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과 의롭다 하심

작성자 정보

  • 오덕호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제32문: 효력 있는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 이생에서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답: 효력 있는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이생에서 의롭다 하심과 양자로 삼으심과 거룩하게 하심을 얻고 또 이생에서 이것과 더불어 받는 여러 가지 유익과 거기서 나오는 여러 가지 유익을 받게 됩니다.(롬 8:30; 엡 1:5; 고전 1:30)


제33문: 의롭다 하심이 무엇입니까?


답: 의롭다 하심은 하나님이 거저 주신 은혜의 행위로써 그가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주시고 자기 앞에서 우리를 의롭게 여겨 받아주시는 것인데 다만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에게 돌려주시고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그 의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엡 1:7; 고후 5:21; 롬 5:19; 갈 2:16)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 8:30)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엡 1:7) 


1. 우리는 지난 두 주 동안 ‘효력 있는 부르심’과 ‘회개’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오늘은 ‘의롭다 하심’을 살펴보겠습니다. ‘의롭다 하심’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칭의’를 의미합니다. 이 교리는 기독교신앙의 아주 중요한 질문, 즉 “타락하여 죄인이 되어버린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의로워지는가?”에 대해 답변을 해줍니다. 여기서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아주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의로워지는 것은 ‘의롭다 하심’을 입어서 된다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의로워지는 것은 우리가 생각과 말과 행동에 있어 악이 없고 의만 있는 사람이 되어서 의로워지는 게 아니라 재판권을 가지신 하나님이 의롭다고 선포해주셔서 의로워진다는 것입니다.


2. 우리가 의롭다고 선포되는 것은 우리의 힘으로 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역사를 통해 우리를 의롭다고 선포해주십니까? 예수님의 의를 우리에게 전가시키셔서 우리를 의롭다고 선포해주시는 것입니다. 전가시킨다는 것은 이 사람에게 속한 것을 저 사람에게 속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죄인이 된 것은 아담의 죄가 우리에게 전가되어 그렇게 된 것입니다. 아담이 인류의 대표자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총사령관이 항복하면 모든 군인이 항복한 것이 되는 것과 비슷합니다. 예수님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는 것도 이와 비슷합니다. 그러나 아담의 전가는 일방적인데 반해 예수님의 전가는 양방적입니다. 먼저 우리의 죄와 그에 대한 벌이 예수님께 전가됩니다. 다음으로 예수님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율법을 지키지 못하고 죄를 지었지만 마치 우리가 율법을 지킨 의인처럼 취급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 지시고 당신의 완전한 의를 우리에게 전가시켜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담대히 서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느니라.”(엡 3:12)


3. 우리를 의롭다고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의인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행동 때문입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의의 근거가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은 달리 말하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어떤 선행으로 우리가 의로워지는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심지어 우리는 믿음으로 의로워진다는 말도 바르게 이해해야 합니다. 만일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선한 마음가짐이나 행동이라고 생각하면서 우리가 이런 믿음 때문에 의롭다고 선포되는 것으로 생각하면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가 의롭게 되는 근거는 오직 예수님의 사역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에게 믿음이 있으니 구원을 받는다는 생각마저 없이 오직 예수님의 은혜만 의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믿음과 의를 이렇게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을 믿음이라고 할 때 믿음은 단순히 하나님이 주시는 의를 받는 도구일 뿐입니다. 믿음은 의를 만들어주는 의의 근원이 아닙니다. 의는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그 의를 받아들일 뿐입니다.


4. 우리가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은 단번에 일어납니다. 사람은 점점 의롭게 되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더욱 의로운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면 그 말의 의미는 더욱 거룩한 사람이 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거룩해지는 것은 점차적으로 발전합니다. 그러나 의롭게 되는 것은 단번에 완전히 의롭게 인정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이루신 완전한 의를 전가 받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이 얼마나 죄인인 지와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앞에서 살펴본 대로 의인이 되는 것은 의인으로 선포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삶이 얼마나 거룩한 지와는 상관없이 우리는 단번에 완전한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롭다고 선포되는 것은 법정용어입니다. 법정에서 재판관이 무죄라고 선포되면 단번에 무죄가 되는 것이지 점점 죄가 가벼워지다가 무죄가 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단번에 완전히 무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롭다고 선포된 사람은 더 이상 하나님의 진노와 정죄에 빠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 8:1)


5. 그러나 이와 똑 같이 강조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기 전까지는 결코 의롭다고 선포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모든 인류에게 전가될 수 있는 의를 이루셨습니다. 그러나 그 의가 전가되는 방법은 사람이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나의 죄를 대신 지시고 당신의 의를 나에게 전가해주신다는 것을 믿어야만 실제로 그 의가 전가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으로 인해 저절로 의로워지는 게 아닙니다. 혹은 하나님이 창세전에 우리를 선택하셨다고 해서 저절로 의로워지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죄인이었다가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비로소 의로워지는 것입니다.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골 1:21-22)


6. 그렇다면 믿음과 행위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사람이 의롭게 되는 데는 사람의 행위가 전혀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은 강도 중 하나가 잘 보여줍니다. 그는 죄인으로 죽어가면서 새롭게 선행을 한 것은 없지만 죽기 직전에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구원에 이릅니다. 이것은 그가 의롭다고 인정되었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행위가 전혀 없이 의롭게 된다면 예수님 덕분에 의로워져서 구원을 얻은 사람이 선행을 하지 않겠습니까?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치면 사람의 삶이 더 악해지겠습니까? 아닙니다. 믿음으로 의로워지면 선하게 삽니다. 오히려 사람은 회개하고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야 정말 선하게 살 수 있습니다. 선행은 믿음의 열매입니다. 참 믿음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선한 삶을 삽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이 믿음으로 의롭게 되지만 선행 없이 되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은혜만 강조하고 선행을 강조하지 않는다는 말을 가끔 하지만 사실 이것은 옳은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진정한 은혜를 알면 선행은 저절로 나옵니다. 그러니까 진짜 은혜를 강조하는 것은 저절로 선행도 강조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면 무엇을 강조할 때 선행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종교의식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산다는 공로주의를 말할 때 선행이 나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종교의식으로 은혜를 충분히 받으니 더 이상 선행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교인들 중에 교회에서는 온갖 선행을 다하면서도 세상에 나가서는 선행을 하지 않는 사람이 많은 것은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토의문제


1. ‘나’는 죄인입니까, 의인입니까? ‘내’가 죄인이라고 하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내’가 의인이라고 하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2. ‘나’는 죄인이라는 인식을 더 많이 하며 살고 있습니까, 의인이라는 인식을 더 많이 하며 살고 있습니까? 어느 경우에 더 하나님을 사랑하며 더 바르게 살고 더 헌신하게 될까요? 이것을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긍정적으로 생각할 때 더 능력이 나타나는 것과 비교해보십시오.


3. 이런 말이 있습니다. “헌금이 많이 나오게 하려면 교인들의 죄를 자꾸 드러내면 된다.” 이 말은 교인들이 죄책감을 느끼면 보상심리로 헌금을 많이 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나’는 헌금이나 다른 종교행동으로 죄를 용서받으려고 노력한 적이 없습니까?


4. 가톨릭에서는 죄 지은 사람에게 고행을 시킵니다. 이게 죄 용서에 도움이 됩니까? 아닙니다. 하지만 이것이 죄책감에서 해방되어 마음에 평화를 얻는 데는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죄 지은 사람에게 벌을 주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공로주의의 위험은 없을까요?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443 / 1 Page
번호
제목
이름

성경공부


최근글


새댓글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