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인 안목을 넓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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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중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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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대림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오늘이 대림절 둘째주일입니다. 대림절은 대강절이라고도 하고 강림절이라고도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고 준비하는 절기로서 성탄절 전 넷째주일부터 성탄 전날까지 지킵니다. 마치 사순절이 주님의 고난을 생각하며 자신을 준비하는 기간이라면 대림절은 주님의 탄생을 기다리며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미 오셨으므로 단순히 성탄절만 준비하는 게 아니라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의미도 있습니다. 사실 이미 오신 주님께 감사하며 성탄절을 잘 맞이할 준비는 주님을 잘 믿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것과도 통합니다. 그래서 대림절은 성탄절을 준비하며 주님의 재림까지 기다리는 의미를 가지는 절기입니다.

성탄절이 오기까지 앞으로 3주일이 남았습니다. 이미 오신 주님께 감사드리고, 다시 오실 주님을 기억하며 준비하는 믿음의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지금 대부분의 학교가 시험기간입니다. 어떤 학교는 이미 시험이 끝났습니다. 시험을 치르면서 학생들은 대부분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성적이 좋아서 점수를 잘 맞은 사람에게도, 성적이 낮은 사람에게도 스트레스는 다 있는 법입니다. 벌써부터 스트레스가 됩니까? 마음을 진정하시기 바랍니다. 적당한 스트레스는 우리를 건강하게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공부를 잘하여 성적이 좋은 사람과 성적이 낮은 사람중에서 어떤 사람이 더 스트레스가 많겠습니까? 아마 성적이 좋고 공부를 잘 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런데 공부를 못하고 성적이 낮다고 해서 스트레스가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나름대로의 부담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특이한 사람도 있습디다. 제가 알고 있는 한 사람중에 별명이 ‘태평’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학교 다닐 때 거의 오후에는 졸고 있고, 시험을 앞두고도 거의 공부하지 않으면서도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의 성격이 점액질이라며, 기질상 그런다면서 태평스럽게 살아갑니다. 그는 아직 목사고시도 패스하지 못했습니다. 자신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주변 사람은 그 사람 때문에 엄청 스트레스를 받고 있습니다.

아무튼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늘 마음에 두어할 것이 있습니다. 영적인 삶입니다. 다른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 살아가면서 모든 일이 다 주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기에 중요합니다. 그러나 영적인 삶에 둔하면 아무 희망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영적으로 어두우면 구원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설사 안다고 할지라도 지키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면 자연히 하나님의 복과는 정 반대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잠언29장 18절입니다.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무슨 말입니까? 묵시를 영어성경에는 VISION으로 표기했습니다. 즉 비젼이 없는 백성과 민족은 망할 짓을 골라서 한다는 것입니다.

비젼이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그 뜻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한번 태어나 한번 살아가는 것인데, 이것을 위해 살다가 이것을 위해 죽을 수 있는 것이 비젼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비젼이라는 것을 보십시오. 대부분 돈이나 명예나 권세가 대부분입니다. 정말 비참한 꿈입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책망하시면서 하시는 말씀과 흡사합니다. 예레미야 2장 13절입니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참으로 마시면 마실수록 갈증을 씻어주는 생수이신 하나님을 버려둔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목말라합니다. 돈/ 명예/ 권력/ 쾌락.......그러나 그러한 것은 목마름을 해갈할 수 없는 것입니다. 더더구나 그들이 웅덩이로 만들어 놓은 것들은 터진 것이라고 주님은 말합니다. 마음껏 채워놓아도 밑빠진 독에 물붓기입니다.

영적인 안목을 넓히라고 했는데 영적인 안목이 넓다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을 알고 믿으며 하나님의 뜻을 깊이 깨닫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살 수 있어 행복하고 보람되게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주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세상 욕심만 따라 살다가 불행을 만나는 사람을 보며 안타까워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중요한 것을 너무 쉽게 잊어버립니다. 이런 짦은 글이 제가 존경하는 목사님의 홈피에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돈을 얻기 위해 건강을 해칩니다. 나중에 건강 때문에 많은 돈을 버립니다. 그러나 한 번 해친 건강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습니다. 많은 사회가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환경을 해칩니다. 나중에 환경 때문에 큰 해를 입습니다. 그러나 한 번 망가진 환경은 쉽게 회복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이 잘 살기 위해 자녀를 방치합니다. 나중에 자녀 때문에 불행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한 번 잘못된 자녀의 인격은 잘 회복되지 않습니다. 많은 교회가 부흥을 위해 복음을 왜곡합니다. 나중에 잘못된 복음 때문에 교회는 비난을 받으며 쇠퇴합니다. 그러나 한 번 왜곡된 복음은 좀처럼 바로잡히지 않습니다.]

이혼하신 어머님이 재가하셨는데 여러 번 힘들어하셨습니다. 물론 사람이 살아가는 것이 쉬운 일이 있겠습니까만 아버님이 너무 돈에 욕심이 있어서 많은 농사일은 어머님께 맡기고 노동현장으로 매일 일하러 가신다고 합니다. 그래보았자 시골에서 얼마나 벌겠습니까만... 얼마 전 갈비뼈가 자주 아프시다고 하셔서 삼성병원에 검사를 받았는데 암이 많이 번져서 수술도 불가능하다고 하여 내일 광주로 내려오신다고 합니다.

우리가 아직 젊다고 생각하실 때 창조자 하나님을 기억하십시오. 전도사12장 1절입니다.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그리하라” 새벽이슬같은 청년들이여 누가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겠습니까? 영적인 안목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우리의 눈을 열어 영적인 안목을 넓게 하십시오.

우리의 눈을 열어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데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듣고 깨닫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 시대가 돌아가는 현상을 보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것입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듣고 깨닫기 위해서는 말씀을 사모해야합니다. 예배시간을 귀히 여기셔야합니다. 예배 때 결석하면 안됩니다. 말씀을 받아 적고, 그 말씀을 바로 이해해야합니다. 오늘은 두 번째의 것을 생각하려고 합니다. 즉, 이 시대가 돌아가는 현상을 보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쉽게 징조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징조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의 영적인 안목이 넓어야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로 와서 예수님이 정말 하나님이 보내신 분이라면 그것을 증명할 표적을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왜 그렇게 하겠습니까? 우리가 읽지는 않았습니다만 마태복음 14장에는 오병이어의 기적이, 마태복음 15장 마지막부분에서 예수님은 떡 7개와 생선 두어 마리로 4000명을 먹이셨습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온 것은 예수님이 적은 음식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먹이셨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미 수천의 사람들이 경험한 기적을 믿지 못하고 자기 마음에 드는 새로운 표적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에 대해 두 가지로 대답하십니다. 하나는 일기를 보면 날씨를 짐작할 줄 알면서 왜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영적인 표적은 볼 줄 모르느냐는 말씀인데 이것은 그들이 오병이어나, 7병2어의 기적에서도 표적을 보고도 믿지 못한 것을 꾸짖는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이것을 지금까지 보고 들었는데도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이런 사람은 무엇을 봐도 믿지 않을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이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3일 있었던 것처럼 땅속에 3일 계셨다가 부활하시는 기적까지 보여주셨지만 이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지금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과 역사를 보고도 믿지 않는 사람은 다른 것을 본다고 믿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이런 뜻입니다.

그러면 왜 이들이 믿지 못했습니까? 바리새인의 특징은 자기들의 전통만 고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자기들의 전통을 따르지 않고 오히려 참된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주시니까 믿기는커녕 배척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은 안식일에 생명을 구해야 한다는 하나님의 참 뜻을 가르치고 행하셨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 일체 일하지 말아야 한다는 자기들의 전통을 고집하며 예수님을 믿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가 알고 있는 것만 옳다고 고집하면 정말 우리에게 바로 가르쳐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여러 가지 사건으로 보여주시는 징조도 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겸손히 마음을 열고 말씀을 받으며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일들을 보고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사두개인들은 종교지도자였지만 경건보다는 세상의 재물과 권력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 세상 욕심에 눈이 먼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도 들을 수 없고 하나님의 역사에서 징조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말씀하시는 징조를 보십시오.
전쟁이 많아지고, 기근과 지진이 있겠다했습니다.
말세에 거짓선지자가 많아지리라 했습니다.
불법이 성하므로 사랑이 식어지리라 했습니다.
자기를 사랑하리라했습니다.
돈을 사랑하리라 했습니다.
자랑하고, 교만하고, 비방하고, 부모를 거역하고, 감사하지 않고, 거룩하지 않으리라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처럼 내가 알고있는 가치나 전통을 고수하다거나, 세상의 재물과 권력에 매이면 하나님의 뜻을 볼 수 없게 되기도 합니다. 물론 우리에게는 세상의 사역도 필요하고 물질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거기에만 관심을 가지고 거기에만 매달려 있으면 영안이 어두워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귀가 어두워집니다. 늘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뜻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과 더욱 친밀해지고 하나님의 뜻을 더 잘 알게 되고 영적으로 강건해질 뿐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 속에 세상에서도 더욱 복되게 살 수 있습니다.

공부하는 학생의 때에 세상에서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하고 성적을 올리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일입니다. 학생 때 특히 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할지 잘 모를 때는 지금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무엇보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나 성적과 공부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놓쳐버린다면 우리는 가장 시급하고 소중한 인생의 의미를 잊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새벽이슬같은 청년들이여 그대의 영적인 감각이 무뎌지지 않도록 기도하십시오. 주님의 뜻을 밝히 깨달을 수 있도록 성령님으로 충만하십시오. 그리고 그 인생의 기초위에 공부도, 돈도, 명예도, 목표도 세우십시오. 만일 우리의 영안이 밝아진다면 항상 하나님을 밝히 보고 하나님과 가까이 지내며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순종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영생과 축복을 누리고 아울러 이 세상에서도 더욱 보람과 기쁨이 넘치는 복된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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