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비유해설 14: 성경 문맥은 기가 막히게 메시지 균형을 잡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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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마가복음 4:30-32

 

겨자씨 비유는 해석에 특별한 어려움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 비유에서 중요한 것은 씨가 심길 때는 작으나 자란 후에는 커진다는 대조이다. 그리고 공중의 새가 깃들일 수 있다는 표현은 나물이 크다는 것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게 된다는 것과 아울러 종말론적인 모습도 보여준다. 이 비유의 주제는 하나님 나라가 비록 지금 작아 보여도 결국은 위대하게 성장되고 완성되리라는 것이다. 여기서는 심긴다는 표현이 수동태로 나타남으로써 인간의 역할이 약화되고 땅도 언급되지 않아 그 역할이 축소된다. 결국 이 비유는 씨(말씀) 자체의 생명력이 강조되며 그로 인해 하나님 나라가 위대하게 성취될 것을 보여준다. 인간의 노력이나 능력에 무관하게 하나님 나라가 완성될 것이므로 이 비유는 어려운 환경 속에 실망할 위험이 있는 사람들을 격려하는 역할을 한다. 4:1-34의 구조에 의하면 이 비유는 은밀히 자라는 씨의 비유와 더불어 씨뿌리는 자의 비유에 대응된다. 이 대응 모습에서 발견되는 메시지가 있으나 그것은 본문 문단간의 관계를 고찰할 때 살펴볼 것이다.

 

아. 마가복음 4:33-34

 

이 문단은 예수가 비유로 무리를 가르쳤다는 내용인데 특이한 것은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대로 가르쳤다는 것이다(33절). 그러나 34절은 다시 무리에게는 비유로 가르치고 그 해설은 제자들에게만 하였다고 한다. 그러면 33절에서 알아들을 수 있는 대로 가르쳤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이 말이 무리가 알아들었다는 말이라면 알아듣지 못하도록 비유로 말한다는 내용(10-12절; 34절도 이와 비슷한 내용을 말한다)과 모순된다. 그러므로 이 말이 무리가 다 알아들은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는 없다.

 

이 말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하나는 33절에서 알아듣는다는 것을 단순히 듣기만 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이해하지는 못하고). 이 경우 주위 환경(예를 들어, 소음, 혼잡 등) 때문에 듣지 못할 수 있으므로 들을 수 있는 대로 가르쳤다는 의미가 된다. 다른 하나는 무리가 부분적으로 알아들을 수 있게 말했다고 보는 것이다. 사실 못 알아듣는 가르침을 계속 듣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계속 듣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알아듣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둘 중에 후자가 더 바람직하다. 왜냐하면 단순히 귀에 들리는 정도로만 가르친 것을 “들을 수 있는 대로”라고 표현했을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것은 주의해서 들으라는 표현(4:3, 9), 알아들을 수도 있다는 암시(4:13), 결국은 알아듣도록 하기 위해 비유로 말한다는 표현(4:21-25) 등과도 잘 조화된다. 이 문단은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며 제자들에게만 설명하였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끝난다.

 

따라서 이 문단의 의미는 예수께서 최대한으로 많이 사람들에게 가르치셨으나 무리 전체에게는 비유로 가르쳤고 제자들에게만 그 비유를 해설해주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무리가 부분적으로는 이해했을 것이나 전부를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한편, 저자는 다른 비유에 대한 해석은 기록하지 않고 있다. 그것은 독자가 다른 비유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독자가 4:10-25의 해설 부분을 통해 26-32절의 비유를 다 이해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면 독자가 어떻게 이 비유들을 해석할 것인가? 이것은 다음 부분에서 살펴보도록 한다.

 

6. 문맥 연구

 

지금까지 우리는 마가복음 4:1-34를 각 문단별로 간략히 해석해보았다. 이제 이 문단들이 서로 어떤 영향을 미치며 본문의 해석에 기여하는지 살펴보고 또한 본문과 문맥과의 관계를 고찰함으로써 본문의 의미를 좀더 밝히고자 한다.

 

먼저 1-2절은 장면의 변경을 통해 새로운 문단이 시작됨을 보여준다. 그리고 본문의 가르침이 주어진 배경을 알려준다. 예수께서는 바다 위의 배에 앉아 가르치시고 무리는 바다 곁 육지에서 듣는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많은 것을 비유로 가르치신다. 이것은 앞으로 구체적인 예수의 가르침이 나온다면 그것은 여러 비유로 나타날 것임을 예상하게 해준다. 과연 바로 다음부터 씨뿌리는 자의 비유가 나옴으로써 이 예상은 적중된다.

 

본문의 서론(1-2절)을 통해 우리는 씨뿌리는 자의 비유(3-9절)가 예수께서 호숫가에서 가르치신 여러 비유 중에 하나임을 알 수 있다. 이 비유는 씨가 자라서 열매 맺는 데 아주 중요한 요소는 땅임을 알려준다. 땅이 어떤 종류냐에 따라 씨가 자라고 열매 맺는 것이 달라진다. 이 비유에서 씨나 씨뿌리는 자의 역할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렇다면 이 비유는 어떤 메시지를 주는가? 비유 해설 부분에서 다양한 땅은 다양한 사람의 반응을 의미한다. 그래서 복음이 열매를 맺는 것은 사람이 어떻게 응답하느냐에 달려 있다. 결국 이 비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의 책임을 강조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바르게 받아들이고 어떤 박해나 유혹이 있더라도 이겨내고 말씀이 그의 삶에서 열매를 맺게 해야 한다. 그럴 경우 기적적으로 많은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한편, 3:31-35와 비교할 때 열매를 맺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다.

 

이제 다른 문단이 씨뿌리는 자의 비유에 주는 영향을 생각해보자. 은밀히 자라는 씨의 비유에서 씨가 자라 열매를 맺고 추수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성장과 성취를 보여준다. 그러므로 은밀히 자라는 씨 비유의 회상으로부터 씨뿌리는 자의 비유는 다음과 같은 의미를 함축하게된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기여하지 못한다. 옥토와 같이 열매를 맺는 자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는 자라고 위대하게 성취된다.

 

그리고 겨자씨 비유에서 씨 자체의 생명력 때문에 겨자씨가 큰 나물이 된다고 하므로 독자는 씨뿌리는 자의 비유에서도 씨 자체의 생명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씨 자체에 생명력이 있으므로 그 씨를 뿌리다보면 비록 열매를 못 맺는 땅도 만나지만 옥토도 만날 것이고 거기서는 기적적으로 많은 열매를 맺을 것이다. 그래서 씨뿌리는 자의 비유는 씨를 뿌리면 씨의 생명력과 옥토에 의해 반드시 낭비된 씨를 보상하고도 남는 기적적인 열매를 보게 되는 것과 같이 하나님 나라가 그렇게 자랄 것임을 가르쳐준다. 이런 교훈은 복음 전하는 자로 하여금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꾸준히 복음을 전하도록 격려해준다. 씨뿌리는 자 비유의 이런 메시지는 은밀히 자라는 씨의 비유와 겨자씨 비유와의 연결을 통해 분명히 드러나는 것이다. 이 세 비유가 연결되는 것은 같은 단어나 주제 뿐 아니라 세 비유가 대응되는 교차대칭 구조에서도 명백히 알 수 있다. 문맥을 통해 강조된 이 메시지는 3-9절과 13-20절이 보여주는 메시지인 열매를 맺어야 할 인간의 책임에 대한 주제를 보완한다. 그리고 4:21-25와의 연결은 복음 전파도 열매 중의 하나임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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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사랑이님의 댓글

  • 사랑이
  • 작성일
감사합니다. 생명의 말씀을 잘 듣고 받아 이웃과 나누게 하소서. 은혜로 주신 생명을 나누며 하나님께 영광이 되며 이웃에게 유익이 되게 하소서. 주시는 은혜로 소명을 잘 감당하며 이웃과 함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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