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의 성경과 기독교이해에 대한 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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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의 성경과 기독교이해는 성경적인가?]**
부족한 저의 글입니다. 많은 조언 부탁드립니다.

도올은 기독교와 성경을 같은 것으로 이해한다.
도올의 생각은 아마도 천주교도 기독교로 인정할 것이다.
여기에서 본인은 기독교를 개신교로 이해하면서 전개하려고 한다.

즉 본인은 [개신교=교회]로 이해하는 것이다.
카톨릭은 개신교 입장에서 보면 이단임으로 참 교회로 볼 수 없을 것이다.(타락한 교회)

도올은 교회와 성경을 같은 선상에 두고서 이야기 하려고 한다.
그러나 정경은 정경이며 교회는 교회이다. 하나님 말씀(성경)이 교회에 주어졌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말씀이며 하나님의 교회는 교회라는 것이다. 물론 말씀으로 교회가 자라나는 것은 사실이다. 말씀으로 교회가 복음을 전함으로 교회가 확장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성경과 교회를 동일시해서 이해하는 것은 모순이다.
도올은 성경이 교회에서 만들어지는 과정을 가지고 교회(기독교)의 진화를 말하고 있다.
성경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두고서 교회의 발전으로 이해하는 것은 큰 모순이라는 것이다.

초대교회의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록되었다. 물론 그것들이 기록되는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어떠한 과정으로 기록이 되었는지 분명히 알 수는 없지만 기록이 된 이후에 초대교회에 주어진 상태에서는 완전성을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성령의 감동으로 기록)

이렇게 그 말씀들이 정경으로 확정된 것도 하나님의 섭리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 성경의 무오성은 신에 의해서 교회에 주어진 유일한 경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전통적인 참 교회에서 말하는 신앙의 상식이다.

그러나 도올은 이러한 신앙의 상식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삭제하고서 성경을 대하는 것이다. 인간이 말들어낸 혹은 공동체가 만들어낸 경전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도올이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의 발전이 교회의 발전으로 동일하게 이해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발전으로 교회가 점점 진화했다는 교회의 진화론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세상에서 말하는 다른 종교의 논리를 그대로 끌어들여서 교회도 마찬 가지로 그대로 따라갔다는 것으로 설명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다른 경전과 달리 처음부터 하나님의 성령이 관여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성경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하나님께서 관여하심으로 몇 사람에 의해서 기록되었고 그 기록된 성경이 교회에 정경으로 채택되는 것도 하나님의 섭리로 된 것을 인정한다.

과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모든 교회와 신학은 이러한 성경에 의해서 조명되고 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신 유일한 진리이며 생명이 있는 책이다.
이 진리의 말씀은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께서 교회에 허락한 인류 최고의 선물이다.

교회는 성경도 아니며 하나님의 나라도 아니다. 교회는 교회일 뿐이다.
교회는 타락할 수 있으며 교회는 다시 거룩함을 회복할 수 있다. 교회는 축소될 수 있으며 교회는 확장될 수 있다. 이렇게 교회는 근본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을 믿는 자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런데 도올은 성경이 불완전한 시대가 있었듯이 교회도 불완전한 때가 있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성경의 발전과 교회의 발전을 동일시하게 보려는 시도이다.

특히 그는 복음서에 집착한다.
예수자체와 예수에 대해서 기록한 자들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사실 과거에 이미 수차례 논했던 것들이며 오늘날 도올에 의해서 다시 한번 불신앙의 사상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예수자체와 예수에 관한 기록을 논하는 그 의도는 예수에 관한 기록이 완전하다는 것 혹은 신의 섭리로 기록되었다는 것보다 사람들에 의해서 기록되었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의도이다.(불완전성)

*그러나 복음서를 정상적으로 이해하면 아래와 같이 이해할 수 있다.

a.예수가 있었다.
b.예수에 대한 기록은 복음서이다. 그 성경이 예수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c.그리고 처음 예수를 목격한 자들의 산 증거(증언)를 토대로 복음서가 기록된 것이다.
d.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성경의 개입으로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이 되었고 보존되었다.

믿음이 없이 위와 같은 진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역사 속에서 우리는 그런 불신앙적인 종교역사가들을 다양하게 보았다.
그들은 대부분 이성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교회는 이성을 통한 믿음이 없이 성경에서 말하는 진리는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오늘날 2000년이 지난 지금에도 복음서의 가치는 초대교회 때보다 더 큰 가치가 있다.
왜냐하면 초대교회는 가까운 역사이지만 오늘 우리는 먼 초대교회의 역사를 복음서를 통해서 가까이 접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복음서의 가치 뿐 아니라 신약성경 27권이 주는 의미는 모든 교회와 교회의 신학을 가르치는 절대적인 기준이 되고 있다.

어느 시대의 교회나 어떤 종류의 신학이든지 성경에 의해서 평가되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물론 교회의 타락으로 성경을 심각하게 왜곡하여 이해했던 적이 많았지만 그래도 성경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어떤 신학이든지, 앞으로 수천 년이 지나가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모든 시대에 진리로 전해질 것이고 모든 교회의 신학의 기준으로 분명히 나타날 것이다. 다만 사람들이 성경을 이해하는 정도의 차이가 있는 신학이 존재할 뿐이다.

4복음서에 대한 이해

a.4복음서는 짧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기록이 되었다.(역사적 기록)
b.또한 그 시대의 정황 속에서 기록이 되었다.(공동체의 필요)
c.초기에는 예수의 탄생과정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예수의 사역이었다.
그러다가 예수에 대해서 제자들은 새로 들어온 공동체들(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입장이 되면서 그의 탄생을 유대공동체를 중심으로 기록한 것이 마태복음이며 이방공동체를 위해서 기록한 것이 누가복음으로 생각한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 이후 초대교회는 예수와 함께 했던 자들에게는 탄생이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이미 그들은 역사 속에서 예수와 함께했던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공동체가 형성되어가면서 예수의 탄생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을 해야 하는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예수에 대해서 어느 정도 공감을 갖게 된 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자세히 기록하게 된 것이 누가복음과 마태복음이다.

그 이전의 기록은 교회공동체에서 예수의 탄생에 대해서 그리 중요성을 갖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실 예수의 사역에 초점이 있었던 것이다.(마가복음) 그러다가 공동체가 점점 확장되면서 예수의 사역에 대해 가르치는 것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예수의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 교회공동체에서 좀더 자세히 가르칠 필요성을 가지게 된 것이다.(마태와 누가복음)

어떤 중요한 인물이 죽으면 그 인물에 대해서 제자들과 그를 따르는 자들이 그에 대해서 기록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항상 있어왔다. 예수라는 한 인물에 대해 수십 년도 지나지 않아서 그에 대한 기록이 필요했다는 것은 공동체가 어느 정도 확장되어가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예수에 대한 4복음서의 진정성은 바로 그렇게 1세기 안에서 모두 기록이 되었다는 것에서 찾는 것이다.(신약 27권 모두)

최초 목격자들이 있었고 그들의 증언대로 기록된 4복음서를 진정성을 가진 역사적인 사실로 교회는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만약에 예수가 죽고 나서 별로 인기가 없다가 200년이 지난 이후에 그를 새롭게 두각 시키려고 예수의 일생에 대해서 기록하였다면 그 기록은 진정성을 상당부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첫째는 역사라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너무 긴 시간이 흘러갔다는 것이며 그 다음은 역사적으로 목격자가 없는 후대의 증언들에만 의지해야하기 때문이다. 특히 그 시대의 상황이 어떤 정치적인 것이었냐? 에 따라서 그 인물을 우상화 하거나 혹은 신격화 할 수 있다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

2세기 이후에 예수에 대한 다른 기록들이 공교회에서 충분히 인정을 얻지 못했던 이유는 그러한 역사적 배경이 있었던 것이다. 공교회의 인정으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은 1세기 초대교회에서부터 꾸준히 교회에서 사용이 된 것을 기초로 수용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1세기의 다른 글들도 있었지만 1세기 안에서도 가장 목격자들과 가까운 글로 인정이 된 것을 공교회에서 정경으로 수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예외도 있었다. 요한계시록이다.
만약에 1세기 말에 요한계시록을 사도요한에 의해서 기록되지 않았고 다른 사람에 의해서 기록하였다면 교회의 정경으로 받아들여지기 매우 힘들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내용이 너무나 난해하기 때문이다.(묵시적)

그런대도 교회에서 받아들여졌다는 것은 요한이 살아있을 때에 요한이 기록한 것을 후대의 목격자와 교회에서의 여러 증언을 확보함으로 교회에서 수용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교회의 수용이 곧 경전이 된 것보다는 교회에서 객관적으로 역사적인 사실에 기초해서 수용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특히 예수가 승천한 이후 짧은 수십 년 동안에 4복음서가 완성되었다는 것은 그의 영향력이 강력했다는 증거이다. 만약에 예수가 그리 유명한 인물이 아니고 후대에 유명하게 되었다면 그에 대한 4복음서는 처음부터 없었을 것이고 후대에 기록이 되었더라도 매우 난해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수백 년이 지난 뒤에 예수에 대해서 기록했다면 아마 예수를 신격화 시키거나 혹은 우상화 시키는 작업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사실 다른 종교들이 이렇게 나타났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신화)

예수는 초기부터 강력한 영향력을 주었다.
예수의 부활과 성령의 강림으로 교회는 폭발적이었다.
그런 교회는 매우 힘차게 전진하는 교회의 모습으로 나타났고 그로 말미암아 교회 공동체도 크게 확장이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배경에 의해서 자연히 예수에 대한 기록이 필요하게 되었던 것이다. 특히 예수의 일생에 대해서 역사적으로 궁금한 자들이 있었을 것이며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예수에 대해서 자세히 가르쳐야 되는 필요성도 대두되었을 것이다.

그런 공동체의 필요성과 어떤 목적에 의해서 4복음서가 각기 기록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예수는 공동체에 처음부터 강력한 영향을 주었으며 그 결과로 예수에 대한 기록이 짧은 시간에 기록이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기록을 하는 과정도 최초의 목격자들인 제자들과 예수와 함께한 여러 사람들의 증언이 복음서의 기록에 큰 도움을 주었다는 것이다.(이미 기록된 여러 복음서들도 참고했을 것이다)

이렇게 최초의 목격자와 예수와 가까이 있었던 자들의 증언에 의해서 4복음서 기록이 가능했으며 그 진정성은 신격화나 신화화가 아닌 역사적이며 사실적이며 특히 신앙적이었다는 것이다. 후대에 4복음서가 이렇게 진정성을 확보한 것은 목격자들에 의한 믿음의 기록과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었다는 것을 원시 제자들에 의한 초대교회에서 수용하였던 것을 기초로 후대의 교회는 이를 정경으로 수용했던 것이다.

*이렇게 예수의 4복음서는 믿음에 의한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책이다.
4복음서는 역사적이며 사실적이고 복음적이며 신앙에 의해서 성령으로 기록된 것이다.
4복음서는 최초목격자들과 함께 했던 자들의 증언에 의해서 그들에 의해서 기록되었다.
4복음서는 교회 공동체의 필요성에 의해서 기록이 되었던 것이다.

*4복음서를 두고 두 종류로 나타난 타락된 자들이 있었다.
a.하나는 카톨릭이 복음서의 내용을 철저히 신격화시켰다.(신화화)
b.그리고 세속적인 종교역사가들에 의해서 복음서를 철저히 역사책으로 만들었다.(인격화)

*그럼 예수는 누구인가?
예수는 카톨릭의 신비적 존재도 아니고 한 인간에 불과하다는 자유주의 사상도 아니다.
예수는 역사적 실존인 사람이며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는 죽음에서 부활한 자로써 인류의 구세주가 되신다.

*예수에 관한 4복음서의 기록은 무엇인가?
카톨릭의 신비화(신격화)로 이해되어서도 안 된다.
자유주의 사상가처럼 인간예수로만 이해해서도 안 된다.(인격화)
4복음서는 역사적 예수를 다루는 실존적인 존재로써 사실적이며 예수를 목격한 최초의 제자와 그들과 함께한 자들의 증언들에 의해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이 된 것이다.

예수와 함께한 사람들의 증언은 철저히 사실에 기초를 두고 기록했던 것이다.
그들의 증언으로 기록된 4복음서를 수백 년이 지난 다음에 신격화 된 것과 같은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그들의 증언은 예수에 대해서 살아있는 산 증인이었다.(예수와 동시대)

예수의 목격자들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써 분명히 믿었다.
예수의 목격자들은 예수가 죽고 부활하고 승천한 것을 보았고 또한 다실 오실 것을 믿었다.
예수의 목격자들은 예수를 하나님의 유일한 하나님의 아들로 믿었다.
예수의 목격자들은 예수로 약속한 성령을 체험한 자들이었다.
예수의 목격자들은 예수에 대해서 거짓이 없는 증언자들 이었다.

예수와 함께한 자들에 의해서 성경이 대부분 기록된 것이다.(예수와 시간적으로 동시대)
1세기 이후에 기록된 후대의 내용들이 왜 진정성을 잃어버렸는가?(외경과 다수의 글) 그것은 시간이 흐른 이후 비목격자에 의해서 문제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신화화(신격화)라는 것은 이렇게 역사가 흘러간 후대에 이루어진 것이다. 기독교도 그렇게 신화화 하면서 점점 타락하게 된 것이다. 감히 마리와와 함께 했던 자들은 마리아에게 기도하는 것은 꿈도 못 꾸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교회가 타락하면서 결국 복음서의 내용들을 점점 신격화하기 시작했던 것이다.(아기 예수와 제자들과 성인숭배사상)

우리가 믿는 것은 예수의 어린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예수의 십자가만 믿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예수의 부활만 믿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죽고 부활하여 하늘에 승천함으로 지금 하늘에 계시는 분을 믿는 것이다.

그 예수는 우리의 죄를 위해서 죽으셨고 그 예수는 우리의 부활을 위해서 부활한 것이다.
우리는 과거 예수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지금 얻고 있는 것이다. 현재 하늘에 계시는 예수가 과거에 이룬 십자가의 산제사로 말미암아 우리가 지금도 구원을 얻고 있다.

그것은 그가 모든 시대에 오는 사람들을 위해서 과거에 산제사를 드렸다는 것이다. 이것이 새 언약을 위한 산제사였던 것이다. 그 영원한 제사를 성취한 예수의 산제사에 우리가 현재 믿음으로 동참하는 것이다. 우리가 현재 동참하는 것은 이미 이룬 산제사에 동참하는 것이다.

우리는 고난 받는 예수를 보는 것이 아닌 고난을 통과한 예수까지 함께 믿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와 함께 죽었다.(동참) 이것이 우리의 영적인 실존이다. 그리고 우리는 영적으로 예수와 함께 장차 살수 있는 부활의 생명이 된 것이다.
cafe.daum.net/hosannakim

(2007년 5월 23일 김인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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