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성경공부

제9과 악한 습관을 버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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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덕호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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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본문의 구조는 이렇다. “그러므로 이렇게 해라. 그것은 이렇게 되기 위해서이다.” 이것은 앞의 내용 때문에 이렇게 하라는 것이고 이렇게 하면 이런 결과가 생긴다는 뜻이다. 앞의 어떤 내용 때문에 이렇게 해야 하는가? 성도들이 거듭났기 때문이다.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1:23) 결과는 무엇인가? 구원에 이른다.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2:2) 그러니까 우리도 거듭났으면 이렇게 해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두 가지이다. 악한 삶을 버리고 신령한 젖을 사모해야 한다. 악한 삶을 버릴 때 중요한 것은 악한 습관을 버리는 것이다. 신령한 젖은 영적인 양식도 되고 말씀의 양식도 된다. 우리는 말씀으로 영적 은혜 입는 것을 사모해야 하는 것이다. 이 둘은 동시에 하는 게 좋지만 굳이 순서를 따진다면 악한 습관을 버리는 게 먼저이다. 그런데 어떤 성도들은 악을 버리지 않고 말씀과 은혜만 사모한다. 이것은 잘못이다. 악을 버리지 않으면 은혜 받기 어렵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1) 악한 생각이 가득하면 신령한 젖을 사모할 수 없다. 악을 생각하는 사람은 악한 것을 구할 수밖에 없다. 신령한 젖을 구하는 것 같아도 진짜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를 사모하는 게 아니라 자기의 악한 삶을 충족시켜주는 방법으로 그것을 사모할 뿐이다.
2) 속에 악한 것이 가득하면 신령한 젖을 받아들일 수 없다. 머릿속에 다른 생각이 들어 있어도 말씀에서 은혜 받기 어려운데 악한 마음이 가득하면 어떻게 은혜를 받겠는가? 교회에 대해 불만, 교인에 대한 증오심, 등이 있으면 신령한 젖을 얻기 어렵다.

그래서 악한 습관과 생각을 버리지 않고 신령한 젖만 구하면 신앙생활을 수십 년 해도 영적인 은혜를 입지 못하고 신앙이 자라지 못한다. 이런 사람이 은혜를 사모한다고 종교행위를 열심히 하면 교회에서 중직을 맡기도 한다. 그러면 이렇게 된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2-23) 이런 사람은 자신만 망하는 게 아니라 남들도 망하게 한다. 남들이 이들 때문에 교회를 떠나거나 이들을 보고 잘못 배우기 때문이다.

그러면 무엇을 버려야 하는가? 모든 악독을 버려야 한다. 악독은 악의 총칭이다. 악은 모두 버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버려야 할 네 가지 행동이 나온다.
1) 기만: 기만은 거짓이다. 예수님의 입에는 거짓이 없다.(벧전 2:22) 사탄에게 거짓이 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요 8:44) 거짓말하는 자는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라 사탄의 종이다. 사람이 왜 거짓말을 하는가? 자기 이익을 위해서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는 자는 거짓말을 할 수 없다. 하나님은 거짓을 싫어하시는데 하나님께 잘못 보이면 복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2) 외식: 외식은 위선이다. 마음에도 없이 겉으로만 그런 척하는 일종의 거짓이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므로 외식은 아무 도움이 안 된다. 오히려 외식은 거짓이므로 하나님이 싫어하신다. 예수님도 얼마나 외식을 싫어하셨는가. 단, 마음에 없어도 이웃을 위해 절제하는 것은 외식이 아니라 사랑이다.(미숙한 사랑) 우리는 위선과 절제를 구별해야 한다. 악한 마음을 솔직하게 다 말이나 행동으로 나타내는 것은 잘못이다. 그것을 절제해서 선한 말과 행동을 해야 한다. 단, 자기가 진짜 그렇게 선한 척해서는 안 된다. 겸손히 자기는 악하지만 노력할 뿐이고 주님의 은혜로 이런 절제라도 한다고 해야 한다.
3) 시기: 시기는 남에게 이기려는 경쟁심으로 남이 잘 되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모르고 자기 힘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면 경쟁심이 생긴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으면 남을 경계하지 않아 경쟁심이 생기지 않는다. 교회에서 시기심을 버리려면 하나님의 영광만 추구하면 된다. 바울은 자기를 괴롭히려고 열심히 전도하는 대적자들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빌 1:18)
4) 비방하는 말: 남을 깎아내리는 말이다. 말은 행동이 될 때도 있고(위험을 알려주는 말) 행동이 안 될 때도 있다(헛맹세). 비방하는 말은 강력한 행동이다. 말은 생각만큼 쉽고 행동만큼 무서운 결과를 초래한다. 한 마디 말로 사람을 죽이거나(마타도어: 소를 죽이는 마지막 투우사, 흑색선전의 뜻이 됨) 중상을 입힐 수 있다.(30초 비방이 30년 마음의 상처) 비방의 말이 무서운 것은 몹시 재미있어서 사람들이 쉽게 빠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경쟁심 때문에 남이 비방당하는 말을 즐겨 듣는다. 비방은 거짓, 시기, 위선(앞에서는 칭찬, 뒤에서는 비방)과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비방 대신 해야 할 말은 칭찬과 격려이다. 그러나 이것도 거짓, 경쟁(경쟁 유발 칭찬?), 위선으로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갓난아기처럼 신령한 젖을 사모해야 한다. 갓난아기는 오직 젖만 사모한다. 어른처럼 쾌락적인 음식을 찾지 않는다. 그리고 사정없이 사모한다. 젖에 목숨을 걸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말씀의 은혜, 영적인 은혜를 이렇게 몰입해서 사정없이 사모하면 신앙이 성장할 것이다. “갓난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2절)

토의문제

1. 오늘 말씀에서 내가 느낀 점을 자유롭게 나누십시오.
2. 이미 은혜로 거듭난 사람은 더 큰 은혜를 사모하기 전에 악한 습관 버리는 것을 사모해야 한다는 말씀에서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3. 내가 우리교회와 교우들을 비방하거나 칭찬한다면 어떤 말을 하겠습니까?
4. 내가 말씀의 은혜와 영적인 은혜를 갓난아기처럼 사모했던 경험을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물질적인 축복을 그렇게 사모했던 경험도 말씀해주십시오.
5. 우리가 모든 악독을 버리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여 신앙이 더욱 성장하도록, 교회의 영적 성장과 양적 부흥을 위해, 조원들을 위해 통성으로 기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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