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과 동역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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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덕호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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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주요 사역은 선교였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고전 3:6) 선교는 사탄의 영역을 공격하여 하나님의 나라로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의 사역은 전투적이었다. 이것은 예수님도 마찬가지셨다. 예수님이 병을 고치거나 잘못된 교리를 고쳐주시는 모습은 모두 악의 세력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사역이다. 사탄과의 전투인 것이다. 하지만 선교는 사탄과 싸우는 것이지 사탄의 억압 아래 있는 사람과 싸우는 것이 아니다. 선교는 사탄에게 억눌린 사람을 하나님의 품으로 데려오는 것이지 파멸시키는 것이 아니다. 오직 악과의 전투이다.

바울은 처음으로 불신 세계에 복음을 전했기 때문에 악한 세력과의 전투적인 모습이 많았다. 또한 교회가 안정되지 않아 교인들이 복음을 오해할 위험이 크므로 복음을 왜곡하는 문제에 민감하였다. 거짓교사들의 잘못된 교리를 강력하게 배척한다. 심지어 동역자들에게도 과격한 행동을 한다. 마가의 문제로 바나바와 다툰 것, 베드로의 실수를 면전에서 꾸짖은 것이 그렇다. 그래서 바울은 강하고 독선적인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바울은 무척 따뜻하고 부드러운 사람이었다.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않더냐.”(고후 11:29) 바울은 일할 때 결코 독불장군 식으로 일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이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울의 선교활동이다. 바울은 선교하러 다닐 때 좀처럼 혼자 다니지 않았다. 동역자들과 함께 다니며 사역했다. 실라, 디모데, 누가, 등이 이런 동역자들이다. 심지어 바울은 서신에서 발신자의 이름을 쓸 때도 자기 이름만 쓰지 않고 동역자의 이름을 같이 쓰는 경우가 많다.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는”(고전 1:1) 동역자를 인정하고 높여준 것이다.

그러나 동역자라도 복음을 왜곡하면 가만히 두지 않는다. 바울은 사람을 위해 일하는 자가 아니고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역자가 복음에 해를 끼치지 않는 한 바울은 동역자를 존중하며 함께 사역한다. 왜 바울이 이렇게 동역자를 존중했을까? 하나님의 일은 혼자 해서는 안 되고 혼자 할 수도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교회를 세우시고 교회를 통해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신다. 그런데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할 때 교회의 여러 지체가 서로 도우면서 해야 한다는 뜻이다. 아무리 머리로 좋은 계획을 세워도 손발이 움직이지 않고 입술이 선포하지 않으면 선교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일을 맡은 사도적 직분자는 하나님 뜻대로 일해야 하는데 그것이 다른 성도와 동역하는 것이다.

그러나 동역자를 존중한다고 해서 동역자의 사역을 방관하는 것은 아니다. 바울은 동역자들에게 엄격한 기준을 요구하였다. 그래서 온 교회가 인정하는 베드로마저도 베드로가 복음을 왜곡하는 행동을 했을 때 꾸짖은 것이다. 그러니까 다른 사역자들이 갈라디아 교회에 와서 복음을 그르치는 말을 할 때 그대로 두지 않은 것이다. 아마 이들은 예루살렘교회에서 왔다고 말했을 것이다. 바울이 이들을 무조건 배척할 리가 없다. 그러나 예루살렘교회에서 왔다고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도 아니다. 바울은 복음을 바로 알고 복음에 따라 사는 자만 동역자로 인정했다. 그래서 복음을 왜곡하는 거짓교사에 대해서는 맹공격을 퍼부은 것이다. “내가 전한 복음과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찌어다.”

사실 바울은 진리도 지키고 동역자간의 화목도 지키려고 노력했다.(갈 2장) 그러나 이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요한계시록 2-3장에는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가 나오는데 거기에는 서로 상반되는 장단점을 가진 두 교회가 나온다. 한 교회는 엄격하게 진리를 추구하다가 사랑을 잃어버렸고 한 교회는 쉽게 사람들을 용납해주다가 진리를 잃어버렸다.

에베소 교회는 거짓교사들을 시험하여 드러내고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않았다고 하여 칭찬을 받는다. 그러나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꾸중을 듣는다.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이유 중에 하나가 진리를 위해 너무 엄격하게 사람들을 시험한 데 있었던 것이다. 두아디라 교회는 사업과 사랑과 섬김과 인내가 발전했다고 칭찬을 받는다. 그러나 거짓 선지자 이세벨을 용납한 것 때문에 꾸중을 듣는다. 사랑하고 참고 섬기는 것은 좋았으나 그렇게 하는 중에 거짓교사들을 물리치지 못해서 진리를 지키지 못했던 것이다.

바울도 진리의 복음을 지키는 데 최선을 다하다가 화목에서는 실패한 적이 있는 것 같다. 마가의 문제로 바나바와 다투고 헤어진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나중에는 다 화목하게 된다. 바울은 절대 화목을 무시하는 사역자가 아니다.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 4:2-3)

갈라디아서는 복음이 위협받을 때 쓴 것이다. 그래서 진리의 복음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바울의 모습이 강하게 나타나고 심지어 독선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로 바울은 굳은 사람도 아니다 독선적인 사람도 아니다. 우리가 이것을 알고 갈라디아서를 공부해야 균형 잡힌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토의문제

1. 교회 일을 할 때 양보했으면 좋았을 뻔 했는데 양보하지 않아 후회한 적이 있습니까?
2. 교회 일을 할 때 양보하지 말아야 할 것을 양보하여 후회한 적이 있습니까?
3. 교회가 이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며 분개한 적이 있습니까? 무슨 일이었습니까?(진리, 화목, 내 취향)
4. 좋은 동역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요소를 다섯 가지 찾아보십시오.
5. 우리교회가 주님의 진리 안에서 하나가 되도록, 교회의 여러 사역자들을 위해, 조원들의 기도제목을 두고 통성으로 기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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