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그 이름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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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중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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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4:5-12 유일한 그 이름 예수

베드로와 요한은 성전 미문에서 하지지체장애인을 고쳐준 후에 사람들이 모여들자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 기적이 일어났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세상을 구원하시는 주님이라고 그곳에 모여든 사람들에게 가르쳤습니다. 수없이 많은 사람이 이 기적적인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4절에 보면 5천명이나 되는 남자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기록합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나 종교지도자들은 정반대로 사도들을 붙잡아 옥에 가두고 심문했습니다.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입니까? 한쪽에서는 기적적인 사건으로 놀라 걷기도하며, 뛰기도하며 찬양하는가 하면 한쪽에서는 이 일을 보고 감옥에 가두고, 박해했습니다.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선한 일 위대한 일을 행했음에도 협박하고 누르고 박해하는 일을 우리가 만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위해서 바른 일을 행했어도 왕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일을 경험하지 않으셨습니까? 선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음에도 도리어 욕을 먹거나, 오해를 받는 일 말입니다. 이러한 세상 속에 살아가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님께서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크리스찬들에게 무엇을 요구하실까요? 그것은 세상과 구별된 삶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사도행전의 주제성구는 사도행전1:8절입니다. “오직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너희가 성령을 받았느냐? 그러면 너희는 능력을 받았다. 이것이 사도행전의 아니 크리스챤의 대 전제입니다. 여러분 성령님을 받으셨습니까? 그렇다면 능력을 받으셨음을 의심치 마시기 바랍니다. 능력을 받으셨습니까? 그러면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는 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1:20“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것이 우리 삶의 첫 번째 이유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뜻만 이루어진다면 우리의 실패도, 죽음도 다 성공인 것입니다. 아멘입니까?

오늘 본문은 종교지도자들의 협박을 보십시오. 7-“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왜 잘 살고 있는데 풍파를 일으키느냐? 요란케 하느냐? 불안케 하느냐? 선한 일을 행한 우리를 협박하는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은 오직 “빛”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빛의 모습을 보라. 행26:24-25입니다. “24-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내어 이르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하니, 25-바울이 이르되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라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나이다”
28-29까지도 읽겠습니다. “28-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29-바울이 이르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하니라” 이것이 신자된 우리의 삶의 이유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무기는 오직 이것뿐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무기는 그리스도안에서 나의 나됨(빛됨)을 키지는 것입니다. 세상의 것으로 세상을 이길 수 없습니다. 마26:52“이제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세상을 향해 주먹 쥐고 분노하고 이를 가는 것이 우리의 몫이 아닙니다. 진정한 빛 됨은 스데반처럼 용서하는 삶이어야합니다. 스데반과 같은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되어야합니다. 용서와 사랑이 진정한 크리스챤이 아닙니까?

왜 세상이 크리스챤을 위협하겠습니까? 억지로 술을 먹이려하고, 싫다는 것을 시키려하겠습니까? 단 하나의 이유가 있다면 ‘그리스도 예수를 놓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포기하고 나처럼 살라는 것입니다. 너 혼자 거룩하지 말고 나처럼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속아서는 안됩니다. 그들과 싸워서는 안됩니다. 주님처럼 품고 사랑하고 빛 됨을 비춰 주어야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재미있는 한 가지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제자들을 옥에 가두고 협박하는 종교지도자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하체 장애인이 일어난 사실(기적)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게 보입니다. 어떻게 이러한 역사가 나타났는지 그들을 질문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놀라운 기적이고,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했음을 묻지 않습니다. 오직 그들의 관심은 그들 자신에게 있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누구의 이름으로, 누구의 권세로 이 일을 했느냐만 질문합니다. 이러한 일을 저는 너무 자주 봅니다. 그래서 슬픕니다. 종교지도자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이것이 주님의 뜻이냐 아니냐를 묻지 않습니다. 기도하지 않습니다. 찾지 않습니다. 이것이 전통에 맞지 않는다. 분위기에 맞지 않는다. 정서에 맞지 않는다. 우리교회에 어울리지 않는다. 내 나이에 맞지 않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뜻을 구하고 찾으려기보다 내 뜻, 내 생각, 내 체질, 내 시간, 나나나나나.......... 교회 피아노 옮겼다가 쫓겨난 목사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드럼하나 놓았다가 사임하라는 말을 듣는 사역자의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일어난 사건들을 보십시오. 대부분 비 본질적인 것에 매여 평생을 허비하지 않습니까? 다 시시한일 아닙니까? 길이 없는 인생들을 보십시오. 한평생동안 중요한 일은 아무것도 못하고 중요하지 않은 일에 인생을 허비하고 보냅니다. 시시한 일에 목숨을 거는 인생을 보십시오. 예)세족식 누가 하는가? 예전에 암흑시대라고 부르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종교지도자들이 뭘하느라 시간을 보냈는지 아십니까? 예) 성수에 파리가 빠지면 성수가 더렵혀지는가? 파리가 거룩해지는가?

가끔 예수님을 부인 할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어 고민하는 지성인을 봅니다. 믿자니 자신을 포기해야하고, 안 믿자니 불안합니다. 그러니 양심이 소리 지릅니다. 자신의 지식이 자신의 올무가 되는 줄을 모르고 있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안타깝습니다.

이 비본질적인 것에 붙잡혀있는 사람에게 베드로는 본질적인 답변을 합니다. 누구의 이름, 누구의 권세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일하셨고, 이 사람은 고침을 받았고 구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청년들이여 본질적인 것에 초첨을 맞추고 살아갑시다. 하나님이 하신 일에 초첨을 맞추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에 초점을 맞추며 살아갑시다.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면 모든 일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게 됩니다. 3장에 이 일을 시작할 때의 모습을 보십시오. 사도행전3:11-16

사랑하는 청년들이여 결국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여기에 우리의 인생을 거는 것입니다. 파스칼은 인생을 내기와 같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고,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을 것인지? 아니면 내가 내 자신의 주인이 되어 내 맘대로 살아갈 것인지 양자택일을 하나는 것입니다.

세상은 구원의 길이 여러 갈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돈이/명예가/사랑이/건강이/지식이/권세가/ 그러나 그러한 것이 우리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로 난자이시며 죄가 없으신 분만이 사람의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법입니다.

천지창조이래로 인간은 계속해서 유혹을 받아왔습니다. ‘이 선악과 먹으면 너도 신이 된다’. 네가 돈을 얼마큼 가지면 네 맘대로 할 수 있다. 네가 권력을 가지면 네가 하고 싶은대로 할 수 있다. 네가 뭘 가지면 됩니다. 신은 없다. 바로 네 자신이 신이 되면 된다.

다른 것으로는 안됩니다. 현대과학으로도 안됩니다. 합리적인 이성의 힘으로도 안됩니다. 우리의 구원은 절대적 이어야합니다. 예수님의 구원은 절대적인 구원입니다. 상대적인 구원이어서는 안됩니다. 앞으로 이것과의 싸움이 될 것입니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물결이 거친 파도처럼 교회를 유혹해옵니다. 이것을 뚫고 나가는 강인한 믿음의 사람이 필요합니다.

이사야45:20-22“20-열방중에서 피난한 자들아 너희는 모여 오라 함께 가까이 나아오라 나무 우상을 가지고 다니며 구원하지 못하는 신에게 기도하는 자들은 무지한 자들이니라, 21-너희는 알리며 진술하며 또 함께 의논하여 보라 이 일을 예부터 듣게 한 자가 누구나 이전부터 그것을 알게 한 자가 누구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나니 나는 공의를 행하며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22-땅의 모든 끝이여 내게로 돌이켜 구원을 받으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

이제 우리의 눈을 들어 구원을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보십시오. 그분께 인생을 거십시오. 그분을 위해 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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