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과 다시 종이 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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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덕호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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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은 광야에서 하나님께 많은 죄를 지었다. 그중에 어떤 죄가 하나님의 진노를 가장 크게 샀을까? 우상숭배였을 것이다. 하나님이 최선의 사랑으로 구원해주셨더니 다른 신을 섬긴 것이기 때문이다.(보약과 바람) 이에 못지않게 하나님을 노하시게 한 죄가 있다. 애굽으로 돌아가겠다고 한 것이다. 하나님이 잘 되라고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원해주셨는데 다시 애굽의 종살이로 돌아가겠다고 하니 하나님이 얼마나 섭섭하시겠는가?

갈라디아 성도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은 후에 다시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 구원을 얻겠다고 하는 것이 바로 애굽의 종살이로 다시 돌아가겠다고 하는 것과 같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보내셔서 사람들이 율법에서 자유를 얻게 해주셨다.(율법의 정죄와 율법주의의 강박관념) 그런데 이 자유를 얻은 갈라디아 성도들이 다시 율법의 종이 되겠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이들에게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우리 중에 율법의 종이 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도 모르게 율법의 종이 되는 경우가 많다. 본문은 율법의 종이 되면 육체를 자랑한다고 한다. 문자적으로는 할례 받은 것을 자랑한다는 뜻이지만 넓은 의미로는 율법을 지킨 행위를 자랑한다는 뜻이다. 율법의 종이 되면 율법을 지킨 업적을 의지하기 때문에 율법의 행위를 자랑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두 가지 해를 당하게 된다.

1) 그리스도의 은혜에서 끊어진다. 그리스도의 은혜는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사람만 받는데 자기의 업적을 의지하면 그만큼 그리스도를 의지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2) 율법에 의해 정죄된다. 율법을 의지하려면 모든 율법을 지켜야 하는데 모든 율법을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법은 만 가지를 지켜도 한 가지만 어기면 죄인이 된다.

예를 들어, 1,000명을 전도하고 자랑스러워하면 그 업적으로 구원에 가까워졌다고 생각하기 쉽다. “내가 전도한 사람이 몇 명인데 구원을 못 받아?” 그러면 그리스도의 은혜에서 멀어지는 것이다. 또 전도를 자랑하면 가난한 이웃 돕지 못한 것에 대해 정죄 받는다. 심지어 전도를 자랑하는 순간 전도할 수 있었는데 전도하지 않은 모습에 대해서도 정죄 받는다. 우리는 자랑하는 그것으로 정죄 받게 되는 것이다.(업적, 직분, 등 육체의 자랑)

그런데 이렇게 잘못된 율법주의가 놀라운 전파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진다고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가 누룩 같이 온 세상을 정복할 것이라고 하셨다. 예수님의 말씀과 본문을 비교할 때 하나님의 나라가 궁극적으로는 세상을 정복할 것이다. 그러나 일시적으로는 거짓교훈도 무서운 전파력을 가질 것이다. 우리는 교회에 이런 악이 퍼지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현대의 교회에는 육체를 자랑하는 율법주의의 모습이 많은 것 같다.(직분이나 업적의 추구, 자랑, 특권의식)

왜 사람들이 이런 율법주의에 잘 빠지는가? 박해를 면하기 위해서이다. 사람들에게 욕을 먹지 않고 칭찬을 받기 위해서이다. 당시에 유대인들로부터 박해를 받지 않으려면 율법주의를 따라야 했다. 심지어 유대인 성도들 중에도 율법주의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아서 이들에게 비난을 받지 않으려면 율법주의를 따라야 했다.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 교훈을 받을 수 있다.

1) 사람의 눈치를 보면 율법주의에 빠지기 쉽다는 것이다. 사람들로부터 칭찬받고 인정을 받으려면 업적을 보여줘야 한다. 그런데 교회를 율법주의적으로 이끄는 게 업적을 올리는 데 도움이 될 때가 있다.(업적경쟁유도, 직분강조, 행위에 대한 정죄나 축복, 등)
2) 많은 악이 사람의 눈치를 보는 데서 생긴다는 것이다.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잠 29:25)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지 않고 칭찬을 받으려는 것은 명예욕이다. 이런 욕심도 죄를 낳는다. 종교다원주의나 황금만능주의 같은 현대교회의 많은 죄가 사람들의 비난을 받지 않고 칭찬을 받으려고 하는 데서 오는 것이다.

바울은 신랄한 풍자를 한다. 할례(남성의 음경 포피를 절개하거나 일부 베어내는 의식)를 자랑할 거라면 더 자랑스럽게 아예 베어버리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금식기도 한 것을 자랑하면 아예 굶어죽지 그랬느냐고 하는 것과 같다. 금식은 좋은 것이지만 율법주의적인 자세로 한다면 이런 풍자적인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헌금, 선교, 모두 마찬가지이다.(어렸을 때 전 재산 바쳐 성공했다는 간증과 반응)

본문에서 말하는 자유는 우선적으로 율법에서의 자유를 말하며 다시는 율법의 종이 되지 말라는 교훈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또 한 가지의 메시지가 들어있다. 죄에서 자유를 얻은 사람은 다시 죄의 종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율법주의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것은 은혜를 의지하는 믿음인데 이 믿음은 사랑으로 역사한다. 사랑은 율법을 잘 지키는 바른 삶이다. 그러니까 믿음은 율법을 잘 지키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문단은 다시는 율법의 종이 되지 말라고 하며 복음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다시는 죄의 종이 되지 말라고 하며 바른 삶을 가르친다. 그러면서 이제 바른 삶에 대한 교훈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토의문제

1. 은혜를 받아 시작한 일이 율법주의화 된 경험이 있습니까?(봉사, 성경읽기, 헌금, 기도, 등이 짐이 되거나 자랑거리가 되거나 영생과 축복의 근거가 된다는 생각)
2. 교인들이 자랑스러워하는 것을 몇 가지 말씀해주십시오. 교인들이 이것을 사람들과 비교하며 자랑합니까, 아니면 혼자 하나님 앞에서 감사하며 기뻐합니까?
3. 교회에서 사람들의 평가에 관심을 가집니까? 왜 가집니까?(높아지려고? 덕을 위해?)
4. 나는 우리교회에 어떤 비전이 있습니까? 이것은 누구의 마음에 들기 위한 것입니까?(나, 사람들, 하나님?)
5. 우리가 율법주의에 빠지지 않고 은혜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도록, 구원을 얻었으니 더욱 바르게 살도록, 조원들을 위해 통성으로 기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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