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말씀을 듣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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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중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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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을 듣고 나서 (행 2:36-41)

아미스타드라는 영화를 본적이 있습니다. 53명의 흑인들을 싣고 쿠바 해안을 떠난 아미스타드호에서의 내용이었는데 그때 노예로 팔려가는 흑인들의 아픔이 얼마나 큰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결국 아마스타드호에서는 선상 반란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그렇게 참혹한 일을 계속 했던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존 뉴톤입니다.

전에 한번 소개드린 적이 있는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존 뉴턴은 찬송가405장을 작사하신 분으로 유명한 목사님입니다. 그런데 그는 어릴 적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배를 타는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자랐습니다. 유모가 길러주는 양육 속에서 바르게 자라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자신의 부모 밑에서 자라나도 삐뚤어지고, 어그러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뉴턴은 장성하면서 계속해서 사고뭉치가 되어버립니다. 그에게는 아무도 친구가 되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독불장군처럼 자신의 고집과 생각만으로 모든 일을 처리하려는 그의 마음에는 언제나 불평과 불만이 가득했습니다.

해군 장교로 군에 입대했는데 군 생활중에도 너무나 망나니 같은 행동을 계속했던지 장교 중위에서 이등병으로 강등 당했습니다. 결국 그는 비참한 인생이 되었습니다. 군 생활을 마치고 그는 당시 선원이 되었습니다. 그는 선원 생활중에서도 너무나 악독해서 노예들을 죽이고 때리고, 악한 행동을 서슴없이 행했습니다.

나중에 그가 노예를 잡아다 팔아먹는 선장이 되었을 때 그의 악한 행동은 극에 달했습니다. 그의 말을 거역하거나 말대꾸를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죽였습니다. 어느 날 배가 영국에 들어와 쉬고 있는데 그 지역교회에서 부흥회가 있다는 전단지가 전주에 붙어있는 것을 보면서, 그의 마음속에는 또 다른 악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짓말쟁이 목사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어 부흥회에 참석한 모든 사람이 흩어지게 하겠다는 생각으로 부흥회의 가장 앞자리에 앉았습니다.

술에 취해서 기회만 노리던 그였는데 그날 성령님은 그의 영혼을 사로잡았습니다. 결국 그는 가슴에 밀려오는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하지 못하고 그 날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즉시 이전의 삶을 회개하고 노예선 선장직을 내려놓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앞에 당시 가장 악당이라고 모든 사람들이 피해 다녔던 그 사람이 새로운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그가 나이가 들어 치매가 찾아왔습니다. 때론 자신의 이름조차도 잊어버렸음에도 그는 두가지 사실은 죽는 날까지 잊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것은 첫째, 자신이 주님을 만나기 전에 가장 악한 사람이라는 사실과, 둘째, 주님을 만나 새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청년들이여, 하나님의 말씀은 여전히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어서 우리의 삶에 놀라운 변화를 주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특정한 사람에게만 변화의 능력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여 살아있고, 운동력있는 역사를 가져다줍니다. 그런 의미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세를 생각해 보아야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매주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조금만 열심을 낸다면 일주일에 여러 번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여러분은 어떤 반응을 하십니까? 말씀이 내 안에 들어가도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어떤 형태로든 문제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난 예루살렘 사람들의 반응에 대한 부분입니다. 성령님이 충만한 베드로가 예수님을 십자가 못 박은 사람들에게 설교합니다. 설교의 내용은 간단합니다. 너희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지 않은가? 그런데 하나님은 그 예수님을 다시 살리셔서 우리의 주님과 메시야가 되게 하셨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님이 바로 우리가 대망했던 메시야다.

예루살렘에 모인 사람들은 베드로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에 찔림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3,000명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사랑하는 청년들이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찔림이 생깁니까? 말씀대로 살지 못함에 대한 아픔을 느낍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있으면서 설교를 들을 때 찔림이 없다면 왜 그렇습니까? 아마 이유가 있다면 설교자가 성의 없이 준비한 말씀이거나 설교를 듣는 우리의 귀가 막혀서 말씀을 바르게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설교자가 설교를 제대로 준비했음에도 말씀가운데 아무런 반응이나 내 안에 변화가 없다면 무엇이 문제겠습니까? 혹시 말씀을 듣는 우리 자신의 교만은 아닐까요?

우리 가운데 이렇게 생각하고 계시는 분이 있습니까? “나는 완벽하기 때문에 설교를 들어도 찔림이 없다” 만일 그런 분이 계시다면 그것은 엄청난 교만입니다. 우리는 죄인입니다. 예수님을 믿었음에도 우리는 계속해서 범죄할 가능성 속에 놓여있고, 또 범죄합니다. 저는 목사입니다만 자주 넘어집니다. 죄송하고 부끄럽습니다. 그 부끄러움 때문에 이 강단에서 설 자격이 없다고 얼마나 자주 갈등하는지 모릅니다. 저는 범죄에 대해서 국가대표선수입니다. 그렇기에 늘 마음에 찔림으로 인해서 숨이 막힙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무엇이 더 큽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말씀을 전하는 설교자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또 한 가지 질문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에 은혜를 받습니까? 하나님의 말씀 자체입니까? 아니면 말씀을 전하는 설교자 때문입니까? 후자의 질문에도 하나님말씀 자체라고 대답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너무나 쉽게 말씀을 판단하고, 설교를 판단하는 실수를 합니까?

오늘 본문에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은 마음에 찔림을 받고 회개하고 세례 받았습니다. 우리도 말씀을 듣고 회개해야 합니다. 이미 세례를 받은 사람이라면 다시 세례를 받을 필요는 없겠지만, 이제는 그릇된 삶을 고쳐야 합니다. 그것도 신속하게 고쳐야 합니다. 우리가 말씀에 찔림을 받고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면 변화된 우리의 삶을 통해서 세상은 변화될 것입니다. 사실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것은 내 자신의 변화로부터 출발되어야 옳은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사람들이 회개한 것이 베드로가 성령님으로 충만하게 설교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으로 충만한 설교를 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회개한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으로 충만하게 설교를 하여도 말씀을 받는 사람들이 바르게 반응하지 않으면 도리어 더큰 악을 행하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7장은 스테반의 설교가 나옵니다. 스테반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 유다사람들의 시기심 때문에 붙잡혔을 때 왔고, 7장에서 스테반은 성령님이 충만하여 설교하였습니다. 만일 성령으로 충만하게 설교했을 때 모든 사람들이 회개했다면 이때로 유다사람들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줄 아십니까? 말씀을 듣었던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은 게 아니라 오히려 스데반을 돌로 쳐 죽였습니다. 말씀을 듣고 이를 갈며, 성 밖으로 내쳐 결국 돌로 쳐 죽이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 스테반의 사건을 통해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싶어하는 것은 말씀을 들은 사람의 책임입니다. 성령님의 충만하심속에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구원을 얻지 못하는 것은 그 사람의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수없이 우리에게 말씀을 주십니다. 우리가 조금만 마음을 쓴다면 TV나 인터넷을 통해서 유수한 설교자의 설교를 많이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말씀에 찔림을 받고, 회개하지 않고 도리어 하나님의 뜻과 상반된 삶을 살아간다면 그 책임은 바로 우리 자신에게 있는 것입니다.

사실 여러분 본문을 보십시오.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도 마음이 찔렸습니다. 물론 스데반의 설교를 들은 사람도 마음이 찔렸습니다. 둘 다 설교를 듣고 마음이 찔렸는데 한쪽 사람은 회개하며 구원의 복음을 받아들였고 한쪽 사람은 증오로 이를 갈며 말씀 전한 사람을 죽인 것입니다.

1995년 6월에 말, 저는 아내와 팔라우로 단기선교를 가기위해 서울로 갔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많은 앰브런스가 다니더라구요. 다음날 알았지만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습니다. 501명이 사망한 엄청난 대형사고 뒤에는 크리스찬 회장과 사장이 있었습니다. 당시 사장이던 이한상(53세)집사는 11년이 지난 지금 악몽과 같은 실패를 딛고 일어나 몽골 선교사로 사역하고 있습니다. 사고 이전에 교회에 출석도 했고, 예배도 드렸고, 설교도 많이 들었지만 그 삶에 찔림이 없었고, 결국 변화없는 형식적인 크리스챤에 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교도소에서 낮에는 철공장에서 일하고 저녁에는 성경공부와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과 깊은 교제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안에서 만난 하나님 말씀은 그의 삶을 변화의 삶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회자합니다. “교도소에서 난로없이 겨울을 보냈던 것이 추운 몽골에서 쉽게 적응할 수 있는 훈련이 되었고, 헐벗고 못 먹었던 시간은 그들을 이해하고 함께 나눌 수 있는 기초가 되었다”고...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다 말씀앞에 무릎을 꿇고 그 변화된 삶으로 세상을 승리했습니다. 사랑하는 그대, 새벽이슬같은 청년이여, 하나님의 꿈쟁이들이여, 오늘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의 심장을 두드릴 때 문을 열고 변화를 받아 새로운 삶을 살아가십시오. 그리고 세상을 변화시키십시오. 오늘도 살아있고 운동력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동일하게 우리 영혼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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