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과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속되었습니다

작성자 정보

  • 오덕호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바리새인은 원래 율법을 잘 지키려고 한 사람들이지만 율법주의적인 사고 때문에 문제가 많았다. 우선 하나님의 은혜를 이해하지 못하여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사람들을 정죄했다. 그리고 외형적인 업적을 중시하다 보니까 위선적인 행동을 많이 했다. 그래서 백성들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탈무드에는 바리새인을 7 종류로 나누는 내용이 나온다. 1) 조금 있다가 형: 선행을 미뤄두는 사람 2) 멍든 형: 악을 안 보려고 눈을 감고 가다가 다친 사람 3) 어깨 형: 선행을 어깨 위에 올려놓고 자랑하는 사람 4) 곱사등이 형: 겸손한 체하는 사람 5) 계산 형: 자기의 선행과 악행을 계산하며 행동하는 사람 6)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형: 하나님이 두려워서 바르게 사는 사람 7) 하나님을 사랑하는 형: 하나님을 사랑하여 바르게 사는 사람. 백성들은 이 중에 진짜 바리새인은 7)이라고 했다.

우리가 거룩하게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기본이 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다만 사랑만으로는 바로 살기 어려워서 두려움도 필요한 것이다. 베드로전서는 17절에서 두려움으로 신앙생활을 잘 하도록 가르친 후 18절부터 다시 하나님을 사랑하며 신앙생활을 잘 하라고 한다. 이를 위해 특별히 강조하는 것이 우리의 구원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이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도와주고, 더욱 구원을 지키기 위해 조심하도록 도와준다.

우리의 구원이 얼마나 귀한가? 이 구원은 세상에서 가장 값진 것으로도 받을 수 없다. 그래서 금이나 은 같은 것으로 구원받은 게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 무엇으로 구원을 받는가? 하나님의 아들이 목숨을 바침으로써 받는다. 이보다 귀한 것이 있을까? 이렇게 값진 것으로 구원받았다는 것은 두 가지를 알려준다. 1) 이 구원은 진짜 구원이고 정말 좋은 것이라는 것이다. 좋은 것과 나쁜 것 중에 좋은 것이 비싸다. 가짜와 진짜 중에 진짜가 비싸다. 그래서 가짜를 진짜로 속이려면 가격을 올리지 않는가? 2) 이 구원을 유의해서 관리해야 한다. 귀한 것을 어떻게 함부로 굴릴 수 있는가? 그러면 자연히 구원받은 자답게 살려고 노력하며 거룩한 삶을 살게 된다.

그런데 얼마나 많은 사람이 구원을 천하게 다루는가? 전도를 마치 구걸이나 시시한 물건을 강매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심지어 신자도 그렇다. 예배나 봉사는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고, 구원의 길을 가기 위해 참여하는 것이다. 그런데 예배나 봉사를 인심 쓰는 것처럼 참여한다면 구원을 무시하는 것 아닌가? 우리가 구원의 가치를 백만분의 일만 알아도 그러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구원의 가치를 알아야 한다.(감추인 보화 비유)

본문은 구원의 가치를 알려주기 위해 우선 구원은 금이나 은보다 더 귀한 것으로 얻은 것이라고 한다. 다음으로 시간적인 준비를 보여준다. 구원은 창세 이전부터 예비되었다가 말세를 맞아 나타나신 그리스도의 은혜로 얻은 것이다. 참고로 말세는 예수님의 재림 때를 가리키거나(하나님 나라의 완성) 예수님의 초림부터 재림 때까지를 가리킨다.(구원사역의 완성) 여기서는 초림 때를 의미한다. 어쨌든 이것은 구원이 얼마나 오랫동안 예비된 것인지를 알려준다. 그리고 십자가 은혜와 부활과 영광을 보여주며 믿음과 소망을 말해준다. “너희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21절)

그리고 다시 우리의 삶에 대한 교훈을 주는데 그것은 사랑의 삶이다. 특히 본문에서 재미있는 것은 21절에서 믿음과 소망을 말한 후 22절에서 사랑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내용이다. 믿음과 소망을 가진 사람은 사랑하게 되기 때문이다. 본문도 사랑하기에 이르렀다고 선포하지 사랑하라고 명령하지 않는다.

본문은 믿음과 소망에서 나온 사랑의 특징을 보여주는데 그것은 거짓 없는 사랑이다. 거짓된 사랑은 어떤 것인가? 본심은 사랑하지 않으면서 겉으로만 사랑하는 체하는 것이다. 왜 사랑하는 체할까?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이다.(체면, 보상, 관계, 등) 거짓 사랑은 자기 이권에 따라 사람을 차별한다. 이것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내 유익이 아니라 상대방의 유익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단, 사랑의 마음이 없지만 사랑하려고 노력하며 행동하는 것은 부족한 사랑이기는 해도 거짓 사랑은 아니다.

그리고 나아가서 피차 뜨겁게 사랑해야 한다. 피차 사랑하는 것은 모두가 서로 사랑하는 것으로서 차별 없는 사랑을 의미한다. 특히 성도들도 교회지도자에게 특별대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뜨겁게 사랑하라는 것은 내 몸처럼, 혹은 내 목숨을 다해 사랑하라는 뜻이다. 하나님을 목숨을 다해 사랑하는 것도 뜨겁게 사랑하는 것이다. 거짓 사랑은 이기적이고 자기 목숨을 이웃보다 아끼기 때문에 절대 이웃을 뜨겁게 사랑할 수 없다.

베드로전서 1장은 지금까지 삼위일체 하나님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은혜를 보여줬다. 그리고 믿음, 소망, 사랑을 통해 바른 신앙의 모습을 가르쳐준다. 그리고 구원받은 자로서 거룩한 삶을 살라고 가르쳐준다. 이를 위해서는 진실한 사랑과 나아가서는 뜨거운 사랑이 필요하다고 가르쳐준다. 앞으로 베드로전서는 보다 구체적으로 거룩한 삶의 길을 가르쳐줄 것이다. 우리는 1장에서 거룩한 삶을 살아야겠다는 각오가 되어 있어야 2장부터 나오는 구체적인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토의문제

1. 오늘 말씀에서 내가 느낀 점을 자유롭게 나누십시오.
2. 구원을 공짜로 받았다는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나십니까? 구원이 말할 수 없이 비싼 것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나십니까?
3. 거짓이 없는 사랑을 보신 적이 있으면 소개해주십시오.
4. 우리교회 성도들이 서로 뜨겁게 사랑하면 교회에 어떤 모습이 나타날 것 같습니까? 구체적으로 몇 가지 찾아보십시오.
5. 우리가 구원의 가치를 더 많이 깨닫고 구원을 지키기 위해 애쓰도록, 우리교회가 서로 뜨겁게 사랑하도록, 조원들을 위해 통성으로 기도하십시오.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443 / 1 Page
번호
제목
이름

성경공부


최근글


새댓글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