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1과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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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덕호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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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8문: 기도가 무엇입니까?


답: 기도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뜻에 맞는 우리의 소원을 하나님께 고해바치는 것인데 이때 죄의 자복과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감사가 함께 있어야 합니다.(요 16:23-24; 시 62:8; 롬 8:27; 단 9:4; 빌 4:6)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 16:23-24)   


“내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며 자복하여 이르기를 크시고 두려워할 주 하나님,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위하여 언약을 지키시고 그에게 인자를 베푸시는 자시여”(단 9:4)

 

1. 참된 기도가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요건을 갖춰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도의 자세입니다. 기도는 바른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물론 그 마음은 참 믿음의 마음입니다. 그리고 참 믿음은 사랑과 소망을 포함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며 섬기는 마음과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과 기도가 이루어질 것을 바라며 믿는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기도에서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은 기도가 형식적이거나 기계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무리 기도가 형식이 잘 갖춰졌고 기도의 양이 많아도 진실한 마음이 없으면 기도가 아닙니다. 특히 마음은 없이 주문처럼 하는 기도는 미신적인 것입니다. 왜 사람이 형식적이거나 주문 같은 기도를 드립니까? 하나님이 마음을 보신다는 것을 잊고 외형적인 업적만 채우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도 형식과 양을 채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강하게 꾸짖으셨습니다.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마 6:7)


그러면 형식과 내용과 양은 전혀 의미가 없습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진정한 믿음과 사랑의 마음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내용과 양이 정해지고 형식도 일정한 모습을 갖추게 됩니다. 그러나 마음 없이 형식과 양을 채운다고 기도가 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바른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라면 형식이나 내용이나 양에 부족함이 있어도 상관없습니다. 유창하지만 형식적인 기도보다는 어눌해도 진심의 기도가 참된 기도입니다.


바른 마음의 기도는 믿음과 사랑과 감사의 기도가 됩니다. 바른 믿음은 죄를 자복하고 그리스도를 의지하며 기도하게 합니다. 또한 믿음의 기도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드리는 것이므로 포기하지 않습니다. 응답을 확인할 때까지 기도합니다.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막 7:28-29)


바른 믿음의 기도는 바른 삶과 함께 드립니다. 바른 삶은 사랑이므로 사랑으로 기도하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에 맞는 기도를 드리게 됩니다. 아울러 사랑하면 이웃을 용서하고 기도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웃을 용서하지 않고 드리는 기도는 응답되지 않는다고 하신 것입니다.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셨더라.”(막 11:25)


바른 믿음의 기도는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와 기도할 수 있는 축복을 주신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울러 바른 믿음의 기도는 응답을 확신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 11:24) 그래서 우리는 감사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감사하며 드리는 기도가 능력이 있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 이렇게 바른 믿음의 기도에는 죄의 자복,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함, 하나님 뜻에 맞게 기도함, 감사하며 기도함, 등이 포함되므로 소요리문답도 이렇게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2. 기도의 대상이 중요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 외에는 세상에 참 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삼위일체 하나님 중에 특별한 위에게만 드려야 합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기도는 대체로 삼위일체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성부 하나님이나 성자 하나님이나 성령 하나님께 드릴 수 있습니다.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요 16:23)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 14:14)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고전 12:11)


기도의 대상이 잘못되면 참 기도가 아닙니다. 우상에게 기도하면 안 됩니다. 갈멜산에서 엘리야와 대결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은 우상에게 기도했기 때문에 그 모든 기도가 허망한 것이었습니다. 반면에 엘리야의 기도는 참 하나님께 드린 것이었기에 효력 있는 기도였습니다.


또 사람에게 기도해도 안 됩니다. 가톨릭에서 마리아에게 기도하거나 성자에게 기도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물론 가톨릭에서는 마리아나 성자에게 기도한다기보다 그들에게 대신 기도를 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라고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런 식의 기도는 성인들에게 직접 하는 기도가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성인들이 하늘에 있다고 믿고 또한 성인들마다 특별히 도울 수 있는 분야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직접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으므로 성인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되면 죽은 사람을 신적인 존재로 생각하여 의지할 위험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상숭배에 가깝습니다.


심지어 사람에게 기도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 기도한다고 하면서도 그 기도를 사람이 보고 평가해주기를 바란다면 그 기도는 하나님께 상달되지 않습니다. 기도의 목적이 사람에게 보이는 것이고 사람이 본 것으로 기도의 목적이 달성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기도의 대표적인 모습은 길게 하는 것, 유창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 큰 소리로 하는 것입니다. 물론 길고 유창하고 고성의 기도라고 꼭 나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사람에게 내가 기도를 많이 한다는 것을 보여줘서 칭찬을 받고자 하는 것이라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길게, 좋은 표현으로, 큰 소리로 기도하는 것이 다른 성도들에게 유익이 되면 괜찮으나 방해가 되면 피해야 합니다. 갈멜산에서는 바알 선지자들이 괴성을 지르고 몸을 상하며 기도했고 엘리야는 오히려 당당하고 간결하게 기도했습니다.


3. 기도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해야 합니다. 이것은 기도가 모두 고정된 문구로 끝나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기도의 다른 내용과 같이 이것도 기도의 형식을 가르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은혜를 의지하여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은혜로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도 당신의 이름으로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날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 하는 말이 아니니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나를 하나님께로서 온줄 믿은 고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니라.”(요 16:26-27)


전에도 한번 다뤘지만 예수님을 믿고 기도하는데 실수나 다급하여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표현을 빠뜨린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들 눈치를 보느라고 일부러 예수님의 이름을 빠뜨리고 기도한다면 이것은 바른 기도라고 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갈 수 없는 것처럼 예수님을 의지하지 않는 기도는 하나님께 상달될 수 없습니다.


4. 기도는 우리의 죄를 자복하고 하나님의 자비를 감사하게 인식하며 드려야 합니다. 참 기도에서 죄의 자복과 감사는 필수적인 것입니다. 아무리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해도 예수님을 죄에서 구속해주시는 분으로 믿지 않고 그냥 위대한 인류의 스승으로 생각하면서 기도한다면 이것은 참된 기도가 아닙니다. 그냥 위인을 생각하며 자기의 결단을 새롭게 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죄의 용서를 믿지 않고 하는 기도는 죄의 용서를 받지 못하고 하는 기도이므로 응답되지 않습니다. 죄는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자복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대속의 은혜를 깨달은 사람은 하나님의 자비에 감사하며 기도하게 됩니다. 자기는 기도드릴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참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사악하고 저주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 시작됩니다.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 비유가 이것을 잘 보여줍니다.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갔느니라.”(눅 18:10-14)


죄를 자복하며 거기에 대한 감사 없이 그냥 자기 공로에 대한 감사만이라면 참된 감사가 아닙니다. 물론 모든 기도에 구속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현을 하지 않더라도 마음의 자세가 그래야 한다는 것입니다.


소요리문답 마지막에 기도에 대한 교훈이 나오는 것은 두 가지 점에서 좋습니다. 하나는 은혜와 율법을 배워 우리가 얼마나 악한지도 알고 주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도 알아 진정한 자복과 감사 속에 기도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뜻을 배웠으므로 하나님의 뜻에 맞게 기도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기도가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는 길이므로 이렇게 바른 기도를 통해 능력 있게 살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토의문제


1. ‘나’는 얼마나 기도를 많이 합니까? 하루에 기도하는 횟수와 기도에 소요되는 시간을 말씀해주십시오.


2. ‘내’가 자주 하는 기도 형식(장소, 방법)과 내용을 말씀해주십시오. 가장 길게 하는 기도 형식과 내용도 말씀해주십시오.


3. ‘내’가 가장 간절히 기도했던 경험을 나눠주십시오. 언제 어떤 일로 기도했으며 응답은 어땠습니까?


4. ‘내’가 받은 기도의 응답 중에 가장 인상적인 것을 나눠주십시오. 그 기도의 형식과 내용은 무엇이었습니까? 그 기도를 드릴 때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습니까?


5. 바른 기도를 위해서는 포기하지 말아야 하고, 바른 삶 속에 해야 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응답을 미리 보고 드리는 감사) 해야 합니다. 이 세 가지 중에 나의 기도에서 가장 약한 점과 가장 강한 점을 나누십시오.


6. ‘나’는 기도 중에 눈물을 흘릴 때가 있습니까? 언제 눈물을 많이 흘립니까? 부족함을 자복할 때입니까? 억울한 것을 토로할 때입니까? 주신 은혜에 감사할 때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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