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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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중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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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 천국에까지 가져갈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 있겠습니까? 사랑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많은 관심과 기도의 제목이 사랑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요즘 시대에 사랑이라는 단어가 홍수처럼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사랑이라는 단어의 사용이 예수님이 보실 때는 사랑이 아닐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사랑이라는 단어는 짬뽕된 개념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사랑의 대부분은 아카페사랑입니다. 지난해에 아가페 사랑에 대해서는 나누었기에 그 부분은 오늘은 나누지 않겠습니다. 아무튼지 아가페 사랑은 천국에까지 함께 가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돈도, 방언도, 은사도, 천국에서는 사용할 수 없는 법입니다. 사랑은 천국에까지 유지되며 주님안에서 영원토록 함께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보는 본문을 기록한 사도요한에 대한 기록에 보면 그는 예수님의 12제자중에서 유일하게 순교하지 않고 늙도록 살았다고 합니다. 그가 나이가 많아서 볼 수가 없고, 걸음이 불편하여 부축되어 강단에서 설교를 하면 늘 했던 말이 사랑이라고 합니다. “사랑하십시오, 서로 사랑하십시오.”
새벽이슬같은 청년들이여 누가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겠습니까? 바로 사랑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통해서 세상은 아버지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잘 감당하여 죄인을 포함하여 원수까지 사랑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이미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보여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베드로와 6명의 제자들이 갈릴리로 고기 잡으러 갔습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갈릴리호수가 크기는 하지만 평생 고기 잡던 어부가 밤새워 그물을 던졌음에도 불구하고 한 마리도 잡지 못한 것입니다. 꼬박 한밤을 새워 그물을 던지셨으나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한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오른편에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으라. 그래서 잡은 것은 153마리입니다. 모나미 볼펜에 보면 153이 기록되어있지요. 저는 불어를 잘 못하는데, ‘모나미’가 나의 친구라는 의미라고 들었습니다.

아무튼지 예수님은 숯불을 피우고, 고기와 떡을 구워서 제자들에게 먹이시고는 제자들의 대표인 베드로에게 질문하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시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주님은 세 번씩이나 베드로에게 동일한 질문을 합니다.

사랑하는 청년들이여 주님이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하신다면 여러분은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오늘 본문을 통해서 주님을 사랑하는 고백을 가진 사람의 자세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주님이 나에게 물어보시는 것은 이것입니다.

1. 네가 나를 사랑하는 것이 진심이냐?
15절 이 사람들 보다나를 더 사랑하느냐? 너와함께 의기투합한 친구들 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주님은 질문하시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네 애인보다, 네 부모님보다, 네 존경하는 사람보다, 연애인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 보다의 난하주에 보면 '이것들보다'로 바꾸어도 된다는 뜻입니다. 이것들은 무엇이겠습니까? 아마 배/그물/물고기/갈릴리바다를 말할수있을 것입니다. 쉽게 표현한다면, 수능 점수보다, 아끼는 소장품보다, 학위, 자격증, 지위, 명예, 자랑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느냐는 것이겠지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고백은 이 세상의 어떤 것 중의 하나여서는 안됩니다. 10개중의 하나쯤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엄밀히 말해서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이라는 자체가 100%여야 합니다. 그렇기에 주님은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만일 한 남자가 한 여자과 교제를 나누는데 그 남자가 그 여자에게 10중의 하나로 사랑한다면 그 남자와 계속 교제하겠습니까?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제정신이 아니겠지요?

무엇보다도 먼저 100%주님사랑이 되어야합니다. 그 100%주님사랑으로 부모님을 사랑하고, 형제, 자매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두가 100%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베드로를 부르실 때 ꡒ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ꡓ ꡐ요한의 아들 시몬 이라는 이름은 예수께서 베드로와 처음 대면했을 때에 부르시던 호칭입니다(요 1:42). 예수께서는 베드로를 향해 이 질문을 세 번이나 동일하게 물으셨습니다. 이 세 번의 질문은 베드로에게 뼈아픈 기억들이 생각나게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가 달리시기 전에 예수님은 제자들 모두가 나를 버리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단호하게 말했잖습니까? “모두가 다 예수님을 버릴지라도 자신만은 그러지 않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던 것입니다. 세 번의 질문은 세 번씩이나 부인했던 베드로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누구나 실수가 있습니다. 누구나 잘못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죄책감과 비탄에 사로잡혀서는 안됩니다. 사실 베드로가 그의 잘못과 실수로 인하여 심한 죄책감과 비탄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예수님의 반복되는 질문에 당황하고 괴로워하면서도 베드로는 비록 자신이 실수하기는 했지만 진심으로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주님께서 다 아시지 않느냐고 진지하게 대답하였습니다. 누구나 실수가 있습니다. 누구나 잘못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죄책감과 비탄에 사로잡혀서는 안됩니다. 우리 또한 그러한 아픔속에서도 주님을 사랑한다는 고백으로 일어서 주님께로 향하시기 바랍니다.


2. 사랑한다면 주님의 양을 치는 사명이 있다.
예수께서는 어떤 질책도 없이 세 번에 걸쳐 질문하심으로써 베드로의 사도직을 회복시키신 다음, 질문하신 회수만큼 베드로에게 반복적으로 목자로서의 책임을 부여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양 무리에 속한 자들을 돌보아야 할 사명을 부여받은 것입니다. 여기에서 양을 ꡐ먹이라ꡑ는 표현이나 ꡐ치라ꡑ는 표현이 다르기는 해도 기본적으로 양들을 돌보라는 공통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베드로에게 있어 주님의 양 무리를 돌보는 것은 곧 주님을 향한 사랑을 확증하는 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청년들이여 예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십니까? 만일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양을 치는 일이 선택사항이어서는 안됩니다. 양을 치는 일은 목사의 일만이 아닙니다. 간사/팀장/ 순장/ 순종의 일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고백을 드리는 모든 사람의 몫입니다.

예수님 꿈동산에 목자가 부족하여 어린영혼들을 양육할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만일 지금 우리 청년공동체에서 아무리 주님을 사랑하고, 또한 헌신하여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어 놓는다 할지라도 다음세대를 양육하여 양을 치는 일을 소홀히 한다면 다음세대의 희망은 없는 것입니다.

3. 남에 대한 것에 마음을 두지 말고 네 자신이 나를 따르라.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베드로에게 주님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을 당할지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예언대로 로마황제 네로시대에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러 매달려 순교했다고 합니다. 베드로가 죽음에 대한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과 함께 예수의 사랑하시는 제자 요한의 앞날에 대해서 질문하게 되었습니다.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주님은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 주님께서 어떻게 사용할지에 너무 마음을 두지 말라하십니다. 사랑하는 청년들이여 내가 주님과의 관계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가져야할 부분은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 평가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이 잘나가는 것, 못나가는 것, 그것은 그 사람과 주님과의 관계에서 결정되어질 뿐입니다. 나는 나에게 맡겨준 일에 충성하면 되는 것입니다. 5달란트, 2달란트 받은 사람과 비교하면서 나는 왜 이렇게 적으냐고 불평하며 평생을 보내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나에게만 맡겨준 달란트가 있는 것입니다.

나에게서는 나만을 통해서 받으실 하나님의 영광이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어떤 모습으로 주님을 따르든 그것은 주님의 소관입니다. 너는 나를 따르라. 너의 자리에서 주님을 위한 헌신의 삶을 살아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랑의 크기는 은혜의 크기와 비례합니다. 많이 은혜받은 사람은 많은 사랑을 하게됩니다. 은혜를 받은대로 그 분에게 사랑으로 보답하려합니다. 반면에 적게 사랑받은 사람은 적은 은혜를 느끼기에 은혜를 갚으려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한다면, 우리의 사랑은 100% 사랑이어야합니다.그 사랑으로 주님께서 맡기신 목양의 사명을 감당하되, 비교하거나 서로 평가하지 말고 나를 향하신 주님의 뜻앞에 순종하며 나아가야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으로 세상을 변화시켜 나갑시다.


61.248.106.169정선미: 주님을 사랑하면 사명과 연결되어있는 삶의 자리로 나아감을 배웁니다 -[01/18-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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