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과 서로 다른 사명과 공통된 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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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덕호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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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자기가 예루살렘교회에서 인정받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의 신앙생활과 교회의 화목에는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의 명예를 위해서는 예루살렘에 가지 않았지만 자기에 대한 참소 때문에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이 시험에 들고 유대인 교회와 이방인 교회가 불화하게 될 위험이 보이자 예루살렘에 간 것이다. 그리고 자기가 전하는 복음을 제시했는데 복음의 권위를 위해 사사로이 제시했다.

그러면 예루살렘 사도들은 바울을 어떻게 대했는가? 이들은 교만하게 굴지 않고 바울을 존중했다. 이들은 바울이 그 동안 보고하지 않은 것을 비난하거나 바울의 사역을 조사하겠다고 하지 않았다. 사적으로 보고받는 것을 거부하고 공적으로 다루려고 하지도 않았다. 예루살렘 사도들도 바울 못지않게 겸손히 복음과 하나님의 사역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만일 예루살렘 사도들이 교권에 관심이 많았다면 바울을 자기들의 권위 아래 두려고 하지 않았겠는가?(성 프랜시스의 발에 입 맞춘 교황?)

정말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사람을 만날 때 다투지 않는다. 목표와 사명이 같기 때문이다.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막 9:50)

교회에 분쟁이 생기는 데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1) 교리가 달라서이다. 사실 교리가 잘못된 자와 나뉘는 것은 옳은 일이다. “너희 중에 파당이 있어야 너희 중에 옳다 인정함을 받은 자들이 나타나게 되리라.”(고전 11:19)
2) 교권을 얻기 위해서이다. 교회의 역사에서 교회가 갈라진 경우 대부분 겉으로는 교리차이를 이유로 들지만 실제로는 교권 때문이었다.

이렇게 나뉘어도 기본 교리가 같고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면 다시 합한다. 바울은 목회관의 차이로 마가의 동역을 거부했으나 나중에 다시 영접한다.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딤후 4:11) 하지만 인간의 명예나 교권을 추구하면 화목할 수 없다. 바울과 예루살렘 사도들은 교리가 같고 진심으로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의 화목을 추구했기에 분쟁하지 않고 화목할 수 있었던 것이다.

분쟁에서 주의해야 할 것은 한 사람이 교권을 얻으려고 덤벼들면 다른 사람들도 덤벼든다는 것이다. 또 한 사람이 교권을 위해 반칙하면 많은 사람이 순식간에 반칙을 한다. 우리는 교회에 이런 악한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철저히 바르고 경건한 분위기를 지켜나가야 한다. 세상에서(혹은 잘못된 교회에서) 배운 악한 방법으로 교회를 오염시키지 말라.

바울이 여기서 이렇게 존중받고 나중에 예루살렘 사도들보다 더 큰 일을 한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지만 바울에게서 모범적인 자세를 찾는다면 다음과 같다.
1) 바울은 하나님의 뜻만 찾았다.(“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그랬더니 성도들의 존경도 받았다. 하나님이 높여주셨기 때문이다.
2) 바울은 자기의 사명에 충실했다. 그것은 이방선교와 심는 것이었다. 그가 교권을 멀리하고 이방을 다니며 복음 전하는 일에만 전념했더니 교회에서 위대한 사도가 된 것이다.

유대인선교(예루살렘 사도들)나 물주는 사명(아볼로)도 중요하다. 누구든지 자기의 사명을 다하면 하나님이 그에 적합한 상급을 주실 것이다. 큰 사역이나 큰 상급을 추구하지 말라. 그런 것은 없다. 각자에게 주어진 사명과 그에 따른 상급만 있을 뿐이다.(농촌목회 잘 하던 목회자가 도시에서?) 나와 다른 사역을 한다고 비난하지 말라.(마르다) 그 사역도 주님이 시키신 것이다. 우리는 서로 다른 사역으로 주님의 뜻을 더 잘 이루게 된다.

예루살렘 사도들은 바울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한다. 그것은 가난한 자들에게 관심을 가져달라는 것이다. 그런데 바울도 원래 이 일에 열심을 다하고 있었다. 우리는 여기서 성도들에게는 서로 다른 사명도 있지만 공통된 사명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사명이 서로 다르고 어떤 사명이 공통된 것일까? 판단하기가 쉽지 않으나 이렇게 볼 수도 있다.
1) 달란트와 은사를 통해 받은 사명은 서로 다르다.(재능, 직분, 등)
2)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받은 사명은 모두에게 공통된 것이다.(전도, 구제, 등)

여기서 특별한 것은 베드로가 부탁한 가난한 사람이 주로 예루살렘의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당시에는 예루살렘 성도들이 이방지역의 성도들보다 더 가난했다. 그래서 흉년에 바울이 이방교회에서 헌금을 모아 예루살렘교회에 가져간 적도 있지 않은가? “바나바와 사울이 부조하는 일을 마치고 마가라 하는 요한을 데리고 예루살렘에서 돌아오니라.”(행 12:25)

이것은 이방선교의 사명을 받은 바울이 예루살렘의 가난한 사람을 도왔다는 뜻이다. 구제는 모든 사람이 해야 할 뿐 아니라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 심지어 가난한 사람이라고 구제의 사명이 면제되는 게 아니다. 가난한 사람도 자기보다 더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 한다.(과부의 동전 두 닢 구제, 눅 21:1-4)

토의문제

1. 내가 교회에서 더 존중하는 직분과 덜 존중하는 직분을 말씀해주십시오. 내가 덜 존중하는 직분에서 사역하는 분들을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 생각해보십시오.
2. 우리교회에 명예나 직분을 얻으려고 욕심을 부리는 분위기가 있습니까?
3. 내가 잘 못하는 일을 잘 해줘서 고맙고 존경스러운 직분자를 몇 분 말씀해주십시오.
4. 우리교회 성도들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참석했으면 좋겠다고 생각되는 교회의 프로그램이나 사업을(기존 것이나 새 것) 몇 가지 말씀해주십시오.
5. 우리교회가 서로 존중하고 협력하는 교회가 되도록, 온 성도들이 사랑과 정의의 삶을 살도록, 전도대상자들을 위해, 조원들을 위해 통성으로 기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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