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 잘 다니면 복을 받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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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은주 요약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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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교회에 나가면 복을 받는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것은 옳은 말이다 교회에 나간다는 말이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의미하고, 복을 받는다는 말이 올바른 축복을 의미한다면 그렇다. 그러나 교회에 나간다는 것이 단순히 교회에 다니는 것만을 의미한다면 이 말은 틀린 말이다. 단순히 교회에 다니는 것만으로는 훌륭한 신앙생활을 한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복을 받는다는 것이 세상적인 복을 누리는 것을 의미해도 이 말은 틀린 말이다. 신앙생활을 잘 한다고 하여 세상적인 복이 보장된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교회에 나가면 참된 복을 받는다. 신앙생활을 함으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과 보호,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부 교인들이 외적으로 교회에 열심히 다니기만 하면 삶에서 물질적인 축복을 많이 누릴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제 교회에 다니면 복을 받는다는 말에 대한 오해를 해소하고 바른 신앙생활의 자세를 살펴보도록 하자

우리는 일부 교인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처럼, '교회에 다니는 것'을 교회의 종교행위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한다. 우리는 교회에 다니며 여러 가지 종교행위를 한다. 예배도 드리고, 기도도 하고, 성경을 읽고, 교회봉사도 한다. 그러면 이런 종교행위를 한다고 복을 받는가?

창세기 34장에 보면 야곱의 딸 디나가 가나안 사람 하몰의 아들 세겜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세겜은 디나를 사랑하여 아버지인 하몰과 함께 야곱을 찾아가 디나를 자기 아내로 달라고 한다. 그러나 야곱의 아들들이 세겜과 그 족속을 멸하기 위해 속여 말하기를 "너희가 할례를 받으면 우리 누이도 주고 우리가 너희와 통혼하겠다"고 한다. 하몰과 세겜이 자기 마을로 돌아가 마을 사람들을 설득하여 모두 할례를 받는다. 야곱의 아들들은 그들이 할례를 받아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 쳐들어가 그들을 멸망시킨다. 하몰과 세겜, 그리고 그 고을 사람들은 단순히 세속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해 할례를 받았다가 축복은커녕 멸망을 당하고 만 것이다. 이처럼 단지 종교의식을 행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복을 받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예배에 참석하지 않을 리 없다 그런 사람은 예배를 드림으로써 더욱 큰 은혜를 입고 복도 받게 된다. 이런 각도에서 보면 교회를 잘 다니는 것은 복 받을 일이다. 단지 그것이 믿음 없이 하는 행위라면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러므로 종교행위는 행위 자체보다는 그 행위를 유발하는 믿음이 더욱 중요하다. 다만 진정한 믿음이 있으면 성실한 행위도 나오기 때문에 믿음과 행위를 지나치게 분리하여 생각해서는 안 된다. 굳이 믿음과 행위의 관계를 정리해 본다면 , 믿음없는 행위는 있을수 있으나 행위 없는 믿음은 있을 수 없다고 하겠다.

사실 이런 것은 웬만한 교인이라면 다 아는 얘기다. 그런데도 우리가 지금 이 문제를 살펴보려고 하는 것은 많은 신자들이 이 문제에 대해 오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믿음이 없어도 행위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여 외형적인 행동만 잘하려고 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믿음의 중요성을 무시하지는 않지만 신앙생활 가운데서 종교행위의 중요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거기에 집중적인 관심을 보이는 것이다. '종교행위'와 '바른 삶'에 대해 교인들이 크게 오해하고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종교행위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고 바른 삶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생각하는 점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많은 신자들이 이렇게 말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은혜로 죄 용서를 얻고 구원받는다. 그러므로 우리가 신앙생활에서 은혜 받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그런데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종교행위를 잘해야 한다. 즉,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교회 봉사 하는 것 등을 잘해야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게 된다. 그러므로 종교행위는 반드시 해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은혜를 입으면 우리의 죄를 용서받게 되기 때문에 바른 삶을 사지 못한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렇게 오해하고 있는 교인들은 교회에만 잘 나가면 비록 그들이 사회에서 올바르게 살지 못해도 복을 받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또 신자들이 사회에서 올바르게 살고 칭송을 들으면 교회에 대한 전반적인 이미지가 좋아지고 여기저기서 교회 나가겠다는 사람이 늘어난다. 그러나 그것이 특정 교회의 건축에 당장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반면에 그 교회 신자가 사회에서 불의하게 살더라고 그 돈으로 교회 건축에 사용도리 헌금을 많이 하면 당장 직접적인 도움이 된다. 교인들이 사회에서 정직하게 살기보다 새벽기도회에 많이 나오고 교회봉사를 많이 하는 것이 특정 교회의 부흥에는 더 큰 도움이 된다. 그래서 목회자들도 바른 삶보다는 종교행위를 더 강조하고자 하는 유혹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 유혹에 빠진 일부 목회자들의 잘못된 욕심과 신자들의 오해가 결합하여, 한국교회에는 바른 삶보다 종교행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오류가 발생했다.

그러나 신앙생활에서 더 중요한 것은 종교행위가 아니라 바른 삶이다.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에서 모두 이것을 가르친다. 아모스서 5장 21-24절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너희 절기를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희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네 노래 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오직 공법을 물 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지로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안식일 지키는 것을 보시면서 그런 식으로 안식일을 지키느니, 안식일의 규정을 어기게 되더라도 어려운 이웃을 돌봐주는 것이 더 낫다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는 것은 믿음을 통해서이지 종교행위를 통해서가 아니다. 종교행위는 믿음의 표현일 뿐이다. '종교행위'로 은혜를 받고 그 은혜로 '바르게 살지 못한 죄'를 용서받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러나 동시에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종교행위나 교회의식이 결코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종교의식은 바른 믿음의 표현이며, 교회에서 하는 사역은 신앙의 성숙과 세상의 구원에 필수적인 요소다. 교회에 잘 다니는 사람이 신앙적으로 성숙한 사람이며, 교회 사역을 잘 감당하는 사람이 하나님나라를 위해 많은 일을 하게 된다. 그래서 교회에 잘 다니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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