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차라리 흙더미에 깔려 죽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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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흥용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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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벧아웬의 송아지'(5절)는 무엇을 가리킵니까?

해설: '벧아웬의 송아지'는 여로보암이 단과 벧엘에 세운 금송아지 상을 가리킵니다.

3) '사마리아 거민이 벧아웬의 송아지를 인하여 두려워하는'(5절) 이유는 무엇입니까?(5-6절)

해설: 단과 벧엘에 세운 금송아지 상에서 영광이 떠나고 그 송아지 상이 앗수르로 옮겨져 야렙왕에게 예물로 바쳐지기 때문입니다.

4) 금송아지 상이 앗수르로 옮겨지고, 영광이 금송아지 상에서 떠나는 것이 왜 이스라엘에게 두려움이며, 슬픔입니까?

해설: 여로보암은 북 왕국 이스라엘을 세우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는 남 왕국 유다와 분리된 제사 장소를 가질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세운 제사 장소가 바로 단과 벧엘입니다. 여로보암은 이곳에 금송아지 상을 세워 놓고, 그것을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남 왕국 유다에 법궤가 하나님 임재의 상징으로 있었던 것처럼, 북 왕국 이스라엘에도 금송아지 상이 하나님 임재의 상징으로 세워진 것입니다.

바로, 단과 벧엘에 세워진 금송아지 상이 이스라엘에게 그런 의미가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앗수르로 넘어간다는 것은 그들을 두렵게 하는 것이고 슬프게 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있어 금송아지 상이 앗수르에게 넘어가고 그것에서 영광이 떠나가는 것은 하나님이 자기들을 떠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들에겐 하나님이 없고, 그래서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없기에 두렵고 슬픈 것입니다.


5) 금송아지 상이 왜 앗수르에게 넘어갑니까?

해설: 그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이 그 금송아지 상을 앗수르에게 넘겨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수치를 주는 것입니다(6절).

단과 벧엘에 세워진 금송아지 상은 처음에는 순수하게 하나님 임재의 상징으로 여겨졌습니다. 어떻게 보면 남 왕국 유다와 분리를 겪은 북 왕국 이스라엘의 자구적인 하나님 신앙의 발로였다고 볼 수 있는 순수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가나안의 이방 제의에 사용되는 송아지 우상과 혼동을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이 바알이 되고, 바알이 하나님이 되어버리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또한 개념에 있어서만이 아니라, 실제 제의 행위에서도 하나님 제의와 가나안 이방 제의가 혼합되어 실천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런 금송아지 상을 앗수르에게 넘겨 버린 것입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생각과는 달리 하나님이 아닌 한낱 우상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 것도 아닌데, 그것이 마치 하나님인양 섬기는 것이 우스운 것입니다. 또한 실제로는 바알에게 제사하면서도, 그것이 하나님에게 드리는 것인 양 자신들의 제의 행위를 정당화시키는 것이 가증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무 것도 아닌 그 우상을 앗수르에게 넘겨 버린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이라고 여겼던 우상을 일개 인간에 불과한 야렙 왕에게 예물로 헌납하게 함으로 아무 것도 아닌 우상을 섬긴 그들의 어리석은 신앙을 수치스럽게 만들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 금송아지 상이 전리품으로 바쳐지게 될 금덩어리 외엔 아무 것도 아님을 알게 함으로 그것이 풍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믿고 그것에 절하는 그들의 계획과 뜻을 부끄럽게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6) 금송아지 상이 있었던 이스라엘의 산당은 어떻게 됩니까?(8절)

해설: 패괴되어 가시와 찔레나무가 그 단위에 덮일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생각했습니다. 수많은 제단을 쌓고 주상을 아름답게 꾸며(1절), 그곳에서 매일 화려한 제사를 드리게 되면 풍요와 번영이 주어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부정한 방법으로 정권을 창출했을지라도 하나님께 제사만 드리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하게 자신의 형상을 만들지 말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금송아지 상을 만들어 그것을 하나님으로 섬겼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그런 것이다'라고 자기들 마음대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실제로는 가나안의 이방신의 형상임에도, 그렇게 자기들의 헛된 신앙을 정당화시킨 것입니다.

상황이 이런데, 하나님께서 그냥 내버려 두시겠습니까? 당연히 그 산당을 파괴하고 황무하게 만들어 버리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생각하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화려한 제단에 갇혀 있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무엇을 해도 제사만 드리면 기뻐하시는 그런 하나님이 아닙니다. 이방 신들과 혼동되어 섬겨져야 하는 그런 하나님이 아닌 것입니다.


7) 이스라엘의 제단이 파괴되어 황무하게 될 때, 이스라엘 사람들이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며, 또 그 의미는 무엇입니까?(8절)

해설: 산에게 자신들을 가리워 주라고 하며, 작은 산들에게 이르기를 그들 위에 무너지라고 합니다.

그들이 그토록 소중하게 생각했던 제단과 우상들이 무너지고 파괴되는 것을 목도한 후에, 그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어리석었으며 패역했는가를 알게 되고, 그들의 가증한 행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 공포를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그 심판의 공포와 수치를 가리우기 위해 산들더러 자기들을 가려주고, 심지어는 그들을 덮어 버리라고 합니다. 하나님에게 심판을 받기보다 무너지는 산에 깔려 죽는 것이 더 낫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닥쳐와서야 비로소 흙더미에 깔려 죽는 것이 차라리 더 낫다고 할 정도로 하나님이 크고 두려운 분이시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8) 혹시 하나님은 내가 무슨 일을 해도 예배만 드리면 용서하시는 분이라고 생각하며, 삶 속에서 하나님이 금하신 것들을 한 적이 있습니까? 혹은 하나님께서 분명히 아니라고 말씀하신 것임에도 불구하고, 자기에게는 그 말씀이 해당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행한 일이 있습니까? 우리의 삶의 모습이 과연 나의 입장에서보다 하나님 입장에서 합당한가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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