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감추어진보화와 값진진주의 비유에대하여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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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은혜 속에 늘 평안하시기를 빕니다.

두 비유에 대해서는 보신 대로 c3tv에 강의 동영상이 있기도 하고 그것이 보완되어 책으로 나오기도 했습니다. 책 제목은 '값진 진주를 찾아서' (서울: 한국성서학연구소, 2002)입니다. 그책 196-219쪽을 보시면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내용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간단히 몇 가지 정리해보겠습니다. 위의 책에 나오는 내용을 인용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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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유를 한쌍으로 보고 연구하는 데 대하여

감추인 보화 비유와 진주 장사(장사꾼) 비유는 여러 면에서 닮은 모습을 가지고 있어 자주 한 쌍의 비유로 취급된다. 먼저 이 두 비유를 같이 취급하는 것이 타당한지 검토해보자.
이 두 비유는 몇 가지 점에서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먼저, 이 두 비유는 다섯 가지의 같은 요소를 가지고 있는데 이 요소들이 나오는 순서도 같다. 1) 아주 값진 것이 등장한다. 2) 그것을 발견한다. 3) 발견한 사람이 어딘 가로 간다. 4) 모든 것을 판다. 5) 산다.
반면에 두 비유는 몇 가지 차이점도 있다. 감추인 보화 비유는 천국을 값진 보화와 비교하는데 반해 진주 장사 비유는 값진 진주를 찾는 사람과 비교한다. 앞의 비유에서는 우연히 보화를 발견하는데 반해 뒤의 비유에서는 진주를 찾아다니다가 발견한다. 앞의 비유는 현재 시제를 많이 사용하는데 반해 뒤의 비유는 부정과거(aorist) 시제를 많이 사용한다.
하지만 이 두 비유의 차이점들은 심각한 것이 아니다. 먼저 시제의 변화는 극적인 효과를 위해 그렇게 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감추인 보화 비유는 천국을 보화와 비교하고 진주 장사 비유는 장사하는 사람과 비교하지만 이것은 문자적으로 천국을 보화나 사람과 직접 비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두 비유의 도입부는 “천국은 다음의 경우와 같다”고 설명하는 것이다. 이 경우 천국은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사람이 여차여차히 행동하는 것과 같고 값진 진주를 발견한 장사가 여차여차히 행동하는 것과 같다는 뜻이 된다. 따라서 두 비유는 별다른 차이가 없다. 감추인 보화 비유가 우연히 발견하는 것을 보여주고 진주 장사 비유가 찾아다니다가 발견하는 것을 보여주지만 이것도 비유의 메시지에 큰 차이를 주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진주 장사 비유에 찾는 사람이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있다면 감추인 보화 비유에도 모든 것을 다 팔아 산다는 표현을 통해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두 비유는 메시지에 있어서도 천국의 위대성과 제자직의 헌신에 대한 교훈으로서 같다. 두 비유는 서로 보완하며 이 메시지를 강화해준다. 더욱이 두 비유는 매우 짧은 비유이므로 같이 살펴보는 것이 편리하다. 그래서 우리는 이 두 비유를 같이 살펴보기로 한다.



2. 두 비유의 의미에 대하여

가. 감추인 보화 비유

이 비유는 천국이 우연히 밭에 묻힌 보화를 발견하고 자기 소유를 다 팔아서 그 밭을 산 사람의 행동과 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다고 가르쳐준다. 이 비유에서 강조하는 보화의 모습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위대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감추어져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밭 주인이 알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암시되어 있다.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는 것은 천국의 위대함과 가치는 모든 사람에게 다 알려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암시한다. 보화를 발견한 사람마저도 지금까지는 그런 보화가 거기 있다는 것을 몰랐다. 이것은 보화를 발견한 사실 자체가 큰 축복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보화의 위대한 가치는 발견한 사람이 최선을 다해 그 보화를 얻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그 사람은 보화를 발견한 후 몇 가지 반응을 보여준다. 1) 보화를 감춘다. 2) 기뻐한다. 3) 돌아간다. 4) 자기의 소유를 다 판다. 5) 그 밭을 산다.
여기서 보화를 감춘 것은 남들에게 기회를 뺏기지 않고 자기가 차지하기 위해 당연히 해야 할 행동이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하나님 나라의 모습에 잘 맞지 않는다. 하나님 나라는 남이 들어가지 못해야 내가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보화를 감춘 것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비유의 이야기를 완성하는 요소에 불과하다.
이 사람이 기뻐한 것은 비유에서도 당연한 일이지만 실제 하나님 나라의 가치에도 잘 맞는다. 그래서 이 모습은 비유를 구성하는 요소이면서 동시에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가 매우 가치 있는 것이므로 그것을 체험한 사람은 기뻐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나중에 하나님 나라를 위해 어떤 희생을 하게 될 때 그 희생은 억지나 고통 속에 하는 것이 아니라 기쁨 속에 하는 것이 될 것이다.
하지만 저자적 독자는 바로 앞의 씨뿌리는 자 비유에서 말씀을 기쁨으로 받아도 전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안다(마 13:20-21). 그러므로 보화를 발견하고 기뻐하여도 그 후속 조치가 불충분하면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주의 깊게 다음 내용을 읽을 것이다.
그가 돌아간 것이 비유에서는 필요한 행동이지만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는 필요한 행동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것도 단순한 이야기의 구성요소이다. 다만 이 사람이 어떤 자세로 돌아갔겠는지는 저자적 독자가 메워야 할 틈이다. 이 사람이 보화를 숨겨둔 것은 남이 발견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는 다른 사람이 발견하기 전에 신속히 그 밭을 사려고 할 것이다. 물론 그 보화를 빨리 얻기 위해서도 서두를 것이다. 이 모습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인간의 반응이 신속하고 부지런해야 함을 알려준다.
자기 소유를 다 판 것은 두 가지 메시지를 준다. 먼저, 이것은 보화의 가치를 보여준다. 그 보화는 이 사람이 자기 모든 소유를 팔아서라도 사고싶을 만큼 가치가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자기 소유를 다 판 것은 보화를 얻기 위해서는 다른 것을 버려야 함을 보여준다. 이 비유에 이런 의미가 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 나라에 이런 모습이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마태가 가르쳐주는 하나님 나라에 이런 모습이 전혀 없다면 우리는 이것을 단순한 이야기의 구성 요소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마태복음이 보여주는 하나님 나라에는 무엇을 포기해야만 들어갈 수 있는 모습이 있다.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말씀(마 16:24)이 그것을 보여준다. 저자적 독자는 회상을 통해 이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 소유를 다 파는 것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우리가 포기해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저자적 독자는 앞에서 단순히 기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적절한 행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저자적 독자는 그것이 바로 자기 모든 소유를 팔아서라도 그 밭을 사는 행동과 같은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밭을 사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 인간의 적절한 응답이 있어야 함을 알려준다. 그러나 인간이 돈으로 하나님 나라나 구원을 살 수는 없다. 그러므로 이것이 하나님 나라를 돈으로 사라고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또한 구원이 인간의 노력으로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기독교의 기본적인 가르침이다(롬 3:21-31). 그러므로 밭을 사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 필요하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이지 인간의 어떤 행위가 하나님 나라를 얻게 해주는 업적이라고 가르쳐주는 것은 아니다. 물론 모든 것을 바쳐야 하나님 나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비유에서 이 사람이 보화를 발견하는 과정은 간단히 묘사된 반면 발견한 보화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비유의 핵심이 보화를 발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보화를 발견한 후 기뻐하며 그것을 사기 위해 노력하는 데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비유는 밭을 샀다는 것으로 끝나고 그 이후 이 사람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저자적 독자는 이에 대해 몇 가지를 예상할 것이다. 우선 이 사람이 보화를 갖게 되면 그는 분명히 그 밭을 사기 위해 지불한 자기의 이전 소유보다 더 많은 소유를 가지게 될 것이다. 이것은 그가 밭을 사기 위해 자기의 소유를 포기한 것이 결코 손해도 아니고 희생도 아님을 보여준다.
그리고 보화를 발견한 것을 다루는 다른 이야기들은 보화 발견자가 나중에 불행해지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우리의 비유는 이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없이 끝난다. 이것은 단순히 가치 있는 것을 얻었다는 내용으로 비유를 끝맺는 모습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시의 이야기들에서 보화를 얻는 것이 비극으로 끝나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을 아는 저자적 독자는 비유의 결과에 대해 무조건 긍정적으로만 생각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 나라의 축복을 받은 사람도 불행해질 수 있는가? 자신은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나 실제로는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에 대한 경고가 마태복음의 중요한 메시지이다(마 7:15-23). 특히 이 메시지는 바로 다음에 나오는 그물 비유의 주제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저자적 독자는 이미 하나님 나라를 얻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나. 진주 장사 비유

진주 장사 비유의 전체적인 모습은 감추인 보화 비유의 모습과 같다. 아주 값진 것을 발견하는 것과 모든 것을 팔아 그것을 사는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 나타나는 모습은 두 비유가 서로 다르다. 진주 장사 비유에서 그 사람이 진주를 발견하기 전후에 보여준 행동은 다음과 같다. 감추인 보화 비유에서 보화를 발견하는 행동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고 발견에 대한 반응을 주로 살펴보았듯이 여기서도 진주를 발견하는 행동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고 발견을 위한 행동과 발견에 대한 반응을 살펴본다. 1) 진주를 구한다. 2) 진주를 발견하자 어디론가 간다. 3) 자기의 소유를 다 판다. 4) 진주를 산다.
진주 장사 비유는 많은 부분이 감추인 보화 비유와 같고 해석도 유사하다. 두 비유가 쌍을 이루고 있으므로 유사한 메시지를 다시 살펴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진주 장사 비유의 독특한 부분을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한다. 감추인 보화 비유와 진주 장사 비유에는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 먼저, 앞의 비유가 우연히 보화를 발견한 것인데 반해 뒤의 비유는 진주를 찾아다니다가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앞에서는 보화를 감추나 뒤에서는 그렇지 않다. 진주 장사 비유는 다양한 시제를 사용한다. 진주 장사 비유는 감추인 보화 비유보다 인간의 다양한 역할을 더 강조한다.
진주 장사 비유는 장사꾼이 진주를 찾아다니다가 값진 진주를 발견한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를 얻기 위해서는 인간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하지만 이것을 지나치게 강조할 수는 없다. 바로 앞의 비유에서는 우연히 보화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감추인 보화 비유에서도 나중에 모든 것을 다 팔아 보화를 사는 데서 인간의 노력이 충분히 나타나므로 진주 장사 비유만 인간의 노력을 강조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를 발견하는 데 있어 인간의 역할을 무시하지 않음으로써 앞의 비유를 보완해준다.
보화를 감춘 것과 진주를 감추지 않은 것은 단순히 자연스러운 이야기의 흐름에서 나온 차이로 보인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별다를 의미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두 모습에서 똑 같이 강조되는 것은 두 사람 다 서두르리라는 것이다. 감추인 보화 비유에서도 감추어 둔 것이 다른 사람에게 발견되기 전에 밭을 사도록 서둘러야 한다. 그리고 진주 장사 비유의 경우에도 다른 사람이 그것을 사기 전에 사도록 장사꾼은 서둘러야 한다.
진주 장사 비유는 시제의 변화를 통해 독특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 비유는 장사꾼이 가지고 있던 것들을 표현할 때 미완료시제를 씀으로써 장사꾼이 오랫동안 소유하고 있던 것임을 암시한다. 그리고 팔았다는 표현은 완료시제(πέπρακεν)를 씀으로써 “벌써 팔았다”는 느낌을 통해 신속히 팔았다는 인상과 이제 남은 것이 없다는 인상을 준다.
진주 장사 비유에서는 인간의 다양한 역할이 강조된다. 먼저, 모든 것을 팔아서라도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게 응답해야 하는 인간의 책임이 중요하다. 아울러 장사꾼이 그 진주의 가치를 알아채는 것도 중요하다. 다른 장사꾼은 그것을 모르고 무시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개인적인 판단력과 결단력이 좀더 강조된다. 이것은 장사꾼이 우연히 발견한 것이 아니라 찾아다닌 것과도 통한다.
그러나 인간의 역할을 지나치게 강조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진주를 찾아다니는 것이나 모든 것을 팔아 진주를 사는 것은 진주가 그만큼 값지기 때문인 것처럼 사람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응답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가치가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비유의 메시지는 인간의 응답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응답을 일으키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에도 있다.
그리고 두 비유가 보여주는 이미지를 볼 때 일반적으로 밭에 묻힌 보화를 발견한 것이 값진 진주를 발견한 것보다 더 충격적이고 가치가 있어 보일 것이다. 하지만 진주 장사 비유는 진주의 가치를 두드러지게 하기 위해 특별한 기법을 쓰고 있다. 그것은 “한 진주”라고 표현함으로써 하나라는 숫자를 강조하여 이 진주가 독특한 가치를 지닌 유일한 진주로 보이게 한 것이다. 그리하여 진주를 발견한 것도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것에 버금가게 가치 있는 일로 만든다.
장사꾼이 진주를 산 다음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는 저자적 독자가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이것은 감추인 보화 비유만큼 심각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앞의 비유는 불로소득에 대한 것으로서 당대에 그런 소득은 해가 된다는 경고가 많았지만 진주 장사의 경우에는 장사꾼의 정당한 장사였기 때문이다. 반면에 그 이익이나 기쁨의 정도가 약화되는 것은 “한” 진주라는 표현을 통해 어느 정도 막아준다.

다. 두 비유의 관계

그러면 이 두 비유가 쌍을 이루기 때문에 나타나는 해석상의 효과는 어떤 것일까?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반복을 통한 강조이다. 같은 주제가 반복되어 나타남으로써 더 강한 교훈이 된다.
아울러 반복될 때 나타나는 변화를 통해 메시지가 더욱 강화된다. 먼저, 값진 것을 발견하는 사람과 발견하는 방법의 변화는 메시지를 강화해준다. 발견한 사람 중 하나는 비천한 일당 노동자이고 하나는 부유한 상인이다. 그리고 발견하는 모습도 서로 다르다. 한 사람은 우연히 발견하고 한 사람은 찾아다니다가 발견한다. 이런 변화는 비유를 다양한 청중에게 더욱 호소력 있게 만들어준다.
다음으로 하나님 나라에 비교되는 것의 변화도 메시지를 강화해준다. 문자적 표현에 있어 하나는 하나님 나라를 보화와 같다고 하고 다른 하나는 장사꾼과 같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앞의 것이 하나님 나라의 위대성과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를 강조한다면 뒤의 것은 인간의 책임을 강조한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하나님 나라의 위대성과 인간의 책임은 두 비유 모두의 주제이지만 두 비유가 그 중 하나씩 초점을 맞춤으로써 두 비유가 쌍을 이룰 때 이 두 모습이 핵심 메시지라는 것을 더욱 두드러지게 알려준다.
그리고 이 두 비유는 서로를 보완해준다. 즉, 다른 비유의 보완을 통해 한 비유만으로는 오해가 생길 수 있는 소지를 줄여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감추인 보화의 비유에서 오해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은혜와 축복이 아무에게나 발견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하나님 나라가 주어져도 사람이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감추인 보화 비유에는 나타나지 않으나 진주 장사 비유에는 나타나는 모습이다. 보화는 아무나 보면 알 수 있지만 값진 진주는 아무나 알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은 당시에 유대 종교지도자들에게서 많이 나타난 모습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종교적 진리를 추구하지만 참 진리가 나타났는데도 깨닫지 못하는 유대 종교지도자들에게 주는 경고의 메시지를 포함한다. 이것은 감추인 보화 비유만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운 메시지이다.
또한 감추인 보화 비유는 하나님 나라의 발견에 대해 사람은 아무 책임도 없는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진주 장사 비유는 인간의 노력을 정당화한다. 그리하여 하나님 나라 발견에서 굳이 인간의 책임이 배제되는 것은 아님을 알려준다. 이것은 인간이 자기의 노력으로 구원받을 수 없음을 강조하는 중에 본의 아니게 인간의 종교적 노력을 무시하는 위험을 막아준다. 이것은 바울의 교훈에 대한 오해로 인해 인간의 책임을 무시하는 잘못된 분위기가 생긴 것을 고쳐주려는 의도가 마태복음에 있다면 더욱 그렇다. 이렇게 진주 장사 비유는 감추인 보화 비유만으로는 발견하기 어려운 메시지를 보완해준다.
물론 진주 장사 비유에서 인간의 노력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감추인 보화 비유가 그것을 통제해준다. 사람이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고 또한 복음을 들을 때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을 너무 강조하다가 마치 구원받은 사람은 특별히 위대하기 때문에 구원받은 것처럼 오해할 위험이 있다. 감추인 보화 비유는 하나님의 은혜를 부각시켜 그런 율법주의적 사고에 빠지지 않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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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적으로 인용한 것이라 다소 단절이 있겠으나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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