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설교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한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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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중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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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한 사람들 (사사기 17장 1-13절)

사사기의 삶은 눈에 보이던 것에 매료되어 하나님앞에 철저하게 실패한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430년동안 애굽에서 종노릇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도착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전쟁을 통해서 가나안 7부족을 이겨내고 드디어 정착합니다.

이전에 유목민으로 생활하던 때는 이리저리 옮겨 다니다가 텐트를 치면서 생활했습니다. 그 생활이 얼마나 불편하고 힘들었겠습니까? 우리가 단기선교를 가거나 여름에 캠프를 가서 몇 일을 보내는 것은 그나마 견딜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삶이 평생이라고 생각해보십시오. 쉽지 않은 삶이고 그야말로 나그네 생활입니다. 그런 삶에서 가나안땅은 정착을 하게 됩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이겠습니까? 이제는 더 이상 풀을 따라 텐트를 풀어헤치거나 한달에도 수 없이 이사했던 번거로움이 없어졌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집을 짓고, 한 곳에서 정착하며 생활합니다. 그들이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께 찬양하고 예배드리고 감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계속해서 살펴보았듯이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잘살아보려는 욕심 때문에 우상을 숭배하고 타락하여 처절한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그렇게 암울하고 어두웠던 사사시대의 사사들의 활동은 삼손을 마지막으로 그 막을 내리게 됩니다.

오늘의 본문은 당시 시대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또 다른 부분입니다. 이 시대를 한마디로 말한다면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던 시대”라고 특징지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 오늘의 본문입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부패했던 시대상황을 돌아보며,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삶이 정착되고, 직장이 안정되고, 내가 원하는 것을 얻게 되면 신앙생활을 더 잘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이론적으로는 맞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사사기 시대의 사람들처럼 세상을 섬기고 처절한 실패를 호소함을 보아왔습니다. 그런 면에서 신앙생활은 언제나 현재형이어야 합니다. 오늘 내가 주님과 동행해야하고, 오늘 주님께 순종해야하고, 오늘 주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오늘 주님과 동행하지 못하면서 뭔가를 성취하면 이룰 수 있다는 것은 또 다른 교만이고 착각입니다.
사랑하는 새벽이슬같은 청년들이여! 주님이 허락하신 오늘 주님을 최고로 기쁘시게하는 믿음의 현재형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사건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에브라임에 미가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본문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미가의 어머니가 엄청난 부자라는 사실입니다. 미가는 어머니 몰래 은 1.100냥을 훔쳤습니다. 당시 제사장 1년 월급이 은10냥에 옷 한 벌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은 1.100냥이면 제사장의 110년분의 월급입니다. 한 달에 100만원만 받는다고 계산해도 1년에 1200만원, 110년을 곱하면 13억 2천만원 정도입니다. 아주 큰 돈인데, 미가는 어머니 몰래 훔쳐서 도망을 쳤습니다.

미가의 어머니는 돈이 없어진 것을 알고 입에 담을 수 없는 온갖 저주를 다 퍼부었던 모양입니다. 그 저주가 심했던지 아니면 양심의 가책 때문인지를 알 수 없으나 그 돈을 어머니께로 도로 갖다 주었습니다. 조금 전에 저주를 퍼 부었던 어머니는 금세 입이 벌어지면서 아들에게 “네가 복 받기를 원하노라”고 하며 조금 전과는 다른 태도를 보입니다.

문제는 이야기가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어머니는 돈 찾은 것이 너무나 기뻤던지 은200냥을 주어서 커다란 신상을 만들게 됩니다. 당시 제사장 연봉이 은10냥이었으니 은 200냥은 2억4천만원 상당입니다. 미가의 어머니는 이렇게 큰 돈을 들여 거대한 신상을 만들었습니다.

이어서 5절에는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어 제사장을 세웁니다. 에봇은 제사장이 입은 옷이고 드라빔은 당시 가나안 지방에 있던 우상입니다. 그러니까 개인제단을 만들고 하나의 종파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아들중의 한 사람을 제사장으로 세웠습니다. 기가막힌 일입니다. 자신의 아들을 제사장으로 세운 것이 마음에 걸렸던지 7-13절까지 보면 거할 곳이 없어 방황하는 레위인 한사람을 세워 이 종파의 제사장으로 세웁니다. 처음에는 돈 훔쳐갔다가 되돌려 준 것이 너무 고마워서 “신상 하나 만들자. 신상하나 만든 김에 네가 제사장 해라.” 이런 식으로 하다가 하나의 종파가 태어난 것입니다.

그렇게 하고서 미가가 했던 고백을 보십시오. 13절입니다. “레위인이 내 제사장이 되었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 정말 기막힌 일입니다. 종교의 껍데기만 만들어진 시대임을 봅니다. 레위인이 있기에 복을 주시는 하나님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어떻게 진정한 신앙이겠습니까? 그들이 신앙으로 그렇게 껍데기만 남았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부흥을 경험할 수 있겠습니까?

어찌되었던 간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아마 2억 4천만원으로 만든 큰 신상에 많은 사람들이 뿅간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외형적인 것에 너무 매여 살아갑니다. 중요한 것은 진리이고 열매인데 말입니다. 구원파 광주교회가 100억짜리 건물을 지었습니다. 사람들은 큰 건물이 좋다며 그리고 갑니다. 구원파 박옥수가 광주에서 집회를 하면 공짜로 책을 나누어주며 염주체육관에서 해야 사람들이 모입니다. 결국 미가는 졸지에 이단종파의 교주가 되어버립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신앙의 변질이 가져오는 시대상을 바로 봐야합니다. 요즘 팽배해진 이단들을 보십시오. 우리가 지난주에 이단에 대해서 세미나를 했습니다만 바른 신앙을 확실히 간직하지 못하면 우리는 너무나 쉽게 이단의 유혹에 넘어갈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사랑하는 청년들이여! 하나님의 백성이 이렇게 변질되어가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첫째는 돈 숭배입니다. 미가의 어머니를 보십시오. 그의 관심사는 오직 돈 밖에 없었습니다. 오직 물질의 복을 받는 것 밖에는 알려고 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돈 때문에 저주하고 돈 때문에 축복합니다. 돈이 모든 것의 기준이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뜻이나 하나님의 관심 따위는 전혀 의미를 갖지 못했습니다. 오직 돈만 있으면 된다는 팽배한 사고방식이 당시의 시대적인 분위기였습니다. 우리주님께서는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씀 하셨고”, “탐심은 우상숭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절대로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재물을 섬기면서 하나님으로 하나님되시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상이기 때문입니다. 사사기의 실패의 모습은 오늘을 살아가는 동일한 모습으로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돈이면 뭐든지 하겠다는 것이 오늘의 풍조 아닙니까? 돈이라면 자신의 딸보다 어린 소녀에게 윤락을 강요하는 시대, 원조교제가 좋은 아르바이트라고 생각하는 시대, 보험금을 얻으려고 자신의 손과 발목을 잘라 버리는 시대가 오늘의 시대입니다. 오늘 우리는 돈 앞에 무릎을 꿇어버립니다. 마치 바알과 아세라 신상 앞에서 쩔쩔매던 엘리야 시대의 이스라엘백성과 동일합니다. 이런 시대는 물질에 대한 시험이 강합니다.

우리가 물질에 약함을 알고 있기에 사탄은 물질로 우리를 공격합니다. 사탄은 교묘하게 우리가 가장 약한 부분을 철저하게 파고들어 우리의 영혼을 파괴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물질에 대해서 철저한 신앙고백을 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십일조는 아무리 강조해도 과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크리스챤으로서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내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라”는 표시입니다. 그런 의미로 십일조를 드리지 않은 것은 단순히 물질을 드리지 않음을 넘어서 하나님의 것을 내 것으로 고집하는 신앙의 부족함입니다. 우리 청년의 때에 십일조에 대한 바른 신앙고백을 가져야합니다. 지금 내가 작은 것부터 하나님의 것을 구별할 수 있어야 큰 재물이 생겨도 하나님의 은혜로 생겼음을 고백할 수 있고, 십일조도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요즘 수없이 많은 크리스챤의 옷을 입은 사람들이 돈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고 있음을 봅니다. 돈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하겠다고 합니다. 여러분의 가슴과 생각에 자리잡고 있어야할 것은 돈이 아니라 십자가임을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심장에 십자가를 세우십시오.

한 가지 더 생각해보려는 것은 기복신앙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신앙고백에는 내가 하나님을 다스릴 수 없기에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며 살아야겠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기복신앙은 하나님을 나에게 복주는 도깨비 방망이나 요술램프쯤으로 생각합니다. 이런 신앙은 하나님은 나에게 복을 주는 도구로 전락됩니다.

요즘의 많은 사람들이 신앙을 자신의 일신영달을 위한 도구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장사를 하시는 사람중에는 성도가 많이 모이는 곳에 등록을 하고, 물질을 더 얻기 위해서 신앙을 팔기도하고 사기도합니다. 하나님을 복을 주는 도구쯤으로 생각하는데 예수님의 좋은 군사로 함께 고난을 받는 것은 생각조차 하질 않습니다. 자신의 삶을 헌신하지 않고 하나님의 복만을 기대하는 것은 철저한 기복신앙입니다. 기복신앙을 소유한사람에게서 주님을 위한 고난이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주님께서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 예비한 고난이나 훈련을 받아들이질 못합니다. 이러한 세대에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 받기를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사랑하는 새벽이슬같은 청년들이여 이단들은 천국의 보증수표를 따려고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 거짓교훈을 신봉합니다. 우리는 그렇게는 못할지라도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주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를 기뻐하는 신앙으로 세워져야할 것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복은 하나님의 일을 더 많이 하는 것 아닙니까? 마25장 달란트비유에서 2&5달란트 남긴 종에게 착하고 충성된 종에게 더 큰일을 맡기시겠다고 말씀하셨잖습니까? 우리가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인정을 받는 것은 주님의 큰 일을 맡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을 생각하면서 로마서 1:23절이 생각이 납니다.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의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우리는 이러한 삶의 모습이 있는지 살펴보아야합니다. 더불어 우리도 각기 하나님을 떠나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고 있지는 않는지 우리 자신을 하나님앞에서 깊이 돌아보아야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는 날마다 자신을 쳐서 하나님의 뜻에 복종시키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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