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문화의 폐단. (함께 생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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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모교의 85학번입니다. 현재 감리교단의 목사부인이며, 이화여대대학원에 재학중입니다. 문인으로 활동중이고요. 이 글은 월간문학 대표에세이 열린마당에 게재하였던 글입니다. 평소 존경하는 오교수님과 사랑하는 동문들과 전쟁문화와 폭력문화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친구' 라는 영화를 40차례 이상 보고서 자신을 괴롭히는 친구를 살해한 한 고등학생의 사건이 장안을 온통, 발칵 뒤집어 놓았던 요 며칠이었습니다. 저도 비디오로 문제의 영화를 보았습니다. 마지막 대사가 걸작이었습니다.

" 와 죽였노"
"쪽팔리서, 건달은 쪽팔리면 못사는 것 아이가"

후회 없는 얼굴로 위의 유언 같은 말을 남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던 유호성의 모습에서 많은 생각을하게 되었습니다. 흥행에 이미 성공한 '쉬리' '공동경비구역' '친구' 와 친구를 압권할 것 같다고 예견되는 '조폭마누라' 등이 싸움과 관련한 폭력물입니다. 사회문제를 야기시키고 있습니다. 근래에 조폭과 관련한 드라마와 개그, 영화등이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게 되면서 동시에 가치관이 정립 되지 않은 어린 학생들의 유사범죄와 모방범죄는 청소년문제가 위험수위를 넘었다는 신호라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단순한 폭력물, '친구'만의 문제는 이제 더이상 아닌 듯 싶습니다.
저는 이 문제를 '전쟁 문화'가 가지고 온 문화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인류의 시작부터 인간의 역사는 살인으로 점철되었습니다. 카인과 아벨의 역사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제도가 만들어지고 조직이 정비되면서 서열이 매겨집니다. 계급이 발생하면서 소유권의 문제가 파생됩니다. 소유의 욕망은 끊임없이 인간역사 속에 죽이는 문화, 싸우는 문화를 한층 강화시켰다고 봅니다.

미국의 쌍둥이 빌딩의 폭발사건이 플랜시의 '적과 동지'라는 소설과 비슷하다고 합니다. 일본이 미국에 불만을 품고 가미가재 자살 특공대를 무장시켜 비행기를 몰고 국회의사당을 폭발하는 내용입니다. 불만과 원한, 복수에 복수, 모두가 전쟁의 문화유산입니다. 영화도 소설도 흥행에 성공하려면 자극적이고 폭력적이어야 한다는 설이 나돌 정도입니다.

미국과 아프칸이 벌이는 싸움 역시 전쟁문화가 가지고 온 폐단은 아닐까요. 말이 필요없고 기다림이 필요없습니다. 일체의 용납과 관용이 소용없습니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입니다. 나와 다르면, 내게 이익이 되지 않으면 바로 공격개시만이 있을 뿐입니다.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 것도 전쟁문화입니다. 권위주의 , 패권주의, 획일화 역시 전쟁문화입니다. 자율성이 없습니다. 전쟁에는 타협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길 때까지, 분이 풀릴 때까지, 죽을 때까지 싸워야하는 것입니다.

죽은인간과 살아 있는 인간, 두 종류의 인간만 있을 뿐입니다. 흑백논리만 가능한 문화입니다. 경계긋기와 구분짓기, 편가르기, 남의 것 가로채기, 공짜로 먹기, 힘으로 승부걸기, 단번에 이기기, 광팔아 돈벌기식의 허위의 조작이 강화된 공습싸이렌만 울리는 문화입니다. 피를 보면서 자유를 느끼고, 피를 보면서 마조키즘(masochism)의 쾌감을 느끼는 지도 모를 일입니다. 누군가는 반드시 죽어야 되고, 누군가는 반드시 이겨야 되는 문화입니다.

이러한 전쟁문화가, 특히 우리나라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천여번 이상의 외세의 침입을 받으면서 크고 작은 전쟁을 치러 온 나라입니다. 근대에는 한국전쟁까지 경험한 민족이기에 전쟁에 더 익숙하여 있는지도 모릅니다. 심리학자 융은 집단무의식은 대물림된다고 하였습니다. 전쟁문화는 우리들의 집단무의식 속에서 수천년 대물림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보십시요. 얼마나 전쟁문화가 삶 속에까지 깊숙히 들어와 있는지를요.
- 입시전쟁, 눈치전쟁, 눈치작전, 줄대기작전, 구애작전, 폭탄주, 폭탄세일등 - 수도 없이 전쟁용어들이 남발되고 있습니다. 혹자는 결혼도 전쟁이고, 삶도 전쟁이라 말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날마다 전쟁연습을 하며 살고 있는 셈입니다.

아이들은 언어를 터득하여 대화술을 익히기도 전에 탱크, 총, 비행기, 무전기등으로 시작하는 전쟁놀이감으로 그들의 생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죽이는 시늉을하고 죽는 시늉을하면 부모들은 싸워서 꼭, 이기며 살아야한다고 무언의 박수갈채를 보내에 줍니다. 물론 죽을 때의 모습보다 죽일 때의 모습에 '장하다' 는 눈짓을 보내게 되지 않습니까. 전쟁문화는 그렇게 어른들의 묵인 속에 학습되고 있는 겁니다.

우리는 '전쟁문화'에 익숙하여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놀이와 용어들이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서 완전히 '평화'라는 단어로 바뀌기까지 폭력물의 희생자는 줄어 들 것 같지가 않습니다. 일찌기 프로이트는 "인간의 잠재의식 속에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본능이 파도처럼 춤을 추고 있다"고 말했지만, 저는 라인홀드 니버가 [도덕적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라는 책에서 인간이 아무리 선하고 도덕적이어도 비도덕적인 사회에서는 비도덕적 인간으로 살 수밖에 없다고 한 말에 긍정합니다.

도덕적 인간을 양성하는 사회가 먼저, 도덕적이고 정의로운 사회였으면 합니다. 합리적 사고가 가능하고 질서정연한 정의 사회는 더이상 전쟁이 필요 없는 사회일 테니까요. 감정으로 피를 부를 일은 없을 테니까요. 죽일 필요도 없지 않을까요. 한줄서기하면 반드시 자신의 차례가 오는데 죽일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 세계에는 공존만이 존재 할 뿐이겠지요.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신뢰 할 수 있는 아름다운 사회, 그런 문화가 정착 되길 일차적으로 바랍니다. 또한 전쟁문화의 잔재들이, 그 파괴적 본능들이 '평화'라는 용어로 대체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군 독재 18년과 피의 댓가로 찬탈한 제 5공화국, 피를 나눈 친구와 손을 잡고
피 위에 세워진 보통사람들의 우정의 무대까지 우리사회는 군부 문화, 즉, 전쟁문화가 정치와 사회전반에 자리하였던 것 같습니다. 도처에 자리하고 있는 전쟁문화가 제거되지 않는 한은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접근하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친구' 영화를 보고 자신을 괴롭히는 친구를 살해한 학생이 저지른 파괴적 영웅심리기제는 전쟁문화의 한 파편조각입니다. 이 문제는 가해자인 학생만의 문제를 뛰어 넘어 우리의 문제, 우리 사회의 문제 일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입니다. 살인한 학생이 받았던 수모와 아픔들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누명을 쓴 억울함도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쪽팔리면 죽인다는 공식'은 성립될 수 없습니다. 살인은 어떤 경우라도 용서 받을 수 없는 범법행위이기에 그렇습니다.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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