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태로운 사람들, 그러나 새로운 시작(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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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상담학 사전에서는 중년기를
'육체의 노화, 죽음에 대한 실질적인 자각과 결혼의 불만족, 과거의 꿈과 희망이 실현되지 못함으로 느끼는 좌절, 그리고 부모의 질병이나 사망, 혹은 자녀들의 독립 등으로 중년들이 자기 정체성의 혼란을 경험하게 되는 시기'라고 정의합니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 나타난 나의 여러 가지 증상들은 중년기에 찾아오는 심리적 불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문제가 있으면 그 해결책도 있을 터이고
위기를 벗어나면 새로운 기회가 열릴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이 꿈틀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세계에로의 진입을 위해서
그 세계에 적응할 수 있는 무장을 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젖을 뗄 무렵 아이들이 밤새 보채고 칭얼거리며 울어대는 것처럼
중년들도 청년의 시대와 정신적 이유를 해야하기 때문에
정신적인 불안이나 우울증은 당연히 동반되는 것 같습니다.
단지 중년의 어른들은 그 심정을 알아주고 달래주는 어머니라는 환경이 없다는 것에
그 위험성이 높아져 흔히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지 않나 싶습니다.

혼자이고 싶은 중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관계들이 거추장스러운 중년
그래서 고독이라는 지푸라기 허수아비를 태우고 미친 듯이 질주하는 중년.
그러나 정작 내 옆자리에 앉아 계시는 분은
내 마음의 방황을 애닯게 지켜보시며 어디까지라도 동행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바로 그 분이십니다.

현금자동지급기 정도로 전락한 중년의 부모.
그런데 우리 역시 하나님을 알라딘의 요술램프속에 지니 정도로 생각한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요.
원하는 것을 당장 주시지 않는 하나님을 향하여
"주께서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습니까?"(말1:2)라고 반항한 적이
어디 한 두 번이었겠습니까?

우리가 맺었던 사랑의 언약이 하얀 백지수표가 되는 중년의 부부.
너무나 가깝기에 예의가 없는 부부들.
하나님 앞에 우리의 모습이 아닌 지.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주님이라는 호칭으로
아무런 거리낌이나 가책없이 너무도 뻔뻔하고 당당하게 내놓는 허물들을
공평의 저울에 달아서 판단하셨다면
우리는 현재 어떤 모습일까요?
풋풋한 첫사랑을 다시금 회복시켜야 할 때가 중년인 것 같습니다.

우리의 육체가 한 번 가고 안 오는 바람인 줄을 알게 되는 중년.
최후의 순간까지 자기를 지켜주리라 믿었던
야곱의 건장한 두 다리도
일순간에 꺾어지는 것을 기억하게 됩니다.
백사장의 모래를 움켜서 쥐어보지만
손가락 사이로 스르르 다 빠져 나가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 중년,
그래서 더욱 더욱 붙잡고 싶은 하나님, 나의 하나님.
그 하나님을 붙잡기 위해
힘없는 무릎을 세워 일으키고
인생 후반부의 새로운 푯대를 향하여
스타트 라인에 자세를 갖추어야 할 때!
그래서 인생 전반부와 후반부 사이에 존재하는 하프타임 중년은
새로운 시작이며 도전입니다.
이제 3월(March)입니다.
March!
힘차게 행진하라고 3월의 영문 표기는 March아니겠습니까?
3월에 우리 잔치 한 번 베풀어 봅시다.
정신적인 이유(離乳)를 기념하는 의미로 말입니다.

◀ 아이가 자라매 젖을 떼고 이삭의 젖을 떼는 날에 아브라함이 대연을 배설하였더라
(창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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