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안전을 포기할 때(막 5: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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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덕호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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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하루는 배를 타고 갈리리 호수를 건너 거라사인의 지방에 가셨다가 귀신들린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는 귀신이 들려 완전히 인격을 상실하고 무덤 사이에서 자기 몸을 해치며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불쌍히 여기시고 귀신을 쫓아 주셨는데, 그 귀신이 돼지 떼에게 들어가도록 허락하셔서 그 결과 돼지 주인은 많은 손해를 입었습니다. 이 사건이 있은 후에 재미있는 대조가 나타납니다. 마을 사람들은 이 기이한 사건을 보고 예수께 와서 제발 자기들을 떠나 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귀신들린 데서 나은 자는 제발 자기가 예수님을 따라 다닐 수 있게 해 달라고 합니다. 똑같은 사건을 경험한 후 어떤 이는 예수님보고 제발 우리 곁을 떠나 달라고 하고 어떤 이는 제발 같이 있게 해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왜 마을 사람들은 예수님보고 떠나 달라고 했겠습니까? 이 사건에서 자신의 구원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떠나 달라고 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들이 보기에 예수님은 자기들의 생활에 변화를 가져오는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무사히 살고 있다고 하는 그들에게 예수님은 어떤 사고를 일으킬 분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좀 달리 말하면 그들은 지금의 안일에 만족하고 있는 자들이었고 또한 자기들의 안전을 자기들이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오히려 자기들의 안전에 방해가 되리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지금의 안일에 만족하는 자. 그리고 자기에게 자기의 안전을 의지하고 있는 자들은 절대 예수님을 모실 수 없습니다. 그런 자세야말로 바로 불신앙의 원조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우리를 변화시키시는 분이시고 우리의 안전을 자기에게 맡기라고 요청하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주님을 따르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똑바로 보십시오. 예수님은 우리의 안일을 보장해 주는 분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삶을 그대로 두고 거기에 악세사리로 「기독교인」이라는 장식을 붙이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삶 전체가 예수를 중심으로 뒤엎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의 이 모습을 보존시켜 주는 분이 아니라 변화시켜 주는 분입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세상의 관점에서 볼 때는 엄청난 사고를 당하는 것입니다. 그 마을 사람들이 잘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안일에 큰 격변을 가져온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세상의 관점에서는 굉장히 두려운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안일과 안전을 통째로 포기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찾아 온 부자 청년에게 모든 것을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라고 한 것은 바로 이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나의 안전의 포기. 내가 추구하는 안전의 포기. 이 결단이 없으면 예수님보고 떠나 달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을 찬양하면서도 예수님에 의해 세상에서의 삶이 변화되기를 거절한다면 우리는 겉으로는 예수 사랑을 외치지만 속으로는 예수님 보고 내 안전을 방해하지 말고 떠나 달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똑바로 봅시다. 주님은 우리를 엄청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던져 넣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그 변화란 세상의 눈으로 볼 때 사고이지 실제로는 나를 치유하시고 이웃을 구원하시는 구원의 역사일 뿐입니다. 그리고 주님이야말로 실제로 나의 안전을 보장해 주시는 분입니다. 자 여러분, 주님을 똑바로 보며 우리의 결단을 새롭게 하고 더욱 주님과 가까이 동행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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