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과 다른 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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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덕호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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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제일 큰 목적(유일한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영생을 얻어야 한다. 하나님이 사람을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면 영생의 길은 무엇인가? 예수님을 믿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예수님을 바로 믿는 것이다. 바른 복음을 믿는 것이다. 이런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파멸당하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겠는가?

바른 믿음이 이렇게 중요하기 때문에 바른 믿음을 잘못된 믿음으로 변질시키는 거짓 복음은 말할 수 없이 악하고 위험한 것이다. 거짓 복음을 믿고 전하는 사람을 이단이라고 한다. 기독교가 아니라 다른 종교라면 이단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냥 다른 종교이다. 기독교와 비슷한 교리를 말하면서 다른 복음을 말하는 사람을 이단이라고 하는 것이다.

본문에서 바울은 아주 배타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8) 그러나 “우리가 전한 복음”이라는 말을 볼 때 바울이 동역자를 배척하는 것은 아니다. 바울은 자기중심이나 자기파중심도 아니다. ‘우리’라도 원래 전한 복음이 아닌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아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바울은 철저히 복음에만 충실하다.

생각해보라. 어떤 진리를 처음 주장한 사람은 그 진리를 취소할 권리가 있는가? 진리는 그 자체로 힘을 가지고 있다. 어떤 진리가 취소되려면 그 진리가 거짓이라는 것이 증명되어야지 말한 사람이 취소한다고 취소되는 게 아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사람이라고 자기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변경시킬 수 있겠는가? 그래서 바울은 자기와 자기 동역자라도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지도자들이 두려워해야 할 가르침이다.

여기서 바울의 모습이 배타적인 것은 틀림없다. 그러면 바울만 그런가? 예수님은 더 하셨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베드로도 마찬가지이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행 4:12) 사실 많은 진리가 배타성을 가지고 있다. 과학적 진리도 배타적이지 않은가?

기독교는 배타적이다. 그래서 다른 종교나 가르침을 구원의 길로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다른 종교인은 사랑한다. 그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며 그들이 굶주리면 먹을 것을 준다. 또한 사회의 규범을 따라 그들을 정당하게 대한다. 폭력으로 다른 종교를 파괴시키려고 하지 않는다. 우상이라도 사회법을 어기며 파괴하지 않는다. 그들의 행사를 방해하지 않는다. 구약시대에는 이런 경우가 있었지만(기드온, 엘리야) 신약시대에는 폭력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다. 예수님처럼 사랑과 희생과 구원의 권능과 진리로 선교한다.

그러면 거짓 교사들이 전하는 다른 복음은 무엇인가? 예수님을 믿어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완전한 구원을 얻지 못하고 할례와 율법을 통해 완전한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은혜를 무시하는 것이다. 이것은 복음과 근본적으로 다른 거짓 복음이다. 우리가 믿는 복음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우리 힘으로는 결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 힘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은 물론 거짓 복음이고, 예수님의 은혜에 우리의 공로가 합해져야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까지 모두 거짓 복음이다. 구원에는 우리의 공로가 전혀 필요 없다. 오직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 것이다.

그런데 왜 성경은 바르게 살지 않으면 구원을 얻지 못한다고 하는가?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고전 9:27) 그것은 믿는 자가 살아야 할 길이기 때문이다.

믿는 자에게 바른 삶을 가르치는 것은 믿고 구원을 받은 사람이 바르게 살아야 하느냐 악하게 살아도 되느냐를 따지는 것이다. 물론 답은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구원의 길이 무엇이냐를 따지며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느냐 바른 삶으로 구원을 받느냐고 묻는다면 답은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지금 갈라디아서는 구원의 길을 따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이런 내용의 다른 복음을 전하는 게 이렇게 무서운 저주를 받을 만큼 큰 죄인가? 그렇다. 이것은 하나님이 정해주신 구원의 방법을 무시하고 자기 방법으로 구원을 받으려고 하는 교만이다. 이것은 하나님 외의 다른 신을 믿는 것과 같다. 율법주의는 자기 힘으로 구원을 받으려는 것이므로 자기를 우상으로 섬기는 우상숭배이다. 거짓교사는 이런 우상숭배로 천진한 백성을 미혹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저주를 면할 수 있겠는가?

토의문제

1. 인간적인 권위가 있으면 성경을 마음대로 해석할 위험이 있습니다. 그 동안 성경을 이상하게 해석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학자, 부흥사, 등)
2. 불교에서 성탄 축하 메시지를 보내니 우리도 석탄 축하 메시지를 보내야 할까요?
3. 세상의 배타적인 진리를 찾아보십시오. 구원의 길이 배타적인 게 이상합니까?
4. 사람들이 다른 복음을 쉽게 따르는 이유가 무엇일까요?(공로에 대한 보상의 원리, 이단의 친절, 이단 지도자의 재능, 교회의 부정적인 모습, 등)
5. 우리가 항상 바른 믿음으로 살아가며 바른 교회를 이룰 수 있도록, 전도대상자들을 위해, 조원들의 기도제목을 두고 통성으로 기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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