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설교

처음사랑 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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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중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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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약한 믿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사사가 된 기드온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체험하면서 점점 믿음이 좋아집니다. 그리고 결국은 300명의 용사를 이끌고 나가서 미디안군사 13만5천을 물리칩니다.

하나님은 약한 자같이 보이는 사람도 능히 큰 용사로 사용할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기드온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려고 하시는 메시지 세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생각해 보려는 것은 자신을 과소평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하려고 주님의 부르심을 받으면 일단 못한다는 말을 먼저 하는 사람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겸손한 태도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나에게 일을 시키실 때 우리 힘으로 한 적이 있었습니까? 결국은 다 주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리에게 일을 주신 분이 그 일을 이루신다면 우리가 못한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내 힘으로 할 수 없다는 표현이 됩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일을 내 힘으로 하겠다는 교만함이 되기도하고, 내 힘으로 할 수 없기에 내가 포기해 버리는 실수를 범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우리는 자신을 과소평가하지 말아야합니다. 내안에는 주님이 계심을 잊지 마십시오.

자신이 연약할 지라도, 나를 통해서 주님께서 일하시기에 내가 순종하겠습니다 하고 자신을 드리면 주님께서는 놀라운 역사를 이루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펴본 사사들 중에 자신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해 낸 사람이 있었습니까? 첫 번째 사사였던 옷니엘은 구산리사다임과 싸우기 전에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임하셨기에 결국은 승리했습니다. 두 번째 사사였던 에훗 역시 왼손잡이로 오른손을 사용하지 못하는 장애를 가졌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용하시겠다고 하자 자신을 드렸고, 결국은 모압왕 에글론을 이기고 이스라엘을 구원해 내었지 않았습니까?

세 번째 사사는 삼갈입니다. 그는 소모는 막대기로 불레셋 군인 600명을 쳐 죽였습니다. 소모는 막개기가 무슨 광선총입니까?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불레셋의 군대 600명을 물리칠 수 있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부르시자 순종함으로 자신을 드리자 그런 역사를 경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네 번째 사사는 여자 드보라였습니다. 여성의 존재 자체를 의심스럽게 생각하던 시절에 그가 하나님의 역사에 순종함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해 내었습니다. 다섯 번째 사사인 오늘의 본문 기드온은 어떠했습니까? 얼마나 겁쟁이였습니까? 얼마나 우유부단했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 순종하며 나갔습니다.

13만5천의 미디안 군대를 물리치려고 모인 군대가 3만2천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두려워 떠는 자를 보내라고 해서 1만만 남게 되고, 결국 300명을 데리고 13만5천의 군대와 싸우라고 합니다. 이것이 가능하겠습니까? 그런데 기드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즉 기드온은 이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힘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기에 자신을 과소평가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내가 가진 것을 과소평가하지 마십시오.

내가 왼손잡이든, 소모는 막대기를 가졌든, 여성이든, 적은 군대와 같은 소유든 그것이 주님께 붙들리기만 하면 놀라운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우리가 내 안의 계신 주님을 과소평가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반응은 어떠해야겠습니까?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달란트나, 재능이나 교육이나, 힘을 주님영광위해 드리는 것입니다.

5병2어의 기적을 보십시오. 그 작은 아이가 주님께 자신의 것을 드렸을 때 놀라운 역사가 나타났지 않습니까? 내가 가진 것이 아무리 작아도 주님 손에 붙들리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재능이 아무리 부족하게 보여도 주님 손에 붙들리면 놀라운 권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뭘 좀 하려고하면 못한다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가 언제 우리 힘으로 했습니까? 다 주님 힘으로 했지요. 5병2어 기적의 주인공처럼 주님앞에서 주님! 제가 가진 것이 이것뿐입니다만 제 것을 드리겠습니다. 하고 우리도 그렇게 쓰임 받읍시다. 완도 작은 시골에서 태어나 보잘것없는 제가 목사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을 주님께 드리기만 하면 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두 번째 생각하려는 것은 내공을 키우라는 것입니다. 기드온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이스라엘 사람들을 부를 때 이스라엘 12지파 모두를 부른 것이 아니라 그 중에 므낫세, 아셀, 스불론, 납달리 지파를 불렀습니다. 그래서 이 몇 지파만이 기드온과 함께 미디안 사람과 싸웠습니다.

나중에 이 싸움에서 이긴 후 기드온은 에브라임 지파를 불러서 요단강 나루턱을 미리 점령하고 미디안 사람들을 죽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이 나루턱을 지키고 미디안 사람들을 치다가 미디안의 지도자 오렙과 스엡을 죽입니다.

이렇게 적군을 크게 친 후에 에브라임 지파가 왜 처음에 싸우러 갈 때 자기들을 부르지 않았느냐고 하며 기드온에게 항의합니다. 애써 미디안 군대를 무찌른 기드온이 조금만 다르게 생각하면 분노가 치쏟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미디안에게 짖눌려 살 때 아무런 힘도 써 보지 못한 에브라임 사람들 아닙니까? 이제 미디안 군대를 무찌르고 나니 자신들의 공로를 인정해 달라는 에브라임 사람들의 교만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때 기드온은 아주 겸손한 자세로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의 분노를 누그러뜨립니다. 기드온은 에브라임의 끝물 포도가 자기 가문인 아비에셀의 맏물 포도보다 낫다고 합니다. 이것은 에브라임 사람들이 기드온 지파보다 훨씬 낫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에브라임 사람들은 미디안의 귀족인 오렙과 스엡을 죽였으니 훨씬 더 공로가 크다고 칭찬합니다.

그래서 에브라임 사람들이 화를 풀고 돌아갑니다. 이렇게 해서 기드온은 같은 나라의 분쟁을 막은 것입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기드온과 그 족속의 공로가 훨씬 더 큽니다. 그러나 그런 전과를 올리지 못해 화를 내며 항의하는 에브라임 사람들을 높여주고 칭찬함으로써 그들의 화를 풀어주고 나라를 화목하게 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다 각각 자기 자랑을 하면 다툼이 일어납니다. 다 자기가 높아지려고 하면 싸움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서로 높아지고 싶으니 싸워서 이기는 방법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한 사람이 높아지려고 할 때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을 높여주고 자기는 겸손히 낮아지면 싸움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기드온은 에브라임 사람들이 공을 세우지 못해 섭섭해 할 때 그들을 높여주고 자기는 낮아짐으로써 화평을 이룬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드온은 어떻게 자신을 낮추고 겸손해 질 수 있겠습니까? 무엇보다도 겸손할 수 있었던 것은 기드온 자신의 힘으로 전쟁에서 승리하지 않았고, 오지 하나님의 은혜로 미디안을 이길 수 있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즉 나의 모든 성공과 모든 직책과 모든 이김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보는 사람이 겸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겼다고 여긴다면 전쟁의 승리에 대해 자기가 자랑할 게 없지요. 겸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에브라임 앞에서도 자기를 높이지 않은 것입니다. 겸손의 비결은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모든 것이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러면 교만해지지 않습니다. 서로 높아지려고 다툴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청년여러분이여!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임을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건강도, 여러분의 학식도, 지혜와, 승리도.......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모든 것이 은혜라고 고백한다면 다른 사람 앞에서 교만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가진 직분이 하나님의 은혜라면 직분이 낮은 사람에게 함부로 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가진 돈이 하나님의 은혜로 믿는다면 돈 없는 사람을 무시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가진 건강이 하나님의 은혜로 믿는다면 건강한 몸으로 약한 자를 괴롭힐 수 있겠습니까?

때론 에브라임 사람들처럼 뒷북치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애써서 수고 다 해 놓으니 자신이 영광을 가로채려고 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에도 겸손할 수 있어야합니다. 그러면 공동체가 살고, 가정이 살고, 민족이 사는 것입니다. 서로가 잘났다고 하는 세상입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상대방의 흠집을 찾아서 박살내려는 시대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은 그런 사람에게도 온유하고 겸손하게 대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내공을 키워야합니다. 주님의 은혜의 강에 흠뻑 젖어야합니다.

세상을 변화시킬 하나님의 꿈쟁이들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하나님만 높이는 사람입니다. 우리도 기드온처럼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깨닫고 겸손히 이웃과 다투지 말고 화목하기를 바랍니다.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항상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는 자세를 가지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생각하려는 것은 처음 사랑을 끝까지 지키라는 것입니다. 기드온은 에브라임의 교만한 대적속에서도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겸손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실패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서 금을 받아 에봇을 만든 것입니다. 사사기 8장 24-27절에 나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대적은 이스마엘 사람들이고 그들은 금귀고리를 달고 다녔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전리품으로 많은 금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전쟁을 이끈 기드온이 백성에게 금을 달라고 하니까 백성은 쉽게 줬습니다. 그 금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17,000세겔인데 이것은 대략 240Kg정도 됩니다. 지금 돈의 가치로 약 70억원 정도 되는 돈입니다.

기드온은 이것으로 에봇을 만들었습니다. 에봇은 일종의 제사장의 옷인데 여기서 기드온이 만든 것은 특별한 것으로서 하나님의 현존을 상징하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기드온은 이것을 자기가 거하는 마을인 오브라에 두었는데 결국 이것이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을 바로 섬기지 못하고 우상숭배 하듯이 섬기게 하는 올무가 되어 기드온과 이스라엘에 큰 해를 입히게 되었습니다.

에봇을 만든 것이 무엇이 문제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현존을 물건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든 하나님의 현존을 상징하는 물건을 만들게 되면 그것이 우상화될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상징하는 물건이 바로 우상입니다. 우상은 꼭 다른 신의 형상만이 우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형상으로 만들어도 우상입니다. 하나님을 형상으로 만들면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두려움 속에 섬기지 않고 보이는 하나님의 형상을 섬깁니다.

에봇을 만들어 그것이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생각하면 사람들이 어떻게 하겠습니까? 에봇에게만 잘하면 복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에봇 앞에서 춤추고 음란한 행동을 하며 이상하게 섬깁니다. 그리고 에봇이 있으면 하나님이 보신다고 생각하고 에봇이 없으면 하나님이 보시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른 곳에서는 바른 신앙생활을 하지 않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세가 아닙니다. 이것은 미신적인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부르신 주님의 사랑을 끝까지 지켜나가야 하겠습니다.
내안에 보배로우신 주님을 생각하며 내 자신이 내 자신을 과소평가하지 맙시다.
나의 나됨을 하나님의 은혜로 알고 겸손하게 주님만 높여드립시다.
하나님이 아닌 어떤 형상을 만들지도 말고, 미신적으로 섬기지 말아야겠습니다.

추석명절입니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 하나님의 자녀답게 믿음으로 살아가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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