를 모르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런데 내 자신이 어떻게 자신의 기준이 될 수 있겠습니까? 나의 진정한 나는 나를 지으시고 여기까지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안에서만 바르게 보는 것입니다.

깨진 거울에 자신을 바라다보면 자신의 모습이 깨져 보입니다. 일그러진 거울에 자신을 바라다보면 일그러지게 보입니다. 깨지지 않고, 일그러지지 않고, 완전한 거울에 자신을 보는 것이 나의 나됨을 보는 표준인 것입니다. 나의 나됨을 보게 될 때부터 사명을 보게 됩니다. 나의 나됨을 바로보지 못하면 사명이 사명으로 자리매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를 정직한 나로 바로보지 못하게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첫 번째가 잘못된 교리입니다. 일종의 진화론을 보십시오.
진화론의 기초는 우연입니다. 우연으로 태어났다고 믿는 사람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진화론을 배우면서 자라나면 무의미한 세상에서 무의미한 인생을 살다가 불행하게 인생을 마칩니다.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우연입니다. 나도 우연입니다. 그렇기에 내 자신을 바라볼 때도 삶의 목적을 상실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만드셨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나와 세상이 필연적인 존재이기에 나의 존재와 세상의 모든 일들 속에 하나님의 특별한 뜻과 의도가 있으며, 나와 세상도 의미있고 가치있는 존재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창조하셨다고 믿습니까?
이 사실을 믿으면 나는 하찮은 존재가 아닙니다. 이 땅에서 필연적으로 중요한 일을 위해 태어난 존재라는 것을 믿게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 목적으로 인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는 것에 대한 관심보다 어떻게 하면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을까 하는데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깨닫기 전에는 가난이 부끄러움이었습니다. 부모님의 이혼이 부끄러움이었습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나의 외모가 부끄러움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창조하심과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나서는 더 이상, 가난도, 부모님의 상처도, 외모도 부끄러움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창조하셨기 때문에 나는 하찮은 존재가 아니라 천하보다 귀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삶의 참 행복은 가치있는 무엇을 소유하는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삶과 존재가 가치있는 삶으로 존재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

진화론속에 있으면 무의미한 세상속에서 무의미한 인생이기에 사람들이 가치있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평가하는 것들을 소유하는 것으로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우리를 타락으로 몰고 갑니다.

두 번째는 자기 거절감정입니다.
저도 이런 감정으로 인해서 아내와 사소한 것으로 마음이 상한 적이 있습니다.
새엄마가 명절음식 먹는 것을 책망함.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브레이크를 걸면, 예전의 어머니가 준 상처로 인해서 거절감정이 치쏟아 올라왔습니다. 저 사람도 나를 거절하는구나 하는 착각속에서 스스로 벽을 치고, 스스로 상처받고, 대인관계가 치명적이 됩니다.

세 번째가 비교의식입니다.
이것이 우리 청년을 병들게 하는 장본인입니다.
" 나는 키가 너보다 작은데, "
" 나는 너보다 공부를 못하는데 ,"
" 나는 너보다 못생겼는데,"
" 나는 너보다 가난한데"
" 나는 너보다 뚱뚱한데........"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여기에 있는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60억 인구 가운데 하나뿐인, 이 세계 가운데 유일한 하나님의 걸작품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 가운데 여러분과 똑 같은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습니까? 없습니다. 세상은 모두 장단점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죄인인 우리가 잘나면 얼마나 잘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나에게만 주신 것이 있지 않습니까? 그것을 발견 하십시오?

하나님안에서 자아상을 회복하십시오. 예전의 상처 때문에 그것을 회복하고, 만회하려고 성공하려거나, 부자가 되려거나 하는 것은 우리의 사명에 장애물이 됩니다.

우리 인생은 누구나 한번 태어나 한번은 죽습니다. 어제 밤에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별세했습니다. 그들이 꿈꾸며 그리도 소망한 것이 내일이었고, 그 내일은 우리의 오늘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은 아무 염려없이 내일이 찾아올 것으로 착각합니다.

인생의 출발부터 끝나는 시간까지 나의 목표가 되는, 목적지를 알려주는 나침판이 있어야합니다. 대구지하철방화로 수없이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곳에 탔던 사람들은 그곳을 스쳐가는 역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역이 인생의 종착역이 되었습니다. 오늘이 나의 종착역일수도 있습니다.

원망과 열등감과 좌절속에서 헤메이지 마십시오. 감사하고, 기뻐하고, 내가 이 땅에서 해야 할 일을 위해 달려가십시오. 나를 향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뜻과 기대를 물으십시오. 나를 이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고, 기도하고, 하루하루 살아가면 그 삶은 방황하는 삶이 아니라 푯대를 향한 축복의 삶이 될 것입니다.

이런 소망과 믿음이 있을 때만이 나를 통해서 세상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새벽이슬같은 청년들이여! 누가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창조하심을 확신하고, 자신의 열등감과 비툴어진 자아상을 바르게 정립한 그대가 가능합니다.

꿈쟁이의 사명은 하나님을 하나님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되시게 하면 나의 걸음이 정적해집니다. 내가 해야할 일을 보게될 것입니다.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125 / 3 Page
번호
제목
이름

성경공부


최근글


새댓글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