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과 타락한 인간의 비참한 처지

작성자 정보

  • 오덕호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제19문: 사람이 타락한 지위에서 비참한 것이 무엇입니까?

답: 모든 인종이 타락함을 인하여 하나님과 교제가 끊어지고 또 그의 진노와 저주 아래 있어서 생전에 모든 비참함과 사망과 영원한 지옥 벌을 받은 것입니다.(창 3:8, 24; 엡 2:3; 갈 3:10; 시 90:10; 애 3:39; 롬 6:23; 계 20:12-15)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 내시고 에덴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창 3:24)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 6:23)

1. 19세기에 발달한 자유주의신학에서는 인간이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면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국가들 사이에서 일어난 1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후에 자유주의신학은 크게 약화되었습니다. 사람은 그렇게 선하고 가능성이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삶으로써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할 수 있다는 생각은 사람이 율법을 지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과 같습니다. 둘 다 사람의 힘으로 구원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유주의신학과 율법주의는 같은 원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언뜻 보기에는 자유주의신학은 율법을 무시하고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하려는 것으로 보여 이 둘이 상반되는 것 같지만 실은 이렇게 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가능성을 강조하는 신앙은 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만일 인간이 스스로 구원을 얻을 만큼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면 예수님이 불필요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최고의 기준으로 보고 그 가르침대로 삶으로써 구원을 이루려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그 은혜에 전적으로 의지하여 구원을 얻고 그 후에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2. 왜 인간에게는 가능성이 없습니까?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졌기 때문입니다. 창조 때부터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상상할 수 없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자신의 영광을 위해 살면 안 되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며 하나님께 순종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인간과 친밀한 교제를 가지셨습니다. 영생의 길도 허락해주셨습니다. 창세기 2:9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그런데 하나님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생명나무의 실과를 먹고 영생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타락한 후에 이런 교제가 끊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전도서 3:11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사람이 영원을 사모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이 모든 것을 다 알게 해주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모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며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야 인간은 만족과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하여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졌습니다. 그 결과는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항상 공허하고 답답할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전도서가 잘 보여줍니다.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2) 잠시 즐거운 시간이 있어도 근본적인 허전함을 채울 수는 없습니다. “우매자의 웃음소리는 솥 밑에서 가시나무의 타는 소리 같으니 이것도 헛되니라.”(전 7:6)

3.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진 인간은 이렇게 공허한 삶을 살 뿐 아니라 하나님의 벌을 받아 여러 가지 비참함을 겪게 되었습니다. 여기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생전에 온갖 고통을 겪으며 사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4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이 말씀은 처음 것들의 세상, 즉 지금의 세상에는 애통과 아픔으로 인한 눈물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 세상에 고통이 가득한 것은 누구나 경험하는 일입니다.

고통과 관련하여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는 사람이 경험하는 고통이 남들 생각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외적으로 잘사는 나라에서 오히려 자살률이 높은 것이나 가난한 나라에서 삶의 만족도가 높은 것이 이것을 가르쳐줍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많은 것을 깨달을수록 고통이 커지기도 합니다. 문명의 이기를 경험하기 전에는 그런 것 없이도 큰 불만 없이 살던 사람이 그런 기구를 경험한 후에는 그것이 없으면 불평을 하기도 합니다. 남의 삶을 모를 때는 괜찮다가 남들의 화려한 삶을 알고 나면 불행해집니다.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라고 꼭 행복한 것은 아닌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이 세상에서의 고통이 사람의 선악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악인이 더 편안한 삶을 살 때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고통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불신자에게는 고통이 악에 대한 벌로 주어집니다. 만일 악인이 그 벌 때문에 회개하면 벌이 유익을 위한 징계가 되지만 회개하지 않으면 그것은 저주의 고통일 뿐입니다. 하지만 신자에게는 유익을 위해 고통이 주어집니다. 그러나 이런 고통을 통해서만 유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의 비참한 현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 사람에게는 죽음의 고통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세상에 살아 있는 신자 외에는 모든 사람이 죽습니다. 예수님을 믿은 사람은 나중에 죽음을 극복하고 부활하겠지만 이 죽음의 고통을 겪어야만 합니다. 이 몸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사람들에게 큰 슬픔과 고통을 안겨다줍니다. 이 몸으로는 다시 만날 수도 없고 사랑을 갚을 수도 없고 사랑을 받을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고통을 아셨기에 예수님도 나사로의 무덤에서 우는 사람들을 보고 통분히 여기며 우신 것입니다.

5. 더욱이 사람의 생명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죽음 후에 부활하여 영원히 살며 형벌을 받게 됩니다. 사람이 죽음으로써 무존재가 되어버린다고 해도 큰 고통이겠지만 죽음 이후에 무서운 형벌이 영원히 지속된다는 것은 말할 수 없이 큰 고통입니다. 죄인이 된 인간은 이런 운명에 처한 것입니다. 성경에는 지옥의 고통을 언급한 곳이 많습니다. 특히 예수님이 많이 말씀하셨습니다. 사랑과 용서를 많이 말씀하신 예수님이 이렇게 하신 것은 지옥의 고통을 이해하는 게 신앙생활에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려줍니다.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사람마다 불로서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막 9:47-49)

6. 그러면 신자와 불신자는 이 비참함에 있어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첫째, 신자는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속에 있으며 정죄의 두려움에서 해방되었습니다.(찬송가 210장) 그러나 아직 완전한 교제는 하지 못합니다. 죄와 연약함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신자도 고통을 겪으나 불신자의 고통과 양과 질에서 많이 다릅니다. 신자가 겪는 고통은 유익을 주는 고통이고 하나님이 피할 길도 함께 주시고 또한 이겨내도록 도와주시는 것으로서 결코 필요한 정도를 넘어서지 않습니다. 신자가 겪는 고통은 정죄와 형벌이 아니라 연단과 축복입니다. 다만 이런 축복이 고통을 통해 오는 것은 신자에게도 악한 모습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죽음이 불신자에게는 지옥의 관문이지만 신자에게는 천국의 관문입니다. 그래서 신자에게는 죽음이 어느 정도 이상의 고통이나 위협이 되지 못합니다. 넷째, 전혀 다른 영생을 누리게 됩니다. 불신자는 지옥의 고통 속에 영원히 살며 신자는 천국의 행복 속에 영원히 살게 됩니다.


토의문제

1. ‘내’가 겪은 고통 중에 특별히 괴로웠던 것을 한 가지 말씀해주시겠습니까?

2. 세상에서 사람이 겪는 고통(비참함) 중에 가장 큰 고통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구별하지 말고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3. 세상에서 가장 고통이 적을 것 같은 사람을 찾아보십시오. 그리고 그에게는 어떤 고통이 있을지 생각해보십시오.

4. ‘나’에게 가장 큰 고통을 가져다 줄 죽음은 누구의 죽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5. 지옥의 고통을 이해하는 것이 신앙생활에 몹시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예수님이 지옥에 대해 그렇게 많이 말씀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지옥의 고통을 구체적으로 한번 그려보시겠습니까?

6. ‘나’는 고통을 겪으며 하나님을 원망해본 적이 있습니까? ‘내’가 겪은 고통이 나중에 나에게 유익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적이 있습니까? 경험을 나눠주시기 바랍니다.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443 / 4 Page
번호
제목
이름

성경공부


최근글


새댓글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