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과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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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덕호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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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본문 내용을 이해하기 위한 토의


1. 비유의 배경을 먼저 생각해봅시다.


     가. 앞에 나오는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는 누구에게 주신 말씀입니까?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나. 16:14에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교훈을 듣고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비웃었습니다. 그 이유는 바리새인들이 돈을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다.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는 누구에게 주신 말씀입니까?


바리새인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라. 이 비유를 주신 목적이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은 돈을 사랑하는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재물에 대한 교훈을 듣고 비웃었기 때문에 이 비유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비유를 주신 목적은 돈을 사랑하지 말고 예수님의 교훈처럼 바로 사용하라는 것을 가르치시려는 것입니다.


2. 비유에 나오는 부자의 삶을 표현해보십시오. 이 부자와 또 다른 부자인 욥을 비교해보십시오(욥기 1:3).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부자는 좋은 집(그의 집의 대문이 그 집이 좋은 집이라는 것을 알려줍니다)에서 좋은 옷을 입고 날마다 잔치하며 지냈습니다. 한 마디로 아주 사치스러운 삶을 살았습니다. 이에 비해 욥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소유가 많았던 것입니다. 이 두 사람의 차이는 비유의 부자가 많은 것을 소비하는 삶을 산 데 반해 욥은 많은 재산을 소유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은 소비형태가 부자였고 다른 사람은 소유형태가 부자였습니다.


3. 나사로와 부자를 비교해보십시오.


     가. 현재 상황


나사로는 헐벗고 집이 없고 굶주리고 몸에는 병이 있었습니다. 헌데가 있어 종교적으로 부정한 사람이었습니다. 반면에 부자는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집에서 좋은 음식을 먹었습니다. 건강했고 종교적으로도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는 자격이 있었습니다.


     나. 내세 상황


부자는 지옥의 고통을 겪고 있는데 반해 나사로는 천국의 행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4. 음부와 지옥을 구별해야 할 때도 있으나 여기서는 음부가 지옥을 의미합니다. 왜 부자는 지옥에 간 것 같습니까? 16:25, 28, 29, 30을 참고하십시오.


누가복음 16:25를 보면 부자는 살았을 때 자기의 좋은 것을 다 받았기 때문에 지옥에 갔습니다. 이 말은 자기의 좋은 것을 자기만 누리고 이웃을 사랑하는 데는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옥에 갔다는 뜻입니다.


16:28을 보면 자기 형제들이 고통 받지 않기를 원합니다. 부자는 형제들을 사랑했는데도 지옥에 간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 형제만 사랑하는 것은 참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나와 이해관계가 없지만 어려운 이웃을 사랑하는 게 참 사랑의 모습입니다.


16:29를 보면 부자의 형제들에게는 모세와 선지자가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구약성경)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부자도 성경이 있었을 것입니다. 부자는 성경이 있었는데도 하나님의 뜻을 잘 모르고 바른 신앙생활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16:30은 부자가 죽은 사람이 말해주면 구원의 길을 갔을 것이라고 합니다. 죽은 사람이 와서 가르쳐주는 것의 특징은 기적을 보여주며 가르쳐준다는 것과 특히 내세가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자가 말씀을 배울 때 기적과 능력으로 배웠으면 말씀에 귀를 기울였으리라는 뜻이며 아울러 부자가 내세를 생각하지 않고 현세만 생각하였기 때문에 바른 신앙생활을 하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은 권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내세를 가르치는 것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부자가 이 말로 자기를 정당화할 수는 없습니다. 아브라함의 말처럼 성경으로 믿지 않는 사람은 기적을 봐도 믿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존중하고 믿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아울러 내세에 대한 믿음을 굳건히 하는 게 필요합니다.


5. 25절에서 부자가 자기의 좋은 것을 받은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의미합니까?


이것은 앞에서 부자가 누리던 것들, 즉 좋은 집, 좋은 음식, 좋은 의복 등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좋은 것을 이기적으로 누렸다는 것도 의미합니다. 자기의 좋은 것을 남과 나누었으면 자기 혼자 다 받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6. 30절에서는 부자의 형제들이 회개해야 부자처럼 지옥에 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부자의 형제들이 무엇을 회개해야 합니까?


앞에서 부자가 사치스럽게 살았다는 것을 보면 부자의 형제들도 사치스럽게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자의 형제들은 사치스러운 삶을 회개해야 합니다.


7. 부자의 형제들이 회개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가. 나사로가 살아나서 말하면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을 생각해보십시오.


죽은 자가 살아나서 말하면 신뢰성이 더 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말을 들으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나. 아브라함의 답변을 생각해보십시오.


아브라함은 성경을 보고도 믿지 않는 사람은 죽은 사람이 살아나서 말해도 믿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부자의 형제들이 회개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죽은 자가 살아나는 기적이 아니라 성경말씀입니다.


8. 부자에게 어느 정도의 사랑이 있습니까?


     가. 나사로를 알아본 모습


집 앞에서 구걸하는 이름 없는 거지를 알고 있습니다.


     나. 나사로가 집 앞에 있었고 상에서 떨어진 것을 먹으려고 한 모습


대부분의 사람은 이런 거지를 집 앞에 있게 하지 않고 멀리 쫓아내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부자는 흉한 거지가 문 앞에 있으면서 상에서 떨어지는 것을 먹을 수 있게 해줬습니다.


     다. 형제에 대한 관심


그는 지옥에서 자기 형제들의 구원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라. 나사로를 돌보아준 정도


자기 상에서 떨어진 것을 먹을 수 있게 해준 것만도 거지에게는 적지 않은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 모든 모습은 부자가 아주 냉혈한이 아니라 보통 이상의 사랑은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9. 내세의 운명이 다시 바뀔 수 있습니까?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바뀔 수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 살 때 철저히 내세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10. 부자가 지옥에서 보여주는 태도는 겸손합니까, 교만합니까?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나사로를 자기 집에 보내라고 말하는 것이나(24절), 아브라함의 말에 반대하며 자기가 옳은 것처럼 말하는 모습(30절)을 볼 때 지옥에서도 이 사람은 교만합니다. 아마도 지상에서 부자로 지냈던 것이 이 사람을 교만하게 만들었고 이 자세가 아직도 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11. 부자가 모세와 선지자를 알았을까요? 그렇다면 부자가 지옥에 간 데는 자신의 책임이 가장 큽니다. 또 누가 책임이 있을까요? 누가복음 17:1-2를 참고하십시오.


부자의 형제들이 모세와 선지자를 알고 있는 것과 부자가 아브라함을 ‘아버지’라고 부른 것을 볼 때 부자는 모세와 선지자를 알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옥에 간 것에 대해 자신의 책임이 가장 크고 다음으로는 이 사람에게 성경을 가르쳐야 할 사람의 책임이 클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모습을 바로 다음에 나오는 17:1-2에서 실족케 하는 자의 책임을 말씀하심으로써 알려주십니다. 교사가 잘못 가르치면 배우는 사람을 실족케 하기 때문입니다.



II. 우리 삶에 적용하기 위한 토의


1. ‘나’는 부자입니까? 우리나라 입장에서 볼 때와 인류 전체를 고려할 때 다를 것입니다. 또 나는 소유와 소비에 있어 어느 쪽에 더 부자입니까?


우리사회에서 나는 어떤 입장인지 또 온 세계의 입장에서 나는 어떤 입장인지 생각해보고 우리가 비유 속의 부자처럼 사는 모습은 없는지 찾아보려는 것입니다.


2. ‘내’ 주위에 나사로와 같은 사람이 있습니까?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입니까? ‘내’가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지금 하고 있는 것을 말씀해주실 수 있습니까?


내 주위에서 내가 도울 책임이 있는 사람을 찾아보고 또한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해보려는 것입니다.


3. 진정으로 재물을 바로 사용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사랑의 계명과 내세에 대한 신앙입니다. ‘나’는 내세를 믿습니까? 믿는다면 그 상급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합니까?


내세의 소망이 우리의 삶에 힘을 줍니다. 현세만 바라보면 사랑하는 힘이 약해집니다. 내세의 소망을 생각하며 사랑의 삶을 세워가려는 것입니다.


4. 교회에서 ‘재물의 축복’과 ‘재물의 바른 사용’ 중에 어느 것을 더 많이 가르쳐야 할까요? ‘나’는 어느 말씀을 더 좋아합니까?


물론 둘 다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재물의 축복을 받아야 바르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달란트 비유가 가르치는 것처럼 재물을 늘릴 수 있는데도 게을러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도 큰 잘못입니다. 우리에게는 재물의 축복과 바른 사용의 조화가 필요합니다. 다만 사람에 따라 둘 중에 더 필요한 것이 있을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나의 모습을 정리해보려는 것입니다.


5. “재물의 바른 사용이 사람들을 영적으로 육적으로 구원하는 길입니다.”라는 말을 생각해보십시오. 누구를 구원합니까?


재물을 바르게 사용하면 어려운 이웃이 육적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면 그에게 복음이 잘 전파됩니다. 아울러 재물을 바르게 사용한 사람도 하나님의 뜻대로 사니까 구원의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유적인 구원은 한쪽에 임하고 영적인 구원은 주는 자와 받는 자 양쪽에 임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모습을 서로 나누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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