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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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중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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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선하다가 특례 티오가 없어서 입대해야할 입장이 되었습니다. 그때 고등학교에서 수석으로 다니던 친구가 해군 하사관으로 복무하고 있었는데 그 친구가 내게 육군에서 평범하게 보내지 말고 하사관에 지원하라고 권했습니다. 그래서 월급도 받고, 군에서 직책을 통해 선교도 하자는 마음이 강하게 들어서 혹했습니다. 그래서 기도어머님께 찾아가서 말씀드렸지요. 그런데 어머님은 첫 마디가 하나님이 가라고 하더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장성의 할렐루야 기도원에 3일 금식기도작정하고 찾아갔습니다.

배에서 예수님을 만났기에 이전에 한끼씩 금식기도는 했지만, 3일 금식기도는 처음작정한 것이었고, 기도원도 처음가보는 일이었습니다. 제가 들어간 방에는 약 50여명이 함께 생활했는데 저는 잘 몰라서 출입구에 누울 수 있는 공간을 얻어 가방을 내려놓고 예배도참석하고 기도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이 참 힘들었습니다. 알고보니 출입구에 있는 분들은 기도하러 오신 분들이 아니라, 기도원을 지키는 일종의 경비하는 분들이었습니다. 두 분씩 한 시간씩 경비를 하고 돌아오면 방에서 라면을 끊여서 먹는데, 배고파서 잠을 이룰 수가 없는데 잠깐 잠을 이루려하면 라면 먹는 후루룩 소리에 고통스런 시간을 보냈습니다.

예배가 없는 동안에 잠시 여러사람이 기도하는 공간에 들어갔는데 방언으로 기도하는 소리에도 놀랐지만, 제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기도하면서 뒤를 돌아보는 사람을 보면서 엄청 놀랐습니다. 아무튼지 이틀째에도 힘들어서 기도가 제대로 되지 않더라구요. 마지막 3일째는 엄청나게 눈이 왔습니다. 차가 다니지 않는다는 말도 있자. 불안해졌습니다. 이러다가 기도원에서 하루 이틀 더 있게 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3일째 오전에 일지감치 도로에 나와서 장성까지만이라도 카풀을 시도했습니다. 다행히 장성에 도착했는데 너무 배가 고파서 터미널 근처 중국집에 들어가 짜장면 곱빼기로 먹고, 광주로 왔습니다. 기도어머님는 제가 기도원가자 많이 기도하셨답니다. 그래서 내가 오자마자 하나님의 응답을 질문했고, 저는 하나님께서 해군하사관에 가라했다고 대답했습니다.

서류를 꾸려서 광주엘 2번가서 병무청에 신청서는 냈는데 두 번다 서류의 미비로 빠꾸를 당했습니다. 그래서 3번째 광주에 갈때에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준비를 잘해서 갔는데, 입구에서 하는 말 ‘어제까지 해군하사관 접수 끝났고, 오늘부터는 해병대 하사관 지원입니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기겁을 하고 아니라고 하면서 고향으로 내려왔습니다. 주님께 기도한다던 저의 모습은 기도가 아니었고, 주님께서는 그 길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기도했을 때 예수님께서 들으신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구하기전에 우리에게 있어야할 것을 아시는 분이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중언부언하며, 사람의 눈과 귀를 의식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기도는 반드시 하나님 한 분만 들으시게, 그분만의 응답을 사모하면서 기도해야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청년들이여 오늘 우리가 함께 생각해 보려는 것은 믿음으로 기도해야한다는 진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다면 반드시 믿음으로 기도해야합니다. 우리가 주님께 기도하는 것에서 기도의 모양은 있으나 주님이 보셨을 때 믿음이 없는 기도는 주님은 이러한 기도를 기도가 아닌 것으로 보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기도에 있어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기도는 믿음과 함께 가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주님은 믿음이 없는 기도를 응답하지 않으십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예루살렘으로 가시려는 중에 산에 올라가셔서 변형이 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모든 제자를 데리고 가신 것이 아니셨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3명의 제자만 동해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예수님께서 변화산에 올라가서 기도하는 동안에 밑에는 엄청난 사건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한 아버지가 어린아들을 데리고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은 어릴 때부터 귀신에게 사로잡혀서 불에도 들어가고 물에도 들어가는 연약하고 불쌍한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예수님은 산에 올라가고 계시질 않고 예수님의 9제자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아버지는 그 제자들에게 고쳐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9제자들은 고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주님은 이미 마가복음6장에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셨습니다. 권능을 받고 나갔던 제자들은 나가서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자를 고쳤습니다. 그런데 왜 이 본문에서는 귀신들린 아들을 고치지 못했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제자들이 서로 잘난체하려고 먼저 고치려고 했다는 말을 합니다. 그리고 기도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론적으로 그들은 고치지 못했습니다. 주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셔서 문제를 보시고 말씀하십니다. 19절입니다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거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주님께서는 제자들의 믿음 없음을 책망하셨습니다. 그런데 결론부분에 모든 문제가 수습되고 제자들이 주님께 왜 우리는 고치지 못했느냐고 질문합니다. 그때 주님은 막9:29 [기도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제자들은 분명히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기도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앞부분에서는 믿음이 없었다고 책망하신 주님이 나중에 기도외에 이런 유가 나올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은 두 가지가 아니라 하나의 말씀입니다. 즉 믿음으로 기도하지 않는 기도는 기도가 아니며, 기도를 했을지라도 주님께서 기도가 아니라고 평가할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합니다. 오늘 우리 예배에 참석하는 모든 사람들은 앉아서 주님께 기도를 드렸을 것입니다. 우리마음의 소원을 위해서, 그리고 어떤 문제를 위해서 우리는 기도를 드립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내가 드린 기도가 기도가 아니라고 하신다면 우리의 모습은 얼마나 민망하겠습니까? 제자들은 나름대로 기도했는데 예수님은 그것을 기도가 아니었다고 하셨습니다. 왜입니까? 그것은 그들의 기도에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청년들이여 기도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이며, 하나님께 부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신다는 믿음이 없이 하는 기도가 어찌 기도일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과 무슨 대화를 할 수 있으며, 하나님께 무엇을 부탁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믿음 없이 한 기도는 기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히11장6절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할 지니라 ]
하나님이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며 간구하는 자에게 응답해 주신다는 것을 믿지 않으면 어떻게 기도할 수 있겠습니까? 믿음이 없이는 기도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없이 기도했다면 그것은 기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것을 기대하지 않는 것은 바로 주문이고, 중언부언인 셈입니다. 더욱이 믿음 없이 하는 기도는 하나님이 기도로 인정해 주시지 않기에 하나님이 응답해 주시지 않는 것입니다. 야보고1:6-7“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닷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믿음으로 하는 기도만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믿음으로 하는 기도는 상상할 수 없는 위대한 응답을 받게 됩니다. 막11:23- “...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면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이렇게 믿음의 기도만이 참 기도인 것입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으면 기도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막9:23..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이 말씀은 믿음만이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기도하지 않는 것은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믿으면서 기도하지 않는 것도 거짓말이지만, 기도하면서 믿지 않는 것도 거짓말인 셈입니다.

막2:1-2 중풍병자 지붕을 뚫고 병자를 내림... - 예수님께 부탁하는 모습, 즉 기도하는 모습이 그들에게 믿음이 있다는 증거였다는 것입니다. 눅7:1-10 로마의 백부장이 자기 종을 고쳐 달라고 함. 집에 오실 필요 없이 말씀으로만 고쳐달라고 부탁합니다.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하면서 말씀 한마디로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확신하며 기도한 것이 큰 믿음이었던 것입니다. 믿음은 기도로 나타납니다. 믿으면 기도하게 됩니다. 그런면에서 자기를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닌 것입니다.

마가복음 11장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면서 시장하셔서 무화과나무를 보면서 무언가 과실을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그 무화과나무에는 잎만 무성하지 아무런 열매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으면 그 무화과나무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당연히 말라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 다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데 무화과나무가 말라있음을 보고 베드로가 예수님께 말씀합니다. “예수님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믿으라,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로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않으면 그대로 되리라”

왜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느냐? 주님은 베드로를 책망하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일어나는 수많은 기적과 역사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좋은 일을 우리 가운데 허락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새벽이슬같은 청년들이여 하나님을 믿습니까?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대로 이루어질 줄로 믿습니까? 주님을 신뢰하십시오. 여러분의 인생의 꿈이 크면 클수록 믿음의 기초를 튼튼히 하십시오. 주님이 도와주십니다. 주님을 믿으십시오.

요한복음 11장에는 나사로의 죽음에 대한 기사가 나옵니다. 나사로가 이미 죽은 지 4일이 지난 후에 예수님께서 베다니에 도착했습니다. 무덤에 가까이 가신 예수님은 무덤입구를 막아놓은 돌을 굴려놓으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때 마르다가 대답합니다. “주여 죽은지가 나흘이라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이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으냐”

우리가 주님의 말을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내 이성속에 주님의 말씀을 가두지 마십시오. 주님의 말씀이 때론 내 이성과 상치될 때에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주님은 우리가 믿고 순종하여 행함을 통해서 우리에게 아버지의 영광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볼 때에도 우리의 믿음은 연약하다는 것을 봅니다. 그럴 때는 정직하게 주님께 기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 왔다가 제자들의 능력없는 것 때문에 예수님까지 의심한 아버지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때문에 예수님의 영광을 가려서는 안될 것입니다. 제자 때문에 예수님의 능력까지 의심하게 된 귀신들린 아이의 아버지가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도와주십시오” 말하자.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주님의 책망의 소리에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 지릅니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 아버지의 고백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새벽 이슬같은 청년들이여 누가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 믿음으로 기도하여 응답받아 하나님을 보여주는 사람을 통해서 세상은 변화될 것입니다. 하나님께 왔다가 나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을 의심하게 만드는 약한 사람이 아니라, 나를 통해서 세상이 아버지의 영광을 보게 하십시다. 일점일획의 의심도 던져버리고 100% 철저하게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며 나아가십시다.

다음주일이 지나고, 특별새벽기도회가 시작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 기도하여 응답받고 믿음의 뿌리는 깊이내리는 하나님의 꿈쟁이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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