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

작성자 정보

  • 김중곤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것이 있다면 죽음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전제가 있다면 사람은 죽는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조상들도 죽었고, 나도 죽을 것이며, 나의 자녀들도 죽을 것입니다. 결국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사실입니다. 다 죽음을 경험할 것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으나 죽음이라는 단어가 그리 반가운 일만은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도 우리 스스로가 직면할 죽음앞에서 그 죽음을 부인하고 싶은 것이 사실입니다.

평생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며 살아온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볼테르라는 철학자입니다. 그는 성경에 기록된 모든 것이 거짓말이며 천국도 지옥도 없다고 외쳤습니다. 그런데 그가 병에 들어 사경을 헤매며 의사에게 자신의 목숨을 구걸했습니다. 나의 생명을 일년만 더 연장해주면 내 재산의 절반을 주겠노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병에서 건짐받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죽으면서 그가 했던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나는 지옥에 떨어지노라”

사실 우리에게 죽음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 위대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죽음을 극복하고 믿음으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중국교회의 부흥에 대한 책들이 우리에게 많은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윈형제가 쓴 “하늘에 속한 사람” 이후에 단운이라는 분이 쓴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책이 나왔습니다. 중국교회에 공산주의가 들어온 이후로 모든 교회는 문을 닫았습니다. 1949년에 크리스찬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었고, 1958년에는 모든 교회의 문을 닫아 걸어 버렸습니다. 1970년 중국에 대한 한 보고서에는 중국에 단 한명의 그리스도인도 남아있지 않다고 했습니다. 모든 성경은 불태워졌고, 선교사들은 추방당하고, 크리스챤들은 유배를 가거나 강제 노동장으로 끌려갔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투옥되고, 고문당하고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중국교회가 지금 세계에서 가장 많은 크리스챤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의 발표마다 차이는 있으나 현재 중국 크리스챤이 1억이 된다고 합니다. 더 놀라운 것은 주님을 위해 죽기까지 준비한 선교사로 지원한 사람이 200만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죽음이 그렇게도 두려운 것임에도 불구하고 죽기를 마다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주님께 드려 주님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중국교회의 능력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바로 죽음을 뛰어넘는 부활의 능력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청년들이여 부활을 믿습니까?
부활은 잠시 죽었다가 깨어난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우리 주위에서 그런 사람을 만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저희 외할머님도 죽으셨다가 이틀째 깨어나셨다가 수십년간 사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부활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에 예수님의 권세로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들이 세 사람 나옵니다. 야이로의 딸과 나인성 과부의 아들과 나사로입니다.

야이로의 딸은 어린아이입니다. 나인성 과부의 아들은 청년입니다. 나사로는 어른입니다. 주님의 권세는 나이가 얼마가 되느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주님의 손길에 접촉하면 모두가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 생각하자면 야이로의 딸은 방장 죽었던 사람입니다. 나인성 과부의 아들은 이미 죽어서 장사를 지내던 중이었습니다. 나사로는 죽어서 무덤에 들어간 사람입니다. 그러나 죽은 지 얼마 되었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말씀한마디면 죽음의 자리에서 일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주님의 부활이요 생명인 것입니다.

그런데 야이로의 딸도, 나인성 과부의 아들도, 나사로도 부활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단지 죽었다가 살아난 것입니다. 죽었던 사람이 살아났다 할지라도, 그 사람이 영원히 살수는 없습니다. 야이로의 딸도, 나인성 과부의 아들도, 나사로도 언젠가는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부활이라는 것은 영원히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그것을 주시기 위해서 당신자신이 십자가에 달려 죽어주셨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 모두가 그렇게 될 거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죽음의 권세를 뛰어넘을 수 있다면 세상이 감당치 못할 사람이 될 것입니다. 제자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죽음앞에서 두려워하고, 예수님을 팔기도하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릴 때 모두가 부인했던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시자 문들을 닫고 무서워 떨며 자신들도 잡혀갈 것을 전전긍긍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성령님으로 충만하자 그들의 삶은 놀랄 만큼 달라졌습니다.

요한복음 3장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미문에 앉은 앉은뱅이환자를 고치자 종교지도자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감옥에 가두게 됩니다. 종교지도자들은 베드로와 요한에게 위협합니다. “다시는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그러자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합니다. 사도행전 4:19-20절입니다. “하나님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사도행전 5장에는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던 사도들이 붙잡혔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심문하던 곳에서 제자들에게 다시는 이 부활을 증거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리고는 채찍질하였습니다. 그런 고통을 당했으나 제자들의 반응은 5장 41절“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를 떠나며,42절-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기치지 아니하니라”

우리가 잘 아는대로 사도행전 6-7장에는 스데반의 순교의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했다는 이유로 스데반은 붙잡혔습니다. 그런데 재판석에 서있는 스데반의 얼굴을 성경은 천사의 얼굴과 같았더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곤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 그의 얼굴은 성령으로 충만했고, 돌로 치는 그들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용서하며 순교했습니다.

예수님의 12제자중에서 요한을 제외한 모든 제자들이 순교했습니다. 칼에 목베임을 당하고, 돌에 맞아죽고, 낭떠러지에 떨어죽고, 십자가에 달려죽고, 껍질을 벗김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겁쟁이였던 제자들은 복음을 위해서 죽임 당함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이러한 놀라운 역사를 가져다 준 것입니까? 바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자신에게도 부활이 있음을 확신하자, 그들은 세상이 감당치 못할 사람이 된 것입니다.

부활의 소망, 영생의 소망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특권이자 선물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청년들이여 그대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예수님께서 사망권세를 깨트리고 부활하심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도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다시 부활할 것을 믿습니까?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사람, 부활의 소망을 가진 사람들을 통해서 이 세상은 변화될 것입니다. 그들은 세상이 감당치 못할 사람이 될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을 우리는 믿음장이라고 부릅니다. 믿음으로 주님위해서 살다가 수없는 사람들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 함께 히브리서 11장 33-40절까지 교독하겠습니다.
33-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34-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35-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불려나가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36-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37-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와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란과 학대를 받았으니
38-(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39-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40-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과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사랑하는 청년들이여 여러분 한사람 한 사람이 세상이 감당치 못할 사람이 되십시오. 고난도, 실패도, 죽음도 두려워 마십시오. 우리에게는 영생의 소망이 있고, 부활의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깨를 펴십시오. 나는 하나님의 꿈쟁이라고 외치십시오. 새벽이슬같은 청년들이여 누가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세상이 감당치 못할 사람이 되려면 몇 가지 갖추어야 할 것들을 찾으려합니다.
첫째 주님이 항상 내 곁에 계심을 믿으십시오. 15-16절에 보면 제자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가던 중인데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동행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눈이 가리어져서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죽음의 두려움과 슬픔에 눈이 멀자 예수님이 함께 하심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항상 함께 하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심을 잊지 마십시오. 지금 이 자리에 나와함께 하십니다. 내가 예수님이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된다면 지금 내 삶에 욕심이나 두려움이나 슬픔이 있는지 살펴보십시오. 그리고 그러한 도전들을 이겨내십시오. 주님이 승천하실 때 하신 말씀을 우리가 날마다 기억해야합니다. “내가 땅 끝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십시오.
25절 우리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보십시오.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우리 주님께서 죽으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얼마나 자주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고난을 당하고 십자가에 못박혀죽으리라 말씀했습니까? 그런데도 제자들은 그 말씀을 믿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바탕은 하나님의 말씀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세상의 어떤 논문이나 사상을 믿어서는 안됩니다. 유럽의 한 천주교에서는 개에게 영세를 준다고 합니다. 한 논문이 개에게 영세를 주어도 된다고 했다는 것을 의지한 것입니다. 우리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만 의지해야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셔서 이루어지지 않았던 일이 있었습니까? 주님이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부활한다는 말씀을 믿으십시오.

셋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마음이 뜨거워지도록 준비하라.
오늘 본문에 제자들은 드디어 예수님을 발견합니다. 그리고는 스스로 화답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실 때 우리의 마음이 뜨겁지 않더냐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청년들이여 살아있고 운동력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어떤 반응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마음도 뜨거워집니까? 아니면 아무런 반응이 없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앞에 마음이 뜨거워지고 그 말씀대로 살겠다는 결단들이 날마다 새로워지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우리도 부활할 것입니다. 부활의 소망을 가진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할 사람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바로 이곳에서 저와 함께 예배하는 사람들이 세상이 감당치 못할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그대의 이름은 하나님의 꿈쟁이인 것입니다.

유진벨을 가득 메웠던 것처럼 이 예배당을 가득 메우고, 이 광주땅을 회복시킵시다. 거룩한 부흥의 바람을 일으키는 거룩한 행렬을 시작합시다.

[하늘에 속한 사람]책자의 머리글 마지막 부분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위대한 사람들이 아니라 위대하신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약한 사람들이다”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125 / 1 Page
번호
제목
이름

성경공부


최근글


새댓글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