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위선(마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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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덕호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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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가장 신랄하게 꾸짖고 공격한 자가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저는 그 동안 바리새인들이 꾸짖음을 당한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고 위선적인 그들을 욕했습니다. 그들은 의인인 체하고 마음에도 없는 행동을 하며 사람 앞에 드러나 보이기를 원했습니다. 이런 위선적인 행동이 어떻게 욕을 먹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최근에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바리새인이 욕먹은 것이 오로지 마음에 없는 행동을 한 것 때문이었을까? 위선이란 그런 유형만 있을까?" 아닙니다. 본문을 보면 바리새인들은 십일조를 1전도 떼어먹지 않고 다 바쳤습니다. 그들이 사람에게 보이려고 마음에도 없이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중히 여기고 행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의 삶 속에 신(믿음직한 삶), 인(사랑의 삶), 의(올바른 삶)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위선자들이라고 꾸중을 들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위선 중의 하나는 종교행위와 삶이 유리되고 서로 다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강렬하게 꾸짖으신 것 중 하나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도 이런 모습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아니, 많기만 하다면 오히려 큰 걱정거리가 아닙니다. 많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종교행위가 곧 신앙생활이라고 착각하고 평소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행되느냐 안되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종교 생활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심지어 겉으로만 하는 척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해도―열심히 교회 나오고, 뜨겁게 기도하고, 진심으로 사모하며 성경 공부를 해도―평소의 삶에서 그리스도의 심정으로 어려운 이웃을 돌보지 않으면 바로 위선입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심으로 뜨겁게 기도합니다. 골방에서 기도합니다. 그래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소 생활에서 남을 돕지 않으면 그것이 바로 위선적인 종교생활입니다.

교회에서는 가장 많이 땀 흘리고 가장 크게 소리쳐 기도하면서도 남의 어려움을 조금도 나누어지지 않으려고 하는 우리의 모습이 바로 이런 위선이 아닐까요? 우리 삶 전체에서 이런 위선을 떨쳐 버리고 앞으로는 정말 참된 신앙생활을 해 나갈 수 있기 바랍니다. 찬양과 성경공부는 열심히 했어도 어려운 사회에는 눈 한 번 돌리지 못한 우리가 역시 또 하나의 위선 속에 지내 온 것 아닙니까? 아무리 기쁨으로 찬양하고 뜻을 모아 성경공부를 했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는 이러한 위선에서 벗어나 참된 신앙의 열매를 맺어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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