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과 육체의 일은 구원을 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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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덕호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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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는 거짓교사들의 잘못된 가르침을 물리치고 복음과 바른 신앙생활을 강력하게 가르치는 책이다. 거짓교사들이 가르친 내용은 크게 세 가지이다.
1) 율법주의: 율법을 지킨 공적으로 구원을 받으려고 하는 가르침.
2) 방탕주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았으니까 방탕하게 살아도 된다는 가르침.
3) 율법주의와 방탕주의 결합: 종교의식법에서는 율법주의, 도덕법에서는 방탕주의.(역?)

우리의 신앙생활은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만 의지하여 구원을 받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바르게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그리스도의 은혜를 강조하다보면 방탕주의에 빠지기 쉽고, 바른 삶을 강조하다보면 율법주의에 빠지기 쉽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은혜를 의지하는 것과 바른 삶을 사는 것 사이에 바른 균형을 지켜야 한다. 갈라디아서는 1-4장에서 은혜를 강조하고 5-6장에서 바른 삶을 강조하고 있다.

오늘 본문은 바른 삶을 가르쳐주기 위해 우리가 피해야 할 악한 모습을 알려준다. 이런 모습은 육체의 소욕을 따르는 육체의 일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고 해서 이런 악을 행해도 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성령님의 역사로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으니 육체의 소욕을 이겨내고 이런 죄에서 멀어져야 하는 것이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 5:16)

여기서 육체가 악한 의미로 쓰이고 있는데 이것은 육신 자체를 가리키는 게 아니라 타락한 인간의 죄성을 가리키는 것이다. 우리의 몸 자체는 악한 것이 아니다. 성경은 우리의 몸을 성전이라고 하지 않는가?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전 6:19) 만일 우리가 육체를 악하게 본다면 방탕주의자가 될 위험이 있다.(육체는 원래 악하니 죄를 지어도 상관없다?)

아울러 육체의 일을 하면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는 것은 이런 일을 한번만 해도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뜻이 아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의 행위가 우리의 구원을 좌우하게 되어 다시 율법주의가 된다. 본문은 이런 일이 구원받은 사람의 삶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우리는 정말 이런 일을 싫어하고 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런 악을 행하면 안 된다는 것과 행해도 예수님의 은혜로 용서받는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믿음을 생각해보면 된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 그래서 죄를 지어도 믿음이 있다면 용서와 구원을 받고 죄를 지었는데 믿음이 없다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 이 둘이 어떻게 다를까? 믿음이 있으면 죄를 깨달을 때 주님께 죄송해하며 다시는 안 지으려고 노력한다. 비록 연약해서 다시 짓게 되더라도 진심으로 죄를 싫어하며 안 지으려고 노력한다. 죄를 즐기지도 않는다. 그러나 믿음 없이 죄를 지으면 죄를 깨달아도 미안해하지 않는다. 다시는 안 지으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또한 죄로 인해 생긴 이익을 즐긴다.

그리고 육체의 일은 분명하다. 선인지 악인지 모호한 게 아니라 악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우리가 욕심(육체의 소욕)에 이끌려 모호하게 보는 것뿐이다. 육체에 빠지면 육체의 일이 좋게 보이지 않겠는가? 예를 들어, 분쟁과 시기는 육체의 일이다. 한 교회 안에 이런 일이 있으면 악이라는 것을 모든 성도들이 분명히 안다. 그러나 다른 교회에 대해 경쟁심을 가지고 시기하며 이기려고 하는 것은 악인지 모를 때가 있다. 자기 교회가 *더* 좋기를 바라는 욕심 때문에 그런 것이다.

본문은 육체의 일 중에 대표적인 것 15가지를 말하고 있다.(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오늘은 첫 번째로 나타난 음행에 대해서 살펴보자. 음행은 결혼 외에 성적 관계를 가지는 것이다.(손, 말, 마음, 혼전, 이혼까지) 요한계시록을 보면 이것이 우상숭배와 더불어 교회의 가장 큰 위협이다.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계 2:14, 버가모교회)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계 2:20, 두아디라교회)

음행이 당시에 무서운 시험거리가 된 것은 사회에 널리 퍼져 당연한 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음행에는 종교와 관련된 음행도 있었다. 구약시대의 바알숭배는 종교의식에 음행이 있었고, 신약시대의 소아시아에는 신전노예들이 음행을 하고 그 수입은 신전수입이 되었다. 신이 이런 노예들의 기도를 잘 들어준다고 생각해서 우상숭배자들은 이들과 음행을 많이 하였다. 사회적으로는 노예를 통한 음행이 일상화되어 있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사람들은 음행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다. 진짜 문제는 한번의 음행이 아니라 이렇게 음행을 당연시하며 즐기는 것이다. 오늘날은 어떤가? 인권존중 혹은 억압에서의 자유라는 미명하에 음행이 방치되거나 심지어 권장되지 않는가? ‘성적행복추구권?’ ‘궁합을 본다?’(미국에 다녀온 지식인과 한국의 성도?)

토의문제

1. 전에는(예수님을 믿기 전, 혹은 믿은 후라도 오래 전) 죄인 줄 모르고 쉽게 행하였으나 지금은 죄라는 것을 알고 피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있습니까?
2. 사람들이 죄인 줄 알면서도 거기서 나오는 이익을 위해 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몇 가지 찾아보십시오.(거짓말, 약속에 늦음, 법규위반, 등)
3. 우리사회의 음행 정도가 얼마나 심각하다고 생각하십니까?
4. 사회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음행인 것을 몇 가지 찾아보십시오.
5. 우리가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죄악을 버리도록, 교회와 사회가 정결해지도록, 우리교회의 부흥을 위해, 조원들을 위해 통성으로 기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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