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쟁이의 사명(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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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중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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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에는 교회의 표상이 되는 모습들이 많이 나옵니다. 구약성서에서 교회를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것은 노아의 방주입니다. 노아시대에 세상은 죄악으로 말미암아 물로 하나님의 심판을 당하게됩니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당할 때, 이 방주를 통해 사람이 구원을 받은 것은 교회의 상징임이 분명합니다.

우리가 방주를 교회의 그림자로 본다면 우리는 방주를 통해 일하셨던 하나님의 손길을 볼 수 있어야 하며, 동시에 노아가 하나님의 구원의 도구로 사용되는 모습은 오늘날 예배드리는 내 자신이 제 2의 노아가 되어서 주님의 구원을 전하는 삶을 살아야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시작되는 창세기6장에서는 당시의 사회가 얼마나 부패했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2절을 보면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가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당시에 하나님을 믿는다는 경건한 사람마저도 예쁜 여자를 원하는 대로 아내를 삼아 일부다처제에 빠져 버렸다고 말합니다.

얼마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하였던지 5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에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당시의 세상은 하나님을 떠나 죄악이 가득하였습니다. 사람들의 생각과 모든 계획은 항상 악하였습니다.

본문의 말씀을 읽다보면 그 당시의 부패함이 오늘날과 흡사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제가 말로 다 하지 않아도 지금우리의 문화자체가 얼마나 부패하였습니다. 정욕의 문화, 쾌락의 문화, 무질서의 세계입니다. 그런 부패함과 포악함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노아를 택하여 세상을 구원할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구원할 사명을 왜 노아에게 맡기셨습니까? 그것은 노아가 당대의 의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여기에 관심을 가져야 될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구원을 전하는 사역자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모습이 어떠해야겠습니까? 우리는 세상에서 특별히 의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시기 위하여 의인을 찾으셨으며, 또 그 의인을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며, 앞으로도 의인을 통하여 일하실 것입니다.

성경은 가르쳐줍니다. 9절입니다.“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다.”라고 가르쳐줍니다. 노아가 의로웠던 모습을 볼 때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온 세상이 기가 막히게 타락했는데도 노아는 의롭게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게 노아의 위대한 점입니다. 남들이 다 의롭게 사는 데서 의롭게 살기는 쉽습니다. 예배당에서 찬송하면서 사는 것은 쉽습니다. 예배당에서 친절하게 보이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다 타락하고, 다 범죄하고, 다 죄를 범하는데 홀로 의롭게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교회에서 놀러 가면 재미없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평소에 자기가 하던 좀 속된 말이나 행동을 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다 그렇게 범죄하던 때에 노아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창세기 6장 앞부분에 보면 경건한 사람마저도 예쁜 여자를 원하는 대로 아내를 삼아 일부다처제에 빠져 버렸습니다. 노아는 어떻습니까? 부인이 하나지요? 노아가 가난해서 그랬을까요? 노아는 어마어마하게 큰 방주를 지은 사람입니다. 가난한 사람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노아는 그렇게 부도덕한 사회에 살면서도 일부일처 제도를 지킨 경건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온 땅에 악이 가득 찼는데 어느 정도로 가득 찼느냐 하면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죽여버리기로 작정하실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악한 사회에서 노아는 완전한 의인으로 살았다고 평가될 정도로 의롭게 살았습니다. 얼마나 지독한 사람입니까? 대충대충 세상을 따라다닌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새벽이슬같은 청년들이여! 세상이 전부 타락하여 범죄하고, 자신이 원하는 정욕과 쾌락속에 살아간다 할지라도 나 한 사람이라도 세대에 물들지 않고 의롭게 살기를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노아처럼 의롭게 살아가야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나눌 수 있는 것입니다. 똑같이 범죄하고, 똑같이 정욕속에 있고, 똑같이 욕하고, 똑같이 살아가면서 그들에게 구원을 나누어줄 도구가 결코 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의로운 노아를 통해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기 위해 택하셨습니다. 노아가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게 뭘까요? 그것은 순종입니다. 하나님이 하라고 하시는 대로 행하는 겁니다. 왜 순종이 필요하겠습니까? 노아는 그 동안 아무도 해본 적이 없는 일, 아니 도무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가자고 하시는 대로 가며 하나님 뜻에 순종해야지요. 노아는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악한 세상에서 악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멸망을 당할 때 홀로 가족과 함께 살아남았습니다. 살아남은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구원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순종한 것처럼 앞으로도 순종할 것이기 때문에 이런 막중한 구원사역을 맡은 것입니다.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이 쓰실 수가 없습니다. 자기 잘났다고 자기 마음대로 하는 사람을 하나님이 어떻게 쓰시겠습니까?

노아의 순종을 한번 보십시오. 노아가 지은 방주는 도저히 당대인들이 상상도 할 수 없이 큰 배입니다. 이것은 누가 봐도 미친 짓이었습니다. 그런데 노아는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판단이나 비방을 무서워하지 않는 순종. 이것이 노아의 순종입니다. 여러분 방주가 얼마나 큰지 아십니까? 방주의 크기는 길이가 약 133m, 너비가 약 22m, 높이가 약 13m입니다. 이것은 배수량이 약 20,000톤이 되는 큰 배입니다. 성서 주석가들은 이 배가 120년 동안 만들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노아는 했습니다. 그래서 세상을 구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 이런 방주를 지으려면 얼마나 어려웠겠습니까? 방주를 지을 자재를 구입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재산을 퍼부었겠습니까? 또 방주에 넣을 곡식을 준비하는 것도 큰일입니다. 아마도 방주는 노아의 8식구만이 지었다기보다 돈으로 사람을 많이 고용했을 것입니다. 만일 방주가 무용지물이 되면 온 집안이 망하는 겁니다. 그러나 그는 오직 하나님의 명령을 따랐습니다.

노아는 이렇게 순종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중요한 인물이 된 것입니다. 순종할 사람이니까 하나님이 선택하셨고 순종했기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린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함으로써만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쓰시려면 먼저 순종하도록 훈련시키시고 쓰십니다.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유능해도 쓰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의 능력으로 일이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 속에 되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의 능력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큰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도록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방법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의로운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구원의 도구가 됩니다. 특히 하나님은 순종하는 사람을 쓰십니다. 순종해야만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쓰실 때 순종하도록 훈련을 시키시고 쓰십니다. 이 훈련은 고통스럽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 어려움을 겪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훈련을 통해 하나님을 경외하며 순종하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역사에 동참하는 귀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이제 방주에 대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노아의 방주는 추진력이 없는 배입니다.- 키도, 엔진도, 노도, 돛도 없이 가는 배입니다, 그 안의 사람의 지식과 관계없이 하나님의 방법으로 운행되어지는 배라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여 하나님의 방법으로 운행된다는 의미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안에 사람이 얼마나 있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의인이 얼마나있느냐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방주의 독특성중의 하나는 바로 방주의 문입니다. 그렇게 커다란 배에 문을 하나만 만들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오늘의 교회에 아주 중요한 암시를 줍니다. 문은 구원을 상징한다. (요한복음 10장9절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문이 하나인 것은 오직 예수님 문으로 들어온 사람만이 구원에 동참할 수 있다는 말과 동일한 이야기이다. 세상 사람들은 다른 문(구원)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속지 말아야 합니다. 그 속임수에 빠지면 구원은 없는 것입니다. 종교다원주의의 물결이 노도처럼 밀려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천하인간에 구원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을 기억하고,(행 4:12) 구원의 문이신 예수님을 철저하게 믿는 믿음의 사람이 되십시다.

창세기 7장 16절에 보면 "들어간 것들은 모든 것의 암수라 하나님이 그에게 명하신 대로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그를 들여보내고 문을 닫으시니라". 노아가 하나님의 명하신 동물들을 다 들여보내 후에 하나님께서는 노아를 들여보내시고, 그 문을 하나님이 닫으십니다. 즉 구원의 문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를 방주에 들여보내 구원을 주신 것처럼 우리를 교회에 들여보내사 의인이라 칭하시고 구원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사람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아야할 것입니다.

다음으로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노아가 방주 안에서 무엇을 했겠습니까? 노아와 그 가족들은 거의 1년하고도 보름동안을 방주안에서 보냅니다. 노아가 방주 안에서 무엇을 했겠습니까? 비가 언제 그치나 기다리며 무료한 시간을 빈둥빈둥 보냈겠습니까? 기타를 두드리면서 예수님 찬양을 불렀겠습니까? 아니면 이제는 딴 인간들은 다 없어지고 거기서 자기가 최고 어른이니까 동물들 데리고 왕 노릇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과학자들은 방주안에는 동물이 약 3-4만 마리였을 것이라고 하는데 노아가 어떻게 지냈겠습니까? 이렇게 생각하면 쉬울 겁니다. 방주에 들어간 동물의 크기를 평균으로 잡아 양 정도로 보고 숫자를 약 32,000마리 정도로 보면 한 사람이 양 4,000마리를 큰 건물 안에서 키우는 것과 비슷합니다. 뭐해야 합니까? 먹이고, 치우고 하는 겁니다. 계속하여 먹을 것을 대주고, 그것들의 배설물을 치워야 되는 겁니다. 한마디로, 똥 치우는 일을 하는 거예요. 그걸 하면서 홍수가 끝나고 구원의 시기가 오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만일 조금이라도 게으름을 피웠다가는 방주는 통풍도 잘 되지 않아서 악취로 모든 사람이 질식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가 일단 구원을 받아서 교회를 섬기기 시작하면 우리의 사역이 꼭 이런 것 아닌가 생각됩니다. 우리가 교회를 섬길 때 우리는 문자 그대로 섬기고 돌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덜 자란 사람들, 장애자, 지진아, 지체 부자유자 같은 사람들을 돌봐야 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똥 치우는 것이 교회를 섬기는 것이고 그것이 생명을 구하는 길입니다.

그런데 노아의 방주와 교회가 다른 것은 노아는 동물의 똥만 치웠겠지만, 우리는 양들의 똥만 치우는 것으로 충분치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가 구원의 길을 가기 위해 동역자간에도 서로 더럽혀 놓은 것을 치워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섬기는 사람으로서 연약한 사람들이 더럽혀 놓은 것을 보면 구역질나는 것을 참고 꾸준히 치워주고, 그들 자신의 추한 모습을 참고 씻어 주는 것이 바로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몸에 채우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사역을 할 때 틀림없이 연약한 사람들이 교회를 통해 구원으로 인도될 것이고, 나중에 하나님으로부터 큰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꿈을 가진 우리에게 세상을 구원하는 사역을 맡기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의로운 삶을 살라고 명하십니다. 그렇지 않고 구원의 도구가 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혼신의 힘을 기울여 맡은 교회를 섬겨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우리의 욕심대로 일을 벌이라고 하시지 않습니다. 우리의 할 일은 화려하게 대접받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자로서 대접을 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부지런히 먹이고 그 많은 영적 부자유자들이 싸놓은 똥을 치우면서 섬기는 겁니다. 예배당안에서 뿐 아니라 세상에서 의로움으로 깨끗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꿈쟁이의 사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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