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과 언제 성령님을 받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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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덕호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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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의 내용을 큰 단위로 분석하면 다음과 같은 구조라고 볼 수 있다.
1-4장: 우리는 오직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바울의 사도직 변호 포함)
1-2장: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복음의 선포
3-4장: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복음의 증명(6가지 논증)
5-6장: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는 바르게 살아야 한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진리를 증명하는 첫 번째 문단이다. 이것은 갈라디아의 성도들이 성령님을 받은 경험을 근거로 증명한다. 그 원리는 다음과 같다.

사람이 구원을 받았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성령님을 받은 것이다. 성령님을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이 그를 인정해주고 함께해주신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사람이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다면 율법을 행할 때 성령님을 받을 것이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면 예수님을 믿을 때 성령님을 받을 것이다.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은 언제 성령님을 받았는가? 물론 이들은 율법을 지킬 때가 아니라 믿을 때 성령님을 받았다. 바울은 이것을 알고 이런 수사학적인 질문을 통해 이들에게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복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도 언제 성령님을 받았는지 확인해봄으로써 복음의 진리를 확신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성령님을 받았는가? 성령님을 받은 모습은 크게 세 가지로 나타난다.
1) 성령님은 사람으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게 만든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 12:3)
2) 성령님은 사람에게 여러 가지 은사를 주신다.
3) 성령님은 사람이 성령님의 열매를 맺게 해주신다.

성령님이 예수님을 믿게 만드는 것을 생각해보자.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고 믿음이 강해지면 구원의 확신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성령님을 받으면 구원의 확신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 구원의 확신을 가지게 되는가? 율법을 지킬 때인가, 예수님을 믿을 때인가?

고등부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당신은 구원을 받았습니까?”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이때 30여 명의 학생 중 단 세 학생만 구원의 확신이 있었고 다른 학생들은 구원을 받지 못했다거나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나는 그 이유를 보고 크게 깨달았다.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사람은 자기를 보고 있었다. “나는 교회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나는 믿음이 약해서.” 그러나 구원의 확신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나 예수님을 보고 있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니까.”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셨으니까.” 자기의 행위를 보면 구원의 확신이 생길 수 없다. 예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해야 생긴다. 이것은 우리의 행위로 구원의 확신이 생기는 게 아니라 예수님을 믿음으로 생긴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이것은 믿음으로 성령님을 받는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는가?

은사 받는 것은 어떤가? 교회 오래 다니고, 봉사 많이 했다고 은사 받는가? 어느 교회에서 교회 오래 다닌 올케와 다닌 지 얼마 안 되는 시누이가 함께 철야기도를 하다가 시누이는 방언의 은사를 받았는데 올케는 받지 못해 함께 울었다. 올케는 감격해서 울었고 시누이는 섭섭해서 울었다. 은사는 업적이 많다고 받는 게 아니다.

심지어 사모하며 기도해서 은사를 받았어도 기도의 업적으로 받은 것은 아니다. 기도는 믿음으로 드릴 때 응답되는 것이지 기도행위의 업적이 많다고 응답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령님의 은사도 믿음으로 기도할 때 혹은 믿음으로 말씀을 받을 때 받는다. 물론 우리가 믿는다고 원하는 은사를 다 받는 것이 아니다. 전적으로 주님의 은혜에 의지하는 믿음으로 받는다. 그러니까 은사는 업적이 아니라 믿음으로 받는 것이 아니다.

성령님의 열매는 어떤가? 우리가 율법을 잘 지키면 성령님이 열매를 맺게 해주시는가? 여기서 율법의 내용도 사랑이고 성령님의 열매도 사랑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생각해보자. 우리가 사랑의 삶을 살면(율법) 성령님이 임하시는가, 성령님이 임하시면 사랑의 삶을 살게(열매) 되는가? 우리가 서석동에서 가장 온유하여 성령님을 받아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가? 아니면 예수님을 믿고 성령님을 받아 온유하게 되었는가? 이것을 봐도 율법을 지켜 성령님을 받는 게 아니라 믿음으로 성령님을 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고 성령님을(특히 은사) 받았는데 지금 다시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는 율법주의에 미혹되고 있다. 이것을 바울은 성령님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려는 것이라고 한다. 율법을 의지하는 것이 내 자신(내 육체)을 의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성령님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려고 하지 않는가? 우리가 복음을 믿고 예수님의 은혜만 의지하며 신앙생활을 하다가 교회봉사의 업적이 많아지면 그것을 의지하여 큰소리치지 않는가? 교회에서 누가 교만해지는가? 오래 다닌 사람, 헌금이나 봉사를 많이 한 사람 아닌가? 이것이 내 자신(육체)을 의지하는 모습인 것이다.

토의문제

1. 나는 구원의 확신이 있습니까? 무엇을 보고 구원을 확신할 수 있습니까?
2. ‘성령님의 은사’에서 ‘은사’는 ‘선물’(gift)입니다. 은사는 선물이기 때문에 우리가 자랑하거나 교만하거나 경쟁하거나 질투할 수 없다는 것을 함께 생각해보십시오.
3. 나에게 업적이나 직분을 자랑하는 모습이 있습니까?
4. 나의 업적을 생각하며 섬기는 것은 율법주의이고 이웃의 유익을 위해 기쁨으로 섬기는 것은 성령님의 열매입니다. 나의 섬김은 어디에 가깝습니까?
5. 우리가 참 믿음으로 성령님의 충만하심을 입도록, 율법주의가 아니라 성령님의 감동 속에 섬기도록, 교회의 부흥을 위해, 조원들을 위해 통성으로 기도하십시오.



오덕호: 한 주 늦게 올리게 된 것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이번 주에 두 주분을 올립니다. 다시 한번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06/27-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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