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는 말씀은 중용을 지키라는 뜻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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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은주 요약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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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가르치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는 말씀은 중용을 지키라는 뜻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명백히 "아니오"이다. 여기서 "중용을 지킨다"라는 말은 "어느 쪽으로든지 치우침이 없이 중간 정도를 지킨다" 혹은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평범하게 지낸다"라는 의미이다. 문자적으로 보면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는 말씀은 좌우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말고 중간을 유지하라는 말씀처럼 보인다.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이 말씀을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고 하실 때 그 기준으로 삼게 하신 것은 율법이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고 명령하려면 당연히 무엇을 기준으로 해서 치우치지 말아야 하는지를 알려줘야 한다. 누가 오른쪽에 있는지 왼쪽에 있는지는 기준을 어디로 잡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런데 여호수아 1장 7절이 가르쳐주는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는 뜻이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만 따르고 그 말씀에서 벗어나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이에 반해 중용을 지킨다고 말할 때 그 중용의 기준은 사람들의 행태이다. 그래서 중용을 지키라는 것은 사람들 가운데서 극단적인 행동을 하지말고 남들과 비슷한 중간의 행동을 하라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사람들이 행동하는 것을 기준으로 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하는 행동을 따르라는 것이다 이런 경우 우리가 중용을 지키려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을 때는 우리도 그들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주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는 말씀과 전혀 다른 뜻이다. 성경이 가르쳐주는 대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으려면 세상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뜻을 어겨도 우리는 그들을 따라가지 말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한다.

우리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는 말씀이 세상에서 극단적인 삶을 살지 말라는 말씀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지 말라는 말씀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다가 오히려 세상에서 극단적인 사람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당당하게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한다.

여기에 덧붙여서 사람들이 중용을 가르치기 위해 흔히 인용하는 격언 하나를 살펴보자. 그것은 "물이 너무 깨끗하면 큰 고기가 못 논다"는 말이다. 이 말은 철저히 의롭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흔히 듣는 충고이다. 신자들도 세상에서 하나님 말씀대로 살기 위해 깨끗한 삶을 추구하다보면 이런 말을 듣게 된다. 신자들은 이런 문제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이에 대해서는 두 가지를 정리해보면 유익할 것이다.

하나는, 그 물의 목적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그 물이 물고기를 키우기 위한 것이라면 물고기가 살기 좋은 적당히 더러운 것이 좋다. 그러나 그 물이 먹을 물이라면 깨끗해야 한다. 물고기가 살지 못해도 좋고 큰 물고기가 놀지 못해도 상관 없다. 그러면 우리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우리 주위에 많은 사람이 모이는 것인가? 권세와 능력 있는 사람들을 많이 사귀는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사는 것인가?

우리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 이웃을 즐겁게 해주거나 유능한 친구를 많이 두는 것이 아니라면 그들과 잘 어울리기 위해 우리 삶을 조금 더럽게 할 필요는 없다. 그냥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 깨끗하고 거룩한 삶을 살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이웃을 사랑해야 하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유지하면서 이웃과 교제하고 사귀어야 한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 말의 본래적인 뜻을 고찰해보는 것이다. "물이 너무 깨끗하면 큰 고기가 못 논다"는 말은 원래 큰 고기가 놀도록 하기 위해 우리 삶이 조금 더러워져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이 말이 나온 고사를 잠깐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옛날 중국의 초나라 장왕이 큰 잘치를 베풀었다. 잔치가 길어져서 밤이 되자 장왕은 촛불을 밝히게 하고 잔치를 계속하였다. 그러다가 장왕은 자기가 사랑하는 허희에게 명하기를 잔치 참석자들에게 술을 따라주라고 하였다. 허희가 대부들에게 일일이 술을 따르며 도는 중에 갑자기 바람이 불어 잔치 자리의 모든 촛불이 일시에 꺼지고 잔치 자리는 암흑 천지가 되었다. 내시들이 불씨를 가져오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이 때 알수 없는 한 대부의 손이 허희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허희는 대부를 밀어내며 그 대부의 관 끈을 잡아 끊었다. 대부는 놀라서 손을 놓았고 허희는 관끈을 들고 장왕에게 가서 그 일을 고하여 속히 불을 밝히고 그 대부를 잡아 벌하라고 청하였다. 그러나 장왕은 급히 말하기를 아직 불을 켜지 말라고 하며 모든 대부들에게 당장 과 끈을 끊으라고 명하였다. 거추장스러운 관 끈을 끓고 마음껏 즐기자는 것이다 .만일 관 끈을 끊지 않는 자가 있으면 자기와 즐기는 것을 거부하는 것으로 보겠다고 했다. 이 말에 허희가 항의했으나 장왕은 자신이 대부들과 즐기기 위해 큰 잔치를 벌여 취하도록 마시게 했고 또한 취하면 탈선할 수도 있는데 그 일로 대부를 괴롭히면 잔치를 베푼 의의가 없어진다고 설명해주었다. 허희도 장왕의 도량에 감탄했고 후세에 염옹은 이 일을 다음과 같은 시로 읊었다.
'어둠 속에서 여인에게 손을 대는 것은 취한 사람의 상정이라
그런데 아름다운 손이 바람처럼 관 끈을 끊었도다
장왕의 그 바다 같은 도량을 알 수 있으니
물이 너무 맑으며 고기가 없느니라'(이 시의 원문은 「동주 열국지」, 김구용 역, 제5권[서울:민음사,0990],p37을 보라)

이 시에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없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 고사에서 알 수 있듯이 고기가 사는 물로 표현된 장왕의 태도는 자신이 부도덕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남의 잘못을 용서해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물이 너무 맑으면 안 된다"는 말은 남의 잘못을 일일이 꼬집어 내면 안 되고 용서해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 말에서 배울 점은 우리 삶을 덜 깨끗하게 하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이웃의 잘못에 대해 너그럽게 대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께서 이웃을 용서하라고 하신 말씀과 부합되는 것으로, 우리에게 적합한 삶의 자세라 볼 수 있다.

우리는 세상에서 중용 지키는 것을 우리 삶의 기본 자세로 삼아서는 안 된다. 오히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하나님의 뜻만 따라 살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 이웃도 그렇게 살기를 발라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을 만나면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못한다고 칼날같이 정죄 할 것이 아니라 용서하고 받아주며 바른 신앙인이 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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