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한센씨병 II(마 5:4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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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덕호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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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해 전에 중 고등부 학생들과 함께 수련회를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그때가 한참 수련회나 여름 휴가의 절정기라 오가는 교통편이 보통 불편한 게 아니었습니다. 오는 길에 기차를 타려고 역에서 기다리는데 그 기차가 어찌나 만원인지 우리 교회 학생들이 도저히 다 탈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기차의 제일 앞 차량은 서 있는 사람도 하나 없이 텅텅 비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리로 달려가서 거기 타려고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멀뚱멀뚱 구경만 하지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이유인즉 그 차량은 어느 교회에서 전세 낸 차량이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이런 어려운 상황에는 태워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많은 사람들이 아우성이었습니다. 2분 정거해야 하는 역에서 아마 한 20분 이상 아우성치고 또 여객 전무가 와서 이야기하고 한 후에 겨우 문이 열렸습니다.

어렵게 기차를 타고 한숨 돌리고 있는데 한 여성도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안 태우려고 했는데 교회에서 온 학생들인 것을 알고 같은 교인이라 태워 줬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릅니다. 아니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데 교인으로서 교인들이면 돕고 불신자면 안 돕겠다는 것입니까?

이런 모습이 오늘 날 우리들의 교회가 걸려 있는 또 하나의 심각한 한센씨병입니다. 지난번에 소개해 드린 대로 교회에서 교우간에 아픔을 나누며 돌보지 못하는 것도 교회의 한센씨병입니다. 그러나 그 못지 않게 심각한 한센씨병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교인들 간에는 잘 도우면서 불신자에게는 전혀 무관심한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뭐라고 하셨습니까?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냐?” 그러면서 오히려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한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교회는 교인들 간에는 물론 불신자들에 대해서도 사랑과 돌봄이 넘쳐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교인들의 아픔에 민감하고 사랑과 희생으로 돌본다 하더라도 사회의 고통과 아픔에 무감각하다면 그것도 심각한 교회의 한센씨병인 것입니다. 그런 모습은 전혀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이 아닙니다. 일그러지고 문드러져 교회의 모습마저 상실한 추한 모습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교회는 결국 죽게됩니다. 바로 러시아의 교회가 그랬습니다. 농민들이 고통 속에 죽어 가는 데도 전혀 무감각했던 러시아 교회는 결국 볼셰비키 혁명 때 민중들의 증오 속에서 다 망해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의 한국 교회가 그리고 우리들이 얼마나 심각하게 한센씨병에 걸려 있는지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의 눈을 돌려 사회의 고통을 한 번 바라봅시다. 우리의 눈을 들어 그 고통 속에 함께 고통 당하시며 우시는 주님의 모습을 바라봅시다. 그리고 이 무감각한 한센씨병에서 깨어나 그 고통에 민감하게 동참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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