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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에 대해 많이 말하면 영적인 설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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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은주 요약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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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를 생각할 때 교인들이 쉽게 빠지는 함정은 성령에 대해 많이 말하면 목사가 성령의 역사 속에 있는 지도자라고 본다는 점이다. 과연 그런가?

성령에 대해 많이 말하면 영적인 설교인가? 그 대답은 "예"가 될 수 도 있고 "아니오"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성령을 말하는 빈도가 영적 설교의 기준은 아니라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니오"다.

적지 않은 신자들이 이 점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성령에 대해 많이 말하면 영적인 설교라서 싫다고 한다. 이것은 영적인 것과 율법적인 것을 오해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면 영적인 것과 율법적인 것을 어떻게 구별해야 하는가? 율법적이라는 것은 율법에 의지하는 자세를 의미한다. 율법에 의지한다는 것은 자기가 율법을 지킨 행위(업적)를 의지하여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자기의 행위를 의지하는 것이므로 결국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지 않고 자신을 의지하는 셈이다. 결국 율법적이라는 것은 인간의 노력과 업적을 통해 구원도 받고 축복도 받으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영적이라는 것은 율법적인 것의 반대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여 무엇을 얻으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적이라는 것은 인간의 노력과 업적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의지해서 구원과 축복을 얻으려는 것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아무리 성령에 대한 말을 많이 해도 성령을 대하는 자세가 인간의 노력을 의지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영적인 설교가 아니라 율법적인 설교다. 아무리 성령에 대해 많이 말하고 성령을 강조해도 이처럼'무엇을 함으로써' 성령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율법적인 설교다. 왜냐하면 이 말씀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행위에 성령의 역사가 좌우된다고 하여 결과적으로 인간을 의지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끔 방언을 가르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어떤 사람이 방언 못하는 교인들을 모아놓고 방언을 가르친다는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방언은 성령이 주셔서 받는 것이지 훈련을 통해 습득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종교행위와 훈련을 통해 방언을 습득한다고 말하는 것은 인간의 노력을 의지하는 것이지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가르침을 전하는 그 사람은 성령의 은사에 대해 많이 말하지만, 실제로 그 사람의 말은 인간의 종교 행위를 의지하는 율법적인 교훈이 된다.

영적인 설교나 율법적인 설교와 관련한 문제점을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첫 번째 문제는 신자들이 영적인 설교와 율법적인 설교를 잘 구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성령의 역사와 신유의 은사로 유명한 어느 목사가 불치의 병에 걸린 신자에게 성령의 치유 역사를 힘입으려면 얼마를 헌금하라고 하여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이것은 인간의 헌금을 의지하는 것으로 철저히 율법적인 교훈이다. 그러나 성령을 받고 성령의 기적적인 은혜를 입는다는 말을 많이 하기 때문에, 그것이 영적인 교훈인 줄 알고 따르는 교인들이 많다. 하지만 이런 설교는 결코 영적이지 않을뿐더러 성경적으로도 맞지 않다.

반면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이제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는 설교를 생각해 보라. 이 설교는 거룩한 행동을 의지하여 구원을 받으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제는 거룩한 삶을 살라고 가르치기 때문에 영적인 설교이다.

두 번째 문제는 사람들이 영적인 설교보다는 율법적인 설교를 더 좋아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새벽기도회에만 참석하면 건간의 복을 받는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율법적인 설교다. 비록 새벽기도회에 참석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행동지침이나 그 효과가 뚜렷하기 때문에 신자들에게는 더욱 확실한 교훈이 된다. 교인들은 이렇게 명쾌한 설교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영적인 설교는 그렇지 못하다. 신앙생활을 경건 행위의 양만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영적인 설교는 경건 행위의 양과 그에 따른 복을 일률적으로 지시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마음으로 신앙 생활하라고 가르친다.

세 번째 문제는 영적인 설교보다 율법적인 설교가 대체로 외형적인 업적을 높이는 데 더 효과적이므로 교인들도 율법적인 설교자가 칭찬하고 지도자들마저 율법적인 설교를 선호하는 경우가 있다는 점이다.

영적인 설교는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고 그 은혜에 응답하여 행동할 것을 요구한다. 물론 그 행동에 따르는 하나님의 복도 말해준다. 그러나 그 행동에 정비례하여 구체적으로 어떤 복이 주어진다고 분명히 말하지는 않는다.

율법적인 설교는 먼저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의 모습을 말하며 그것을 행하면 복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한다. 율법적인 설교는 이렇게 영적인 설교와 비슷한 것 같으나 그 근본 원리는 전혀 다르다. 영적인 설교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먼저 주어졌으니 그에 대한 응답으로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어떤 행동을 해야 한다고 가르치지만, 율법적인 설교는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행동을 하면 그것을 보고 하나님이 복을 내려주신다고 가르친다.

한국교회의 심각한 문제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고백에 비해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는 행함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특별히 한국교회에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행함이 부족하다고 해서 많은 설교자들이 교인들에게 바른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많은 교인들이 이런 영적인 설교를 율법적인 설교로 오해하고 또 은혜 없는 설교라고 생각하여 싫어한다. 얼마나 슬픈 일인지 모른다. 예배에 열심히 참석하고 헌금 잘하고 교회 봉사 잘하면 하나님의 축복과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우리는 영적인 설교와 율법적인 설교를 분별하여 영적인 설교를 기쁘게 받아들이고, 그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참된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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